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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Mar 21. 2023

긁어 부스럼

49금 유머 인문학 10.


‘자신의 발명품 때문에 죽은 불행한 과학자’라는 이색 스토리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사진도 있고 하니 가짜는 아닌듯싶은데, 화약 로켓 개발자가 폭사를 당하고, 잠수함 개발자는 익사하고, 낙하산 개발자는 추락사를, 산소마스크 개발자는 질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강도 짓으로 붙잡아 온 사람을 자신의 침대 크기에 맞게 자르거나 늘려서 죽이는 거인 악당 ‘프로크루테스’가 결국 자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다.
이 모두가 스스로 자초한 불운이니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어떤 행위가 의도했던 목적을 벗어나서 예상과는 다르게 불리한 결과로 되돌아오는 것을 부메랑효과라고 한다.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의 속성처럼 스스로 자초한 위협적 상황을 의미한다.
그나마 해야 할 일을 하다가 자초한 불행은 동정을 낳지만, 안 해도 될 일을 공연히 건드려서 문제가 생기면 주위의 손가락질은 물론 밀려드는 자책감으로 괴로워진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물 상처를 가렵다고 긁었다가 악화시키는 긁어 부스럼’의 경우, 혹은 제 이득만 챙기려 잔꾀를 부리다 더 크게 손해 보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경우가 그렇다.
일을 벌이기 전에 내 욕심이 과한지,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 조급해 하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훈시 말씀을 새기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보다 앞서 안 해도 될 일과, 해도 될 일을 구분하는 게 고민거리가 될 때가 있다.   
‘이 일은 해도 안돼, 괜한 짓 벌이지 말자’ 식의 시도해 보려 하지도 않고 지레 포기를 합리화하거나, “내가 안 해도 누군가 대신하겠지”처럼 회피를 정당화하는 일들이다.
긁어 부스럼을 걱정하면서, 해도 될 일을 혹은 해야 할 일을 눈치 보게 되는 상황은 늘 씁쓸함을 남긴다.
긁어 부스럼 되면 속이 터지지만, 긁어 부스럼을 피하다 보면 속이 쓰려지기도 한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자 네 살짜리 꼬마 녀석이 엄마에게 달려와 고자질했다.
“엄마가 어제 나갔을 때, 아빠가 식모 누나를 2층으로 데리고 갔는데요…”
엄마는 황급히 아이를 만류하였다.
“얘야 그만해라, 그다음은 저녁때 아빠가 오시면 계속하자.“
그날 저녁 온 식구들이 앉아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둘러앉았다.
“얘, 아가야, 너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해보렴.“
아이가 오래 참아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신나는 얼굴로 바꾸며 크게 이야기했다.
“엄마! 글쎄 엄마가 나가자마자 아빠가 식모 누나를 2층으로 데리고 갔는데요.
열쇠구멍으로 보니까,
아빠가 낚시 갔을 때, 엄마가 옆집 아저씨랑 했던 것과 똑같이 침대에서 싸우면서 이상한 소리도 지르고 했어요!”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아이에게는 말이나 행동이 자연 그대로인 듯 아무런 꾸밈없이 깨끗한 의미의 천진난만함이 있다.
그러다 나이 들면서 재미, 순수, 에너지가 담긴 천진난만함은 주위에 대한 눈치, 현실적인 계산, 장래에 대한 대비 등을 살펴야 하는 어른스러움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변화가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원형 심리학에 기반한 로버트 무어의 책  ‘왕, 전사, 마법사, 연인’에는 미성숙한 어른 (특히 남성)의 모습을 다양하게 들춰낸다. 

“마약거래자, 책임회피와 편가르기에 능한 정치꾼, 폭력적인 남편, 짜증 가득한 직장 상사, 초고속으로 승진한 젊은 간부, 바람피우는 남편, 직장의 예스맨, 무관심한 담당 교수, 고결한 척하는 목사, 폭력조직원, 딸의 학교행사에 참석할 시간을 절대 내지 않는 아빠, 자신이 관리하는 스타 선수를 조롱하는 코치, 무의식적으로 고객의 비범함을 깎아내리며 평범한 사람으로 끌어내리는 심리치료사, 여피족…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어른인 척하는 소년들이다.”


즉 이러한 폭력과 학대, 나약한 행동과 무기력한 모습 등은 상처받은 소년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위에서 성숙한 어른을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인 듯싶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어른스러움으로 가는 길에서 길을 잃은 채, 미숙한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은 노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르게 된다.
베르베르는 소설 ‘웃음’에서 이 법칙을 위트 있게 소개한다.
유아 때는 똥오줌을 가리고, 이가 나는 게 자랑이고,


청소년 때는 친구가 있고, 운전할 수 있는 게 자랑이며,
성인이 되어서는 애인과 돈 자랑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노년에는 거꾸로 돌아간다.
70대는 운전을 하고 친구들이 있다는 게 자랑이며,
80대에서는 이가 남아있고 똥오줌을 가리는 게 자랑이라고 한다.

이미 50을 넘어선 나이라면 이제부턴 어른에서 ‘어른 아이’로 가는 여정을 순순히 잘 받아들여야 한다.
눈치, 계산, 걱정 같은 같은 어른의 그림자를 벗어난 천진난만한 아이다움의 회복 말이다.  
근데 늙은 아이의 천진난만함은 천연덕스러움으로 진화되어 나타난다.
천연덕스러움은 ‘꾸밈없는 자연스러움’과 ‘모르는 척 능청스러움’이라는 상반된 뜻이 함께 절묘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꾸밈은 없지만 그 속은 알 수 없는, 투명하진 않지만 악의는 없는 그런 상태다.  
아이다움과 어른다움이 결합된 ‘어른 아이’의 성숙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가 한창훈의 청춘가를 불러요’에 등장하는 주인공 손 여사와 이 영감의 ‘야동 감상평’은 천연덕스러움의 진수를 보여준다.


“허는 것에 비해 양은 적구먼.”
“저것들은 저게 일이라고 허대유. 양 많은 눔두 봤었지만 밥 먹고 하는 짓거리가 저거라서 워디 괼 틈이 있겄슈?”
“월래, 끝났는디두 또 빠는구먼.”…(중략)
“이, 그새 끝난겨?”
“인전 끝인 모양인디, 섭섭하유?”
“오뉴월 염천 더위의 화롯불도 쐬다 물러나믄 섭섭헌디 저 재미난 것이 끝이니 더 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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