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프롤로그
그게 언제부터였는 지 모르겠습니다.
예쁜 소품을 볼 때 ‘아.. 저거 만들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요.
분명 아주 오래전부터입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어린이는 경제활동을 하지도 않고 경험도 많지 않으니, 소소하게 가지고 싶은 게 생길 때 저는 그냥 끄적끄적 그림을 그렸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화려한 성에서 열리는 파티에 간다 상상하며 거기에 입고 갈 드레스, 그 성 안에 가득한 맛있는 음식과 화려한 거울, 장식품들을 그리곤 했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가지고 싶은 예쁜 눈, 코, 입을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긴 팔과 다리를 가진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그렸죠.
그렇게 그림으로 다 그리고 나면 어쩐지 개운해져서는, 마음에 들어 하는 친구나 동생들에게 마구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그걸 받고 기분 좋아하는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학급 친구들은 내가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전 그냥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을 그렸던 거랍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는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이웃 학교 남자아이와 첫 연애를 하느라 무얼 만들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진학한 예술 대학에서는 영화 콘티를 그리거나 끄적끄적 낙서를 해댔죠. 시나리오나 소설을 써 보기도 했습니다.
완성된 건 없었어요. 딱히 창조적인 뭔가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없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데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동기, 선후배 들과의 셀 수 없는 술자리, 서툰 우정으로 벌어지는 다툼들 그리고 자기 파괴적 연애로 젊은 육체와 정신을 무너뜨리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서른이 훌쩍 넘어서, 지나치게 우울하다 싶어 찾아간 정신과에서 성인 ADHD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부터인지 성인이 되어서 생긴 것인 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테스트를 하고 긴 상담을 진행한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발현되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변변치 못했던 학업 성적, 늘 폭격을 맞은 듯한 방 상태를 비롯한 갖가지 자잘한 모든 단점들을 ADHD라는 방패로 멋지게 합리화시켰습니다.
교수님은 ADHD 치료제와 함께, 지속 가능한 취미를 권하셨습니다. 어릴 때 좋아하던 무언가를 다시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셨죠.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그릴 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전공자도 아니었던 터라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로 몇 십 년 만에 그림을 그린다 해보았자 그게 잘 될 리가 있을까요? 미술학원이라도 등록해서 다녔으면 좋았을 것을, 그건 또 귀찮고 싫었습니다.
결국 노력과 인내가 부족해 취미를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멋들어지게 준비한 스케치북과 4B연필 들은 아직도 제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글쓰기, 요리, 외국어, 자격증 따기 등 꽤나 여러 가지를 시작해 보았지만, 그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무언가를 쉽게 포기해 왔습니다. 원래 제 성향이 그렇습니다.
안타까운 건 끈기는 없는 주제에, 뭔가를 시작하는 걸 또 굉장히 좋아합니다. 시작하려고 마음먹는 걸 즐기고, 그걸 하기 위해 이것저것 재료나 장비를 사는 것도 좋아하고요.
(사놓은 도구들을 책상 위에 주욱 늘어놓고 자랑스러워하던 제가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해서 너무 어렵다 싶으면 비난이 쪽팔려서 그만두고, 뭔가 만만하다 싶으면 바로 오만해져서는 재미가 없다며 던져버렸으며 과정이 어렵거나 자꾸 실패한 결과물이 나오면, 작업 자체가 가치 없다 비약하며 또 던져버렸습니다.
ADHD 치료제는 불쾌할 정도의 각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 때문에 불면증이 너무 심해졌고, 수면제를 병행해서 먹어야만 했습니다. 우습게도 저는 약을 먹는 것조차 꾸준히 해내지 못하고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그냥 회사나 열심히 다니자,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운동하고 술 적당히 마시자.. 그렇게 성인 ADHD 해프닝은 30대 중반에 스스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후 저의 30~40대는 그야말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16년을 키운 반려묘 둘을 모두 떠나보냈습니다.
이제는 제가 뭘 잘해도, 잘한다고 말해주거나 얼굴을 함께 비벼 줄 수 있는 사람도 동물도 별로 없습니다.
즐겁다면 참 즐겁기도, 아프다면 뼈아프게 아픈 여러 과정들로 인해 저는 현재 핸드메이드 작가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소설이 아니기에, "Happily ever after~ "라는 식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저는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위의 사진과 같은 여러 종류의 레진 다이어리 커버(바인더 커버)들을 만듭니다.
그림을 직접 그려 만드는 게 아닙니다. 조색을 한 레진으로 바인더 보드를 만들어 그 위에 각종 스티커 들을 배치, 장식하고 코팅해서 판매하고 있죠.
그것이 레진아트라는 방대한 카테고리 안에서 제가 선택한 종목입니다.
공방은 없고, 그저 내 방 안에서 두서없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두 가지 스토어에서 판매가 진행되면 그걸 포장해서 이고 지고 편의점에 직접 가서 저렴하게 택배를 보냅니다.
모든 걸 혼자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어떨 땐 내가 작가인지 배송 포장 아르바이트인지 쇼핑몰 사장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걸 진득하게 혼자 해내는 스스로가 자랑스럽기까지 하지만요.
애초에 목적하거나 예상했던 삶이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마치 누가 설계했듯이 레진 아트 작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대단히 많은 돈을 벌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만드는 작품들은 곧잘 판매되고 있습니다.
저는 레진 작품을 만드는 순간이 매우 즐겁습니다. 빛나고 예쁜 것들을 많이 보니 눈이 즐겁고, 이런 나의 삶이 참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많습니다.
긴 프롤로그는 이쯤에서 끝입니다.
에세이 #1부터는 핸드 메이드 작가로 지내는 저의 일상, 그리고 과거의 단상 등을 소소하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레진 아트 작가이니 만큼,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도 구경해 보실 수 있도록 사진을 첨부하려 합니다. 좀 두서없는 글이긴 하겠지만 한 가지 주제는 분명할 겁니다.
제목에서 어렴풋이 느끼셨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친절할 것.”이라는 주제입니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인생은 고통이며, 그저 폐허일 뿐이다'라고 단정 지었던 저는, 안타깝게도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을 학대해 왔습니다. 매우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요.. 참 가슴 아픈 일이며, 아직까지도 그런 무의식을 완전히 떨쳐 내진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이 글을 통해, 풀 죽어 웅크리고 있는 제게 다가가 상냥하게 말을 걸어 보려고 합니다.
성공 스토리나 퇴사 후 창업하기 등의 지침서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작은 성장에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 믿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