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아메리카노에 한해
내가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고등학생 시기였다. 당시 공부를 하면서 필요에 의해 찾게 됐다. 처음은 카페모카로 시작해서 카페라떼로 넘어가고, 지금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단연 아메리카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얼죽아’이기도 한 나지만, 때때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특히 수험생활을 하면서는 봄과 여름의 시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자주 사 마셨다. 학원 근처에 ‘트리플에이’라는 카페가 있어서 자주 방문했는데, 아메리카노 메뉴가 여러 가지 있었다. 기본 아메리카노, 스페셜 아메리카노,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헤이즐넛 아메리카노 등으로 메뉴가 다양했다. 수험생 신분으로 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기본 아메리카노(1800원)를 주로 마셨는데, 가끔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은 스페셜 아메리카노(2500원)를 구매해 맛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중저가 브랜드 커피전문점이라서 그런지 스페셜 아메리카노와 기본 아메리카노의 맛의 차이를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의문만 남은 채로 수험생활이 끝났다.
대학을 합격하고 입학을 준비하면서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원두가 똑 떨어진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커피 원두를 구매하는지라 나는 어떤 원두를 사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엄마가 심장 관련한 질환이 다소 있으셔서 혹시 카페인이 몸에 안 좋을까 봐 디카페인 원두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디카페인 원두는 일반 카페인 원두와는 달리 깊은 맛이 덜하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깊은 맛이 있으면서 디카페인으로 제조된 원두가 필요했다. 디카페인 원두인데, 일반 카페인 원두만큼의 맛을 느끼려면 커피를 맛있게 볶고, 내리는 곳에서 원두를 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 후기를 찾아보며 맛있는 디카페인 원두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커피 원두의 종류가 원산지에 따라, 어떻게 볶는지에 따라, 내리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커피의 세세한 종류들 중에서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 ‘스페셜티 커피’의 핵심인 것 같았다. 나는 그중에서도 카페인이 아닌 디카페인 원두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결국 찾은 것은 ‘센터커피’라는 브랜드의 ‘디카페인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워커 내추럴 스위스 워터 홀빈(250g, 13,000원)’이었다.
디카페인을 위해 스위스 워터 프로세스를 거치고, 수용성인 카페인만을 물에 녹여 제거했기에 카페인 함량은 줄이면서도 원두 고유의 맛과 향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곳은 매장에 방문하면, 구매한 원두로 내린 커피 한 잔을 제공하고 있었다. 집에서 해당 매장까지는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이 한 잔을 맛보고 원두를 구매하기 위해 알바를 쉬는 날에 맞춰 매장을 방문해 봤다. 카페에 가는 김에 읽고 있던 책도 1권 들고 갔다.
우선 매장에 들어가니 블루리본 카페 매장답게 커피 원두의 향이 깊게 느껴졌고, 인테리어 스타일도 힙했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봐두었던 디카페인 원두를 구매했다. 그러자 직원 분이 구매 시에 제공되는 커피가 있다고 설명하시며, 따뜻한 아메리카노인지 아이스 아메리카노인지 물어보셨고, 나는 따뜻함을 선택했다. 아이스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에서 향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커피가 나왔고, 나오자마자 바로 한 모금 마셔보았다. 디카페인이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깊고 고소하고 심지어 쓴 맛도 조금 느껴졌다. 왜 사람들의 매장 방문 후기가 좋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평소에 일반 프랜차이즈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맛을 음미하면서까지 먹지 않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맛을 느껴보면서 마셨다. 처음 나왔을 때, 어느 정도 식었을 때, 그리고 다 식어 조금은 차가울 때의 맛이 각각 달랐다. 식으면서는 점점 베리류의 신맛이 났다.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도 읽고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며 매장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다행히 엄마도 커피가 너무 맛있다고 하셨고, 아르바이트하는 곳에도 커피를 내려 가져갔다. 사장님도 다른 직원들도 나눠 마셔보더니 깊고 맛있고 향이 좋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일반 원두의 카페인처럼 깊으면서도 디카페인 특유의 신맛이 가미된 느낌이라고 했다. 이번에 구매한 디카페인 원두가 정말 맛있어서 평소 카페인 원두를 소비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동이 나버렸다.
나는 ‘스페셜티 커피’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느끼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성비를 더 따졌었는데.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스페셜티 커피’만의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 일상에서 일반 아메리카노를 소비하는 게 공부할 때나, 지인들과의 대화 등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평소에도 잘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스페셜티 커피’라는 이유로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이 들고, 그에 대해 소소한 얘기를 하게 되고, 그 맛과 마시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스페셜티 커피’가 조금은 비싸더라도 삶에서 때때로 찾아도 좋을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마시기는 어렵겠지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가끔은 써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