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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ongTV Jun 27. 2024

1.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향하다.

사회는 다양한 이유로 변화한다(순기팀과 함께 0606)


오늘은 6월 6일, 한국은 현충일이다.

어제는 오후에 울란바타르 도착과 함께 비가 내리고 그토록 쌀쌀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아침햇살 창문 타고 그윽이 올라온다. 햇살 가득 머금은 듯하더니 저기 건물 뒤에는 먹구름으로 뒤덮여있는 것이 하 수상하다. 오늘도 쌀쌀한 날씨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걱정반으로 호텔을 나선다.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테를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몽골인들에게뿐만 아니라 몽골에 방문하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관광 명소이다. 울란바타르에서 70여 킬로 떨어져 있으며 가는 길은 코로나 직전에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시간은 대폭 축소되었다. 우리는 오늘부터 이틀간 테를지에서 즐겨야 한다.

교외에 벗어나니 역시 바람은 드세고 기온은 쌀쌀하다. 초원과 푸른  민둥산 그리고 소와 말이 풀 뜯으며 우리를 반긴다. 독수리도 반가움에  날갯짓한다. 몽골은 이제부터 만물이 춤추며 생명력 퍼득거리는 본격적인 약동의 계절이다. 테를지 입구에 들어서자 우측 편에 어워가있다. 어워는 우리의 서낭당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텡그리신께 기본 의식 거행하고 도로를 내려갔다. 도로 왼쪽의 돼지 형태의 바위가 묘한 상상력 자아낸다. 기암괴석과 초록 빛깔에 새하얀 게르등 테를지의 만물이 우리를 반긴다. 불과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여 떨어진 곳인데 한국과는 자연풍광이 판이하게 다르다. 색다른 풍경에 일행들에게 감탄사는 자동이다. 오오 테를지여...

테를지에 처음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전의 테를지에 대하여 모른다.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기에 감동한다. 하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테를지에는 이토록 캠프가 많지 않았다. 즉, 순수 자연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서든 별 보기가 용이했다. 현재는 여기저기 난개발로 진화된 게르 캠프가 정신없이 널려있다. 별은 어두울수록 선명함을 더하는데 캠프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너무도 강렬하기에 이전만큼 별 보기도 쉽지 않다. 이제는 별을 보려면 불빛을 피하여 계곡을 찾아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전 상황을 알 수 없는 처음 와본 관광객들은 이국적인 자연풍경에 충분히 매료되어 감탄사 연발한다. 어찌 보면 발전한 테를지의 모습에 아쉬워하는것은 나만의 몫이며 현대화된 선진화된 테를지의 풍경에 문명의 잣대를 드리대면서 논하는 것이 어설프기 그지없을 수도 있다. 그들의 과거의 열악했던 고달픈 삶을 느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 한국의 초가집이 자연스럽고 독특하다고 해서 외래 관광객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살 수는 없는 노릇과 비슷하다. 사회는 다양한 이유로 변한다. 몽골인들도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이 속한 자연은 그들의 것이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그들만의 고유 권한이다. 자연훼손에 대하여 이방인의 입장에서 아쉬워하며 훈수성 발언은 또 다른 나만의 이기심이다.

지도상 몽골의 크기는 한반도의 7배 정도이다. 그렇다 보니 각지에 개발되지 않은 아직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원석처럼 보관된 황홀지경의 대자연이 도처에 널려있다. 테를지는 그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가하다. 이처럼 넓은 대지이다 보니 몽골은 예로부터 토속 신앙이 발달하였다. 자연계의 모든 것에 영혼과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 동물이나 식물 부족등 특정 집단의 상징물을 숭상하는 토테미즘, 초자연적인 존재와 소통하는 샤머니즘등 다양하다. 특히 시골의 깊숙한 오지에 들어가면 그들이 숭상하는 종교적인 힘을 더 느낄 수 있다.  필자도 어떤 곳에서는 초자연적이 에너지가 넘쳐 온몸이 바짝 긴장하는 경우가 있었고 자연의 힘에 압도되어 걸음을 스스로 재촉하여 현장을 벗어난 적도 있었다. 몽골 오지 여행을 하다 보면 샤먼과 주술 그리고 원주민들의 전쟁터등 벼리별 생각이 다 드는 곳이 몽골의 오지이며 그들이 왜 토속 종교에 집착하는지 호기심을 갖다 보면 일정 부분 이해도 간다.  자연은 이처럼 신성하고 두려운 존재이며 동시에 이로운 존재이다. 자연 그 신성함과 두려움이 발전하여 그들의 신앙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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