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결재를 올리면 어떡합니까? 공공용이면 포함 안 되는 거 몰라요? 전결이 달라지잖아요 "
" 아! 몰랐어요."
(쓱 고개를 돌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팀장이 나를 쏘아본다)
"참고문서 찾아보고 공부 좀 하세요"
예전에 팀장이 자료 보내줬었는데 읽어봐도 또 새롭다. 이 자료는 분명 대리님들이 출력해 줬던 건데, 공공용은 제외한다는 말이 여기에 이렇게 씌여져 있었는데 왜 못봤지.
"H과장, 니 괜찮겠나? 시차 적응도 안 됐을 건데, 오늘 야근 괜찮나?"
"예! 밀린 일 해야죠. 승인문도 올릴 거 많고요!"
(팀장의 환한 웃음)
7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H 과장은, 나보다 후배지만 팀장이 승진을 밀고 있는 과장. 반말로 친근감을 표시하더니 부장에게 전화해서 휴가 잘 다녀왔다고 안부인사 올리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에 반해 육아시간 쓰고 퇴근하는 나는 팀장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일 출장인데요,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해서 출근하자마자 팀장님 안 계실 때 인사 못 드리고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며)에,에, "
오늘 아침에는 큰아이 병원에 다녀오느라 2시간 휴가를 썼고 점심시간에는 김밥을 먹으며 밀린 일처리를 했다. 오후에는 실적압박 회의가 있었고 오늘 실적 2억 채울거라는 말에, 팀장은 건당 3억 이하면 말도 하지 말라고 무시했다.
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회사일이며 육아며 집안일이며, 한다고 하는데 늘 빈틈이 생긴다. 회사실적이 부족하면 내 탓같고 아이들이 아프면 내 탓 같다. 집이 엉망이면 그것도 내 탓 같다.
하루종일 일에 허우적대며 온몸이 만신창이 되도록 일하다 퇴근해 아이들 뒤치닥거리하다 11시에 잠든 아이 셋 워킹맘의 서글픈 하루는,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