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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청아 Mar 18. 2023

토론을 왜 해야 하는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쇼미더머니>에서 래퍼 '쿤타'가 썼던 가사가 아직도 머릿속을 강타한다.

인간관계 중 엄마만 목적이 없지.


엄마를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 생각 하나, 행사하는 한 표까지도, 우리는 모두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 중요한 건 '모두'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각자의 이익은 때로 충돌한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합의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상대방의 이익 역시 챙겨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파이를 빼앗아가면서 내 몫만 챙기는 것보다, 상대방에게도 파이를 나눠주고 함께 파이의 크기를 늘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게 결국 나한테도 더 이득이 되는 길이다.


나는 나의 입장밖에 모른다. 상대방 역시 자신의 입장밖에 모른다. 내 이익을 챙기면서도, 상대방의 이익 역시 챙겨주기 위해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차분하게 들어봐야 한다. 이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무대가 바로 토론의 장이다.


다만 토론에 대해서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토론은 승패를 따지는 게임이 아니다. 1차적으로 몰랐던 서로의 입장을 듣는 자리다. 그 후 각자의 시선에서 놓치고 있던 사실을 알아차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정답을 찾아가는 자리다.


이러한 토론은 참가자에겐 개인의 논리와 사고력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올바른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자세를, 제공하고 알려준다. 주변에서 듣는 사람에겐 참가자들의 생각과 사상을, 그리고 그중 무엇이 정답에 가까운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때문에 내 앞에 있는 상대측을 설득하지 못하였더라도 답답하다고 화내거나, 실망할 필요 없다. 내 말이 정말 논리적이라면, 무엇보다도 옳다면 청중은 이미 당신에게 설득되어 있다. 더 기쁜 소식은 청중은 내 의견에 강요받은 게 아닌, 그들 스스로 생각하여 내린 판단이라고 느끼기에 내 의견을 누구보다도 더 든든하게 지원해 준다.


그렇기에 당신이 정말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여긴다면 반드시 토론해야 한다. 토론을 하기만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맞다면, 당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좋은 토론을 왜 피하는 걸까?

첫 번째로 '밥그릇 빼앗길까 봐'이다. 기득권은 토론을 해줄 필요가 없다. 손에 이미 쥐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토론을 해주면,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하나라도 내어놓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로 빈부격차가 있다. '덕분에' 기득권과 기득권이 아닌 사람의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빈부격차에 관해서 짧게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개인의 노력은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부'를 가질 수 있었던 환경에는 개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운'의 요소가 작용했다는 사실과 공동체가 만든 '환경'의 영향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절대 오만할 수가 없다.


그러니 본인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테다. 그리고 특권층이 아닌 개인은 '부'를 시기할 것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최고의 역량을 뽐내도록 애를 써야 한다. 즉, 각자에게 주어진 분배와 성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밥그릇 빼앗길까 봐 토론을 피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전하려면 우선 뭉쳐야 한다. 아래서부터 토론을 통해서 의견을 모으고, 사람을 모은 후, 뭉쳐서 도전해야 한다. 당연히 분배를 제안하는 대신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모인 다수의 의견은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두 번째로 소모성 논쟁인 경우다. 나는 소모성 논쟁을 정말 싫어한다. 소모성 논쟁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말해봤자 시간낭비, 감정낭비일 뿐이다. 소모성 논쟁을 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취향 차이의 문제를 가지고 다투거나, '왜' 토론하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은 아무리 다투어봐도 끝이 없다. 누구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누구는 강아지를 좋아한다면 구태여 취향을 통일시킬 필요가 없다. 예술에 정답이 없듯이 취향은 존중해 주면 된다. 다만 도덕은 다르다. 도덕적 가치관에 대해서는 우리가 토론을 통해 '정답'은 못 찾을지언정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으려고는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가치관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면, 취향이 아닌 도덕에 관한 토론이어야 한다.


'왜' 토론하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준비조차 되지 않은 경우다. 백날천날 토론을 해도 말 꼬투리를 잡고 불만제기하는 것 밖에 안된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토론할 준비조차 안된 것이다. 항상 모든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토론할 때는 이유가 더더욱 필요하다. 이 토론을 해서 내가 얻는 게 무엇인지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계속 자신에게 '왜?'라고 물어야 한다.


소모성 논쟁 하느라 아까운 시간, 감정, 노력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건전한 토론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다. 소모성 논쟁을 많이 한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다. 이 경우 토론을 나쁘고, 피곤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렇다면 건전한 토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딱 2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하나는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논쟁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의견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상대방과 내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방은 악당이 아니다. 단지 다른 입장의 우리일 뿐이다. 대부분의 입장차이는 '무지'에서부터 나온다. "멍청해서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그렇다. 우리가 독심술사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기에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없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앞서 토론이 1차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듣는 자리라고 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서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나누고 나면, 시야가 확 트인다. 시야와 함께 갇혀있던 사고도 넓어진다.


사고를 넓히는 또 다른 방법이 자신의 의견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의 목적이 승패 여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승패를 가리기 위해 토론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럴수록 다시 한번 '내가 왜 토론을 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자신과 주장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주장과 주장하는 사람을 동일시한다. 자신의 의견이 공격당하면 마치 자신이 공격당한 것처럼 반응한다. 내 의견과 나를 분리할 줄 알게 되면, 내 의견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고집부리지 않고 정말 내가 틀린 건 아닌지 객관적으로 체크해 볼 수 있다.

 

우리가 토론을 피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들로 건전한 토론을 할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다.

서로의 입장은 들을 생각도 안 한 채 온라인에서, 심한 경우 오프라인에서 혐오의 발언을 토해내는 현실을 목격할 때마다 참담하다. 이건 토론이 아니다. 토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고, 불통으로 이어지게 만들 뿐이다.


나와 여러분을 비롯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최소한 비난이 아닌 토론을 하고, 최대한 많은 생산적인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도 혼자 품으면 늘지 않으니까.

올바른 토론 방법을 알고, 토론의 장이 많이 마련되어 우리가 건전한 토론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인식과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면, 나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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