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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BUMA 요부마 Feb 17. 2024

굳이 미국에서 사립 초등학교를 선택한 이유

나는 당신과 다르다 당신도 나와 다르다




남편 직장이 있는 프로비던스(로드아일랜드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는 편의 시설이 많고, 주거 환경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집 값이 비싸고, 공립학교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당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프로비던스의 작은 집에서 살며 비싼 사립학교를 보내기.

다른 하나는 프로비던스에서 가까우면서 학군이 좋은 교외 전원주택에 살기.

고민 끝에 우리는 두 번째를 선택했다.


나단이가 15개월 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집에서 P학교까지 거리는 걸어서 5분 정도다.

P학교에는 4살부터 다닐 수 있는 프리스쿨(유아원), 킨더(유치원)와 1학년부터 3학년 초등학교 과정이 있다.

나단이가 4살이 되어 프리 스쿨에 가기 직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다. 학교는 몇 달 동안 닫았다가, 생각보다 금방 하이브리드 수업으로(유아원) 전환했다. 대면 수업에 출석하고 싶은 학생은 학교에 가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아이 줌에 들어갔다.

나단이는 온라인 수업을 선택했다. 그러나 겨우 4살 된 아이가 3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뭘 배울 수 있겠는가. 한 달 정도 시도하다 그만두고 놀았다.

5살 때 프리 스쿨에 가기 시작했다. 등록금은 일 년인가, 반년인가에 2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2시 반. 아침 일찍도, 오후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서 혼자 점심 먹고 설거지하고 나면 어느새 데리러 갈 시간이다. 어디 외출도 못했다.

6살에 드디어 킨더(유치원 생)가 되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풀타임이다. (야호!)

학기 시작 전에 아이들이 교실에서 모였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고 깜짝 놀랐다. 16명 중 동양인은 나단이와 인도계 라이언, 딱 둘 뿐이었다.

우리 동네는 백인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인 가족들을 비롯해서 동양인 가족들이 많이 이사를 왔다. 그래서 나단이 학급에는 좀 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다행히 나단이는 학교 생활에 아주 잘 적응했다. 담임 선생님도 좋아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엄마, 나는 못생긴 거 같아." 어느 날, 나단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동시에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싶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단이가 보기에 자기 피부는 친구들보다 어둡고, 눈은 더 작고, 입도 더 작고, 키도 더 작았다.

"아니야, 나단이가 얼마나 멋지고 잘 생겼는데. 옆집 엄마도 나단이 핸섬하다고 했고, 지난번에 만난 캘리(나단이를 이뻐하는 18살 백인 여자)도 나단이 잘 생겼다고 칭찬했는걸."

나는 최대한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이후 나단이가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 어쩌나. 클수록 자기가 또래 친구들과 다르다고 느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마틴 루터 킹 데이 날. 학교에 갔다 온 나단이가 물었다.

"엄마 그거 알아? 옛날에 흑인은 안 좋은 대우를 받았었대. 나 앞으로 밖에서 안 놀 거야."

"응? 왜?"

"피부가 검어지면 나도 안 좋은 대우를 받을 테니까."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어 심장이 아팠다.

아마도 나단이는 자기가 백인과 흑인의 중간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실제로 나단이는 일주일 동안 밖에 나가서 놀기 싫어했다. 그때가 내 머릿속에 빨간 등(미국에서는 red flag 빨간 깃발이라고 표현한다.)이 켜진 순간이었다. 이 학교에 계속 다니다가는 아이가 점점 자신이 친구들과 다른 게 아니라, 백인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할까 봐 겁이 났다.


그러다 같은 동네에 살며 친하게 지내는 언니로부터 G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단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친구, 나호코가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G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 학교는 '다양성, 정체성, 평등, 자아존중, 공동체, 인성, 공감, 휴머니티'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다고 했다. 커리큘럼에도 지식에 대한 공부 못지않게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등을 3살부터 14살까지 꾸준하게 가르친다.

여러 지인이 G학교를 좋게 평가하니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나단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학교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학교를 둘러보려면 무조건 '어플라이(지원)'을 해야 했다. 가정 수입부터, 재산, 아이의 지난 학교 활동 등. 온갖 서류를 내야 해서 관둘까 했지만, 역시 지금이 아니면 미국 사립 초등학교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데인지, G학교는 뭐가 다른지, 볼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을 했다.

온라인으로 서류 제출, 지원비(십만 원 정도)를 내고 투어 날짜를 정했다. 안내를 해주시는 선생님과 2시간 정도 학교를 둘러보고, 학교 커리큘럼,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틀 후, 나단이가 교실에 가서 그 반 아이들과 3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선생님과 간단한 면담도 했다.

나단이를 데리고 나올 때, 입학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데드라인에 너무 가깝게 지원을 하셨어요. 이미 첫 번째 지원 그룹을 심사 중이에요. 아쉽지만, 만약 공석이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솔직히 나는 순전히 '사립학교 구경'을 하고 싶어서 지원을 했기 때문에 많이 아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남편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남편은 캠퍼스를 둘러보고 반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나단이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상상하고 있었다.




2주 후,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무시했다. 잠시 후, 음성 사서함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나단이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자세한 입학 절차는 전화로 말씀드릴게요. 이 번호로 전화 부탁드립니다.'

응? 합격? 늦게 지원해서 이번 입학 심사에서 제외된 게 아니었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덧붙여 물었다.


"어차피 안 보낼 거죠?"

"...... 집에 가서 의논해 보아요."


4시간 후 남편이 퇴근을 했다. 저녁을 먹고 나단이를 재우고 난 후에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남편은 노트북을 열어 엑셀 시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1,2,3안이 있어요. 이렇게 재정을 조정하면 나단이를 G학교에 보낼 수 있어요.

분명 내 전화를 받고, 모든 일을 제쳐두고 사립학교 등록금을 넣은 새로운 예산을 짰을 거다.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보, 우리 그냥 구경만 한 거 아니었어요? 진심으로 나단이를 이 학교에 보내고 싶어요?"

"네."

"왜요?"

"나단이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잖아요. 그 시간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빠듯할 텐데요?"

"몇 년 동안은 그렇겠죠. 그래도 여보만 괜찮다면 보내주고 싶어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도 G학교 캠퍼스와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등록금이 무료인 공립학교를 그만두고, 한 달에 2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십 년 넘게 내야 한다. 그동안 모기지, 세금, 의료비 등. 적잖은 고정비용이 나가고 있는데. 목돈을 추가로 내려면 이제까지 보다 더 타이트해진다.

그러나 나는 차마 반대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남편 마음에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못해준 후회와 아쉬움이 남을 테니까. 자기 점심값, 용돈까지 포기하면 아들이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게 해 주겠다는 부성애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단이 작년 9월부터 G학교에 다니고 있다.

5개월이 지난 지금은 나도 전학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1학년은 총 두 반이 있고, 전부 합치면 30명이다. 미국 원주민, 한국인, 한국과 미국 혼혈, 스패니쉬, 흑인, 백인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입양 가정,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있다. 뉴로 다양성(자폐, ADHD처럼 다양한 뇌의 발달이 다른 경우)을 가진 아이도 있다. 모든 가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나단이도 학부모인 나와 남편도 '마이너', '이민자'라는 이전에 받았던 차별성을 훨씬 덜 느낀다.



"Not everyone has the same thing that I have."


'우리는 모두 다르다. 동시에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며 지구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가 교육 철학이다.

나와 너는 다르다. 그래서 나도, 너도 특별하고 소중하다. 서로를 존중한다.

우리 부부는 나단이가 자신이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또한 나단이가 다른 사람들의 인종, 문화, 생김새, 특징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G학교에서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세미나와 모임을 자주 한다. 마침 오늘은 Anti Bias Education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안티 바이어스반편견 교육을 뜻한다. 편견, 차별, 편견에 도전하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 인식을 증진하기 위한 교육 및 학습 접근 방식이다. 학생들에게 자신과 사회에 대한 편견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 지식, 태도를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종, 민족, 성별, 성적 지향, 사회경제적 지위, 능력, 종교 또는 기타 특성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강조한다. 반편견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타인의 경험과 관점을 탐구하고 이해하도록 장려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포용적인 학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고, 서른이 훌쩍 넘어서 미국에 온 나에게 '반편견 교육'은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일명 라테는 당연히 한국인뿐이었다. 다른 인종, 민족, 성적 지향에 대해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성 정체성은 더더욱.

하지만, 미국에서 나단이를 낳고 키우면서 '동양인'이라는 소수 그룹의 입장을 항상 염두하게 되었다. '아시아 인'이라는 정의로 '나단'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 기질, 재능, 경험, 가치관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나단이가 '나단'이라는 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이 내 아이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타인을 내 방식대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사람은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충분히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하고, 사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동조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다.

학교에서 다양성과 고유성을 주제로 한 책들을 몇 권 빌려왔다. 신입생과 같은 자세로 하나씩 배워나가려고 한다. 책도 읽고, 세미나도 참석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내 다양성을 존중받고 싶은 바람과 타인의 다양성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 사이에서 안전지대를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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