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좀 오래 본 사람이라면 ‘리즈시절’이란 말을 알 것이다. 흔히 리즈시절이라 하면 2000년대 초반 앨런 스미스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잉글랜드 국대에 뽑히면서 주목받던 시절을 뜻한다. 그가 맨유로, 뉴캐슬로 이적해 뛰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프리미어리그 팬들이 많아지고, 올드비 부심 부린다는 몇몇 이들이 ‘앨런 스미스 리즈시절 ㅎㄷㄷ’ 매크로를 돌려대며 리즈시절이란 말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앨런 스미스가 뛰던 시절의 리즈는 하위권에서 허덕이더니 결국 강등당했다. 물론 전에도 챔스에 꾸준히 진출하던 성과는 분명 있었지만. 진짜 전성기는 프리미어리그가 막 탄생하던 시절이다. 이때 리즈 유나아티드는 에릭 칸토나와 함께 리그 우승을 일궈냈으니, 이때가 진짜 리즈시절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AMD는 라이젠 프로세서의 성공으로 존재감 없는 이인자에서 강한 2위로 거듭났다. 하지만 예전에도 인텔을 퍼포먼스와 가성비 양면에서 누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야말로 AMD의 진짜 리즈시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시기를 살펴보자.
그 시작은 클럭 경쟁에 있었다. 그동안 인텔 CPU는 AMD와 비교해 줄곧 성능에서 우위에 있었다. 특히 CPU의 속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인 클럭에서는 인텔이 AMD에 뒤쳐질 일은 당분간 없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AMD가 인텔보다 먼저 1GHz 클럭의 벽을 넘은 애슬론 프로세서를 발표한 것이다. 물론 인텔 역시 곧바로 1GHz CPU를 내놓았기에 정말 간발의 격차였다. 하지만 인텔보다 앞서는(적어도 앞서는 것 같은) 성능에 다른 CPU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은 유저들을 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발전의 비결은 모토로라와의 합작을 통해 인텔보다 빨리 구리 연결 제조 기술을 정밀하게 개선할 수 있게 된 데 있었다. 이를 통해 개선된 공정으로 180nm 프로세서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이 사이즈가 줄면서 상대적으로 전력 소모도 적어졌다.
이에 AMD는 1999년 K7 마이크로아키텍처 기반의 아르곤 프로세서를 시작으로 1GHz의 벽을 넘은 선더버드 프로세서도 내놓게 된다. 퍼포먼스와 가성비에 대한 호평이 많아지면서 AMD는 차근차근 점유율을 높여나갔다.
한편, 펜티엄 3까지 승승장구하며 CPU 시장의 영원한 1위일 것 같았던 인텔은 2000년부터 펜티엄 4 시대를 열었다. 펜티엄 4는 파이프라인 처리 속도가 늘고, 지연시간도 줄어들어 연속적인 처리도 가능케 했다. 특히 이전보다 파이프라인 스테이지를 더 자세히 분할하여 가시적인 동작 클럭의 향상을 도모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텔은 AMD에 아슬아슬하게 뒤쳐졌지만 1GHz 프로세서를 공개한 데 이어, 2001년에는 2GHz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는 하이퍼스레딩이 포함된 펜티엄 4 프로세서로 3GHz의 벽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작 등장한 펜티엄 4 프로세서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았다. 일단 처음 등장한 윌라멧 프로세서가 성능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에는 펜티엄 4와 궁합이 좋았던 RDRAM이 지나치게 비싸서 SDRAM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당시 SDRAM과 프로세서 간의 대역폭 차이로 인해 병목 현상이 발생해서 펜티엄 III보다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던 것이다.
펜티엄 4의 난맥상은 2004년에 등장한 프레스캇에서 정점에 달한다. 공정 미세화로 코어 크기와 전압이 줄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전류 누설 때문에 발열 문제가 심각했다. 당시 컴퓨터 유저들 사이에서는 프레스캇은 난방기기라 농담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프레스캇 프로세서를 여러 개 묶은 다음 전기를 가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비록 추운 겨울이지만 뜨끈한 프레스캇 하나면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을지도?
CPU나 그래픽카드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패스마크(PassMark)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AMD는 2006년 1분기 데스크톱 CPU 점유율에서 53.9%를 기록하며 인텔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라이젠 이전에도 AMD가 인텔을 앞질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애슬론 시리즈를 이어갔던 애슬론 64 시리즈의 흥행이 컸다. 32bit 하위 호환을 지원하는 최초의 64bit 프로세서였던 애슬론 64 시리즈는 2005년에 발표한 애슬론 64 X2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인텔 펜티엄 D 프로세서와 함께 듀얼 코어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성능과 전력 소모 모두 경쟁 제품을 능가했다.
이 당시 인텔의 위기감은 엄청났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퍼포먼스 그룹인 ‘블루 맨 그룹’을 앞세워 지금 봐도 참신한 광고를 선보이는가 하면 가격도 공격적으로 인하했다. 프레스캇 프로세서의 가격을 전 세대인 노스우드 프로세서와 동일하게 채택할 정도였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AMD를 CPU 시장의 일인자로 여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텔에는 한 가지 해답이 있었고, AMD는 더 발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상황은 뒤바뀌게 된다.
최초의 64비트 CPU, 최초의 1GHz 돌파 CPU는?, 김영우, IT동아, 2018-06-30
인텔 CPU의 종류와 역사, 코다씨엔씨, 2011-09-23
AMD PC 벤치점유율, 15년 만에 인텔 추월, 강승진, 인벤, 202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