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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앵님 Jan 13. 2023

왜 우리 아이만 미워하세요?

순순히, 영업 비밀 - 시작하며

순순히, 영업 비밀을 털어놓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교사로서의 시간이 쌓여가면서 하나 둘 생긴 '경험과 노하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함께 나누어 보려 한다. 평소 고민이 있다는 동료 선생님들께 나누었던 나의 생각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목소리에 용기 내보았다. 주로 신규 선생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지만, 교단에 계신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누구든 환영이다. 선생님의 삶을 엿보고 싶으신 분들은 더욱 환영합니다!








상황 1. 왜 우리 아이만 미워하세요?



우리 반 ○○이의 문제행동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심해져 학급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이로 인해 교사는 둘째치고 학급의 다른 학생들이 더욱 힘들어한다. 혼자 지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반드시 학부모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경험상 ○이의 학부모에게 전화했을 때 돌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증거 있나요? 왜 우리 아이만 미워하세요? 집에서는 안 그래요. 이런 이야기 처음 들어요. 작년 담임 선생님도 아무 말 없으셨어요. 선생님이 어리셔서 그래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어서 우리 아이를 잘 이해 못 하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카리스마가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닌가요? 왜 별 것도 아닌 일을 선생님이 크게 만드세요? 왜 다른 애 편만 드세요? 선생님이 알아서 다 해결해 주세요. 등등

- 위 사례는 실제 경험을 기반하여 재구성되었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신규 교사 시절에 몇 차례 겪고 속앓이를 하고 나면 가정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도 선뜻 전화하기가 참 두렵고 어렵다. 거듭된 문제행동으로 학부모 상담이 필요하지만, 비협조적인 학부모의 목소리가 생생히 귀에 들리는 듯하여 망설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열정이 남아있는 나로서는 묵과하고 넘어가는 편한 방법보다 문제에 직면하여 해결해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맥락으로 전화하여 학부모에게 협력할 것을 당부하고,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다.(아래 멘트를 그대로 말하기보다는 반드시 내 입에 맞도록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여러 차례 연습한 뒤 적용해 볼 것을 권한다.)


<전화 초반>
○○이의 성장을 위해 우리는 파트너이다. 드릴 말씀이 있으나 학부모님께서 들어주실 의향이 없으시면 말씀드리기 어렵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사실만을 전달드리며 저는 아이를 절대 미워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상황 이야기하기>
최대한 객관적, 사실적으로 미리 정리해 둔 자료를 바탕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과 가정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한다.
<전화 마무리>
○○이 학부모님께서 이렇게 잘 들어주신 덕분에 저도 믿고 더 잘 말씀드릴 수 있었다. ○○이가 학부모님 같은 부모님을 두다니 ○○가 복 받았다. 보통 학부모님께 이런 말씀드리면 우리 아이는 안 그래서요. 우리 아이 미워하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 들어서 참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이렇게 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함께 협력해서 이 부분에 있어 ○○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같이 힘써나가자.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하고 싶었던 말도 오해 없이 잘 전달할 수 있었고, 심지어 학부모와 속마음을 함께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또한 전화를 하기 정말 잘했다 싶을 정도로 눈에 띄게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예상되는 퇴로(?)를 차단하고 전문가의 면모로, 그 누구도 아닌 학생, 학부모, 선생님 모두를 위해서 당당히 목소리 낼 수 있길 바란다.


사실 담임교사가 전화하기까지 학부모는 이미 수차례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입장을 바꾸어 보면 문제행동이 잦은 학생의 학부모가 담임의 전화에 더욱 방어적이고 회피 성향을 띠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 '내 아이의 성장'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 하나의 팀이라는 방향성으로 교사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학생의 문제행동으로 인한 부모 상담에 있어, 가장 핵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교사로서의 권리보다는 책임이 무한히 강조되는 사회에서

앞으로도 같이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글. 쓰앵님 Copyright reserved 2023.

사진. UnsplashAngelina Lit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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