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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날이다

그래도 내 생일이 좋다

by 초들

오늘은 10월 3일, 내 생일날이다.

나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내 생일날이 음력 8월 20일로, 추석 쇠고 5일째라서 제대로 된 생일상을 차려주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랬다. 그때에는 추석(秋夕) 음식이 풍성해서 추석 지난 후에도 10일 이상 더 먹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던지 딱히 나만의 생일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추석 지나 5일째 되는 날이면 으레 잊지 않고 ‘오늘이 네 생일날이다’라고 챙겨주었다. 고맙고 웃픈 기억이다.


결혼 후 내 생일날이 바뀌었다.


신혼 초, 나는 아내에게 추석 쇤 후 5일째 날이 내 생일날이라고 강조했었다. 아내는 고갤 갸웃하며 ‘어, 그러면 해마다 생일날이 다르겠네. 뭔 생일날이 해마다 다르냐?’고 하더니, 즉시 만세력을 보고 음력 8월 20일 생일날을 양력 10월 3일로 바꿨다. 그렇게 내 생일은 10월 3일이 되었다. 어머니가 챙겨준 생일날이 바뀐 지 벌써 42년이 지났다. 빠른 생일 세월이다.


아내는 아침 일찍 맛있게 요리했다.


미역국은 물론 잡채와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음식(?)을 해댔다. 스멀스멀 이런저런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더니, 이젠 입맛을 돋운다, 나이 들어 변해가는 고약한 입맛인데, 오늘은 아내의 손맛이 고마워 감사(感謝) 맛을 부른다. 한결같이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생일상을 차려준 아내에게 진정으로 감사한다.



저녁엔 아이들이 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생일 케이크(cake)를 가져왔다.

“아빠 생신 축하해. 오늘 케이크는 온통 블루베리(blueberry)야.”

“그래. 고맙다.”

딸내미의 케이크 덕담은 귀여움으로, 감동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케이크 위에 꽂은 수많은 초가 심경(心境)을 어지럽힌다. 차라리 꽂지 말 걸 그랬다.



그래도 내 생일이 좋다.


비록 나이 들어가는 생일 세월은 아쉽지만, 오랜만에 온 가족 모여 축하 인사와 음식 나눔 할 수 있으니 좋다. 더군다나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 더 좋다. 금년 생일은 추석 후 음식이 아닌 추석 전에 받은 생일상이기에 더더욱 좋다.

(2025.10.03. 글쓴이: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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