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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Dec 05. 2024

모욕하지 않는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켄 로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Daniel Blake)는 59세의 목수로, 심장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습니다.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영국의 복지 시스템은 다니엘을 "노동 가능" 상태로 판단하여 질병수당을 허락하지 않지요.


다니엘은 생계를 위해 실업수당이라도 받기 위하여 이력서 작성 수업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고, 실제 구직 활동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해야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일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 한 이 순간이야 말로 어떤 거대한 모욕이 파도처럼 그를 덮쳤을 겁니다. 파도보다는 공기 같다고 해야 할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욕은 항상 구체적인 모습을 띄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뭔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때가 많지요. 마치 겨울철 난방을 하지 않은 화장실의 한기처럼요.


다니엘을 믿고 흔쾌히 그의 이력서를 받아준 일터의 사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솔직히 말해야 하는 다니엘. 그리고 돌아오는 사장의 차가운 충고와 비난, 언제부턴가 이것을 "도덕적 해이"라고도 부르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 말이 싫어요. 왠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느낌이랄까요. 다니엘은 그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실업자가 된 다니엘이 사회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신체적, 경제적 상황을 공개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사회.

상처받은 자가 그 상처를 헤집어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사회.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한기처럼 파고들어 움츠리게 만드는 사회.


영화 같은 삶,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송 씨는 1986년 사고로 장애를 입은 후, 1990년부터 24년간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지내다 2013년 10월에 시설을 퇴소하여 자립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뇌병변장애 5급과 언어장애 3급의 중복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지원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장애등급제에 따라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2014년 4월 13일, 서울 00구의 거주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송 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4월 17일에 사망하였다. 치열하게 자신의 처지를 공개적으로 증명하고, 상처를 헤집어 증거를 수집하였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한기가 스며든 거절 통보였으리라. 그의 죽음 이후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이 확대되고, 2019년 7월에는 장애등급제의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다. 결국 그의 증명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참고: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175.html


타인에 대해서 쓴다는 것.

더구나 그 사람의 일생을 몇 페이지의 함축과 오독으로 점철된 글자로 이해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그를 오독해서라도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더 이상 모욕 당하고 싶지 않은 발버둥이라 여겨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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