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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청아 Nov 09. 2022

마산에서 가장 유명한 약국이 되는 법

육일 약국 갑시다

옛날 느낌 물씬 나는 투박한 표지, 투박한 제목. 처음 <육일 약국 갑시다>라는 책을 추천받았을 때는 별로 끌리지 않았다. 나도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만큼, 내게 추천해준 책은 꼭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기에 눈 딱 감고 책장을 넘겼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 사람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황당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책의 저자 김성오 대표는 택시를 타면 항상 "육일 약국 갑시다!"하고 외쳤다고 한다. 그 당시 육일 약국이 위치하던 마산 교방동에는 이렇다 할 랜드마크(택시 포인트)가 없었다.  


육일 약국의 주인인 김성오는 '어차피 없는 택시 포인트, 내 약국을 랜드마크로 삼자'며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인드로 택시를 탈 때마다 육일 약국 갑시다를 외쳤던 것이다.


당연히 택시기사 중 고작 4.5평짜리 약국인 '육일 약국'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육일 약국을 가자고 외친 후, 위치를 따라가며 부연설명해야 했다.


그렇게 외치고 다닌 지 1년 반 정도 되었을까? 마산 택시기사의 50% 정도가 육일약국이 어딘지 알게 되었다.

3년 정도 지났을 땐 '마산, 창원에서 택시기사를 하며 육일 약국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고작 4.5평짜리 약국은 어느새 마산 교방동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었다.


투박하다고 생각했던 제목은 김성오라는 사람을 그대로 나타내는 제목이었다. 이 책은 그의 인생 이력서다. 인트로만으로 김성오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고, 그에게서 경영 철학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 뒤로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육일약국 갑시다 | 김성오 저 | 21세기북스 | 2021년 07월 21일


그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서울대 약대를 나온 사람이었다. 다만 가정형편은 그리 좋지 못했다. 동기들 중 혼자만 지방에 빚을 내가며 개업을 했고, 그마저도 포장도로조차 없는 외진 곳이었다.


현실은 냉혹했다.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렇기에 한 명 한 명의 손님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90도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러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번듯한 약국도 아니고, 약장을 가득 채운 약도 아니었다. 바로 '경쟁력'이었다. 객관적인 경쟁력이 없으면 '주관적인 경쟁력'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주관적인 경쟁력이 소위 말하는 '퍼스널 브랜딩'이다. 그는 스스로를 어떻게 브랜딩 하였을까? 내 시선에서 김성오라는 사람을 분석해보았다.


이윤보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라!

그의 슬로건이다. 그의 슬로건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뚜렷하게 보인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전략들에는 그의 슬로건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한 번 그가 사용했던 3가지 전략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이름 외우기

그는 손님의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전문성도, 유명세도, 경제력도 부족하던 시절 그가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친절'뿐이었다. 손님의 이름을 수험생처럼 외우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의 그런 노력은 효과를 발휘했다. 다른 약국에서는 짧은 시간에 대여섯 번 방문해도 매번 이름을 물어보지만, 그의 약국은 한 달 후에 방문해도 이름을 외워 불러주었다. 손님들은 신기해하면서도 감동했다.


그가 이름을 외우는 모습을 보면 '천재'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정성이 갸륵하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진심은 손님에게도 통해 손님들은 그를 '정성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김성오는 스스로를 정이 넘치는 사람에 맞게 브랜딩하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이름을 외우는 사람들은 더 적어진 듯하다. 사람들은 온정을 나누기보단, 할 일만 하고 사라지는 추세이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외우는 방법이야 말로 현시대에 필요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외운다는 것은 성의와 관심의 시작이다. 당연하게도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일수록 효과가 크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때 역시 큰 위력을 발휘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사람 이름은 항상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외우고, 부를 때 최대한 이름으로 부르곤 했는데, 이름을 외우고 있어서 손해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들 놀라고, 신기해하고, 감동했다.


2. 조명 밝히기

저녁이면 그의 약국은 더 초라해 보였다. 안 그래도 작은 약국인데, 조명도 약해 멀리서 보면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불을 새로 들여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왕 밝히는 불,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아주 환하게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약국은 형광등 6개면 충분했지만, 그는 일부러 25개의 형광등을 주문한다. 


천장을 비좁게 가득 채운 형광등은 가게 안은 물론이고, 바깥에서 봐도 환하게 빛났다. 다른 가게들과의 차별성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손님들의 반응도 좋았다.


게다가 당시는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 간판의 불도 내리곤 했다. 그러나 그는 밤에도 조명을 끄지 않았다. 물론 자신 가게의 이름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각인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밤에 가게가 등대 역할을 해 사람들이 귀가할 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차별성은 브랜딩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나만 가지고 있는 특색이 곧 퍼스널 브랜딩으로 연결된다. 남들과 차별성이 없으면 그저 자판기 뽑으면 나오는 브랜딩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남들 다 생각지도 못하고 전기세 아깝다며 반대하던 조명에서조차 그는 차별성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밤에 전기세를 더 내더라도 등대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 역시 그의 슬로건에 부합한다. 행동과 의도가 슬로건과 일치할 때, 브랜딩은 더욱 강화된다.



3. 향기마케팅

그가 약국을 운영할 당시 주변에 양, 한약을 동시에 운영하는 약국이 유행하고 있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그는 꾸준한 시장조사를 통해 본인도 한약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그는 바로 약국에 한약재 함을 준비하고, 한약재를 미리 채워놓았다. 약국을 들어오는 사람마다 웬 한약 냄새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는 은근슬쩍 한약 공부를 하고 있으며, 조만간 한약도 같이 판매할 거라는 뜻을 내비쳤다. 


한약 냄새가 옅어질 쯤이면, 일부러 한약 함을 더 열어두거나, 가정용 약탕기를 구매해 차로 마시기 부담 없는 약재를 넣어 달이곤 했다. 그리고 차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오감 마케팅에서 후각은 시각보다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 연구 결과, 시각적 광고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지만 후각을 자극하는 광고는 감정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후각은 단순히 기억에서 끝나지 않고, 추억을 불러오고 대상을 브랜딩 하게 해 준다. 향만 맡으면 해당 대상이 떠오르는 것이다. 심지어는 기억된 특정 후각은 자손에게까지 유전된다는 연구 결과가 영국 네이처 신경과학에 실리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가 지하철 역만 가도 항상 꽃집들이 후각을 활용한 마케팅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항상 지하철 역을 지나다 꽃 향기를 맡으면 어디서 나는 건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곤 한다.


향수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도 향수를 좋아해 주로 2가지 향을 사용하는데 하나는 달콤한 과일향이고 하나는 차분한 우디 베이스 향이다.


그날그날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을 때는 전자, 차분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는 후자를 사용했다. 향수를 사용하면 주위 사람들이 항상 향이 뭔지, 어디 향수를 쓰는지 묻곤 했다. 같은 향을 맡으면 자연스레 '내가 쓰던 향수였음'이 떠올랐을 것이다.


향은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색깔을 브랜딩 하기 굉장히 좋은 도구 중 하나다.




그가 사용한 전략들은 전부 '육일 약국'을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택시를 탈 때마다 육일 약국을 가자고 외친 것도, 손님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운 것도, 조명을 밝게 하고 밤까지 켜 둔 것도, 향을 활용한 것도 모두 육일 약국이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함이다.


그가 사용했던 전략들은 기발하면서도, 차별성을 두었고 무엇보다도 이윤보다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라! 는슬로건과 일맥상통했다. 결국 브랜딩은 소비자에게 내가 어떻게 기억되느냐이다. 본인이 슬로건을 가지고 그에 맞게 행동하면 진심은 결국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슬로건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수록 좋다.


육일 약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러분도 기업, 사업, 혹은 개인을 브랜딩 하고 싶다면, 본인이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메시지,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정하고, 이를 기억 속에 각인시켜야 한다. 기억되는 브랜드만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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