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마디의 말보다 위로가 됐다.
3주 만에 통화한 엄마의 용건은 짧고 간단했다.
"무슨 일 있냐?"
"아니, 별일 없어. 뭐 하다 보니 정신이 좀 없었어."
"사랑이는 잘 있고? 별일 없는 거지?"
"어, 별일 없어."
"그럼 됐다."
말수가 적은 딸과 용건만 간단히를 지향하는 친정엄마의 통화는 시작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종료될 위기다.
그동안 딸의 안부가 무척 궁금했을 텐데 아무 일 없다는 그 한마디에 그나마 걱정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았을 참이었다.
자상하지도 섬세하지도 않은 "그럼 됐다."로 마음을 건네는 엄마의 짧고 묵직한 말은 백 마디의 말보다 위로가 됐다.
옆에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네 엄마 때문에 옆에서 아주 보타 죽겠다.
네가 연락 안 오니까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엄마 걱정이 태산이다." 보다 못한 아빠가 전화해서 엄마를 바꿔준 거였다. 조만간 50을 코앞에 둔 딸이 또 부모님께 괜한 걱정을 끼쳤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웠다.
아마 아빠 또한 무슨 일 있나. 한동안 걱정하다 망설이다 엄마가 숨차할 때쯤 용기 내어 전화를 하셨을 거다.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마음이 분주해 여유가 없었다.
엄마는 당신 딸이 손녀딸을 멀리 학교 보내고 그 손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 딸이 맘 끓이느라 전화할 여유가 없나 하고 걱정하셨던 거였다.
딸이 떠나는 날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엄마에게 다시 전화로 인사를 건네는 손녀에게 손녀의 안부보다는 "네 엄마 걱정시키지 말고 가서 열심히 잘 생활해라."라고 하셨던 분이다.
말치례 겉치레가 전무한 돌직구 할머니다.
여느 할머니들은 손녀딸의 안위를 먼저 인사했을 텐데 말이다.
그때 연세 지긋한 택시기사님이 말했다.
"딸은 자기 딸을 걱정하고 어머님은 또 당신 딸을 걱정하시네요. 뭐니 뭐니 해도 내 딸이 먼저죠. 부모들은 다 그래요."
여느 친정엄마처럼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한다는 건 정말 무슨 일이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당신에게는 큰 걱정이셨나 보다.
통화를 끊고 돌아서니 그동안 살면서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철없던 시절부터의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자식이 뭐라고.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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