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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Nov 07. 2022

워킹 어머니의 워어라벨을 찾아서

어머니의 근무시간


워라밸, 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적정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인생에서 일을 어느 정도 포션으로 잡고 개인적인 삶은 어느 정도를 즐겨야 그 밸런스를 잘 맞추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를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누군가는 주 40시간을 근무하고도 그 워라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택도 없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둘째를 출산하고 잠시 일을 쉬었었다. 직업의 특성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의미가 특별히 없고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 고민 없이 쉬었다. 그간 내 기준에서는 몇 년간 쉼 없이 달려왔고 충분히 지칠 대로 지쳐있어서 당연히 내 인생에서 쉬어가는 시간을 그때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일하는 것보다 마냥 목적 없이 쉬는 생활을 더 힘들어하는 사람이라 금세 지겨워졌다. 물론 아기를 봐야 한다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일을 해야 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기 힘들어 하지만 오래 노는 것도 힘든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끈기가 부족한 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근무를 경험해 보았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는 사실 일주일에 2-3일은 병원에서 자면서 새벽에도 당직근무를 하게 되니 시간으로 따지면 평균 주 6일 80-90시간 정도 근무를 하게 된다. 퇴국 후에는 그래도 정상적인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반적인 노동자답게 주 5일 40시간을 근무한 적도 있었고 주 5일 30시간 근무도 해봤으며 더 쉬고 싶을 땐 주 3일 24시간 근무도 해봤다. 또 어느 기간엔 주 2일을 3시간씩 주 6시간 근무도 한 적이 있다.


이중 과연 몇 시간의 근무시간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 워라을 누리는 적정 시간이었을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하는 사실은 내가 현재 워킹 중인 어머니라는 점이다.

 Work-life balance에서 어머니의 포션은 life에 들어가는지 work에 들어가는지부터 진중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각자 사람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워킹 어머니들에게서 어머니의 포션은  work의 범주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일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온전히 life가 될 수 없고 퇴근 곧 Mom으로의 출근이며 그 시간이 귀속된다(Work⊃Mom)고 볼 수 있다.


 Work⊃Mom-life balance, 워크어머니-라이프 밸런스 (나는 이를 '워어라밸'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문제는 Work⊃Mom-life balance에서 적정한 수준의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 밸런스를 생각할 때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돈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적게 일하면 시간은 있 돈이 없다.


내 생활에서 필요한 나만의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기으로 두고 그다음 내 마음의 안정과 유흥을 위한 수입의 정도를 고려하여 각각 조금씩 늘렸다 줄였다 저울질하며 생각해 보았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을 취침한다는 가정하에(제발 이루고픈 이상적인 취침시간)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16시간, 주 112시간이다.

그리고 보통 두 어린이들이 집에 있는 주말은 눈이 떠짐과 동시에 온전히 어머니 업으로의 출근인 셈이므로 32시간은 주말 고정 내부 근무(Work⊃Mom) 시간이 된다.

112시간에서 고정된 내부 근무 32시간을 제외하면 나에게 남는 시간은 평일중 80시간.

80시간 안에서 대외적 근무(work) 시간과의 비율을 따져야 했다.


일단 경험상 나의 시간 80시간 중 절반에 해당하는 주 5일 40시간 근무는 나만의 개인 시간을 가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평일 매일 8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 후 귀가하면 또다시 출근이기에 진정한 개인 시간은 제로인 셈이다. 하루 스트레스의 정도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토끼 같은 어린이들 앞에서 미간에 내 천자(川)를 박제하는 횟수가 적지 않다.

수입의 측면에서는 물론 가장 안정적이어서 맥시멀 리스트의 소비 행각에 있어 특별한 제약이 생기지는 않는 수준이나 이는 돈 쓸 시간의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안정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 5일 30시간 근무는 그나마 훨씬 숨통이 트였다. 5일 중 3일은 풀타임, 2일은 오전 근무만 하는 패턴이었는데 오전 근무일의 오후에 나의 개인 시간을 어떻게든 욱여넣었다.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화실을 갔고 또 다른 하루는 친구를 만나거나 집에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며 충전했다. 2개 이상의 정기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취미활동을 갖기는 무리였고 적어도 주 2-3일은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운동은 불가능했다.


주 3일 24시간 근무는 좀 더 여유가 있었다. 이때의 나는 화실과 평소 하고 싶었던 영어 회화 학원을 추가로 다녔다. 또 왠지 시간이 될 것 같아 요가도 야심 차게 끼워 넣었는데 여기까진 다소 무리가 있었는지 빼먹기 일쑤였다. 적게 일한다고 해서 결코 몸이 편치 않은 것이 당시 최고의 미스터리였지만 생활에 활력이란 것이 존재했다. 다만 생활의 활력과는 반대로 나의 잔고는 다소 숨이 차 보였다.


주 2일 6시간 근무는 근무라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로딩이었다. 이 정도면 6시간이라는 시간이 어딘지 모르게 쑥스럽게 느껴 저서 일터로의 왕복시간과 준비시간마저 노동시간에 포함시켜 인지하게 된다. 이때 나는 화실과 영어 회화학원에서 열정적인 학생이었고 성실한 요가인까지 달성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도 어찌나 좀이 쑤시던지 어디 평일에 나처럼 노는 친구가 없는지 시도 때도 없이 카톡창을 기웃거렸다. 집에 있는 동안엔 그동안 못했던 집안 곳곳의 캐캐 묵은 짐들을 정리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집안을 들쑤시며 시간을 보냈다. 3가지 취미생활갖가지 외부활동을 하며 쏘다니다 보니 잔고는 마이너스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지난날을 정리해 보니 이중 나에게  Work⊃Mom-life(워어라밸)의 그 균형이 가장 적절했다 생각되는 때는 주 30시간 근무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OECD 국가 중 근무시간이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에 이어 5번째로 많은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근로 실적을 내는 데 있어 이토록 양으로 승부하는 나라인 줄은 몰랐는데 상당히 실망스럽다.


뭐 됐고, 다소 쓸데없어 보이는 분석시간을 나름대로 가져보고 나니 보다 명확해졌다. 이로써 나의 워어라밸을 위해 내년엔 좀 더 용기를 내봐야 할 것 같다.


"원장님, 부디 주중 하루만 더 쉴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요즘 출퇴근길 슈룹에 빠져있는 아주미)


워킹어머니 화이팅.





우리나라가 이정도로 양으로 승부하는 나라였는지 사실 몰랐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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