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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어니언 Dec 29. 2023

고통 분담

직책자라고 불립니다

직장인의 연말이 시작된다.

휴일이 늘어져있고, 우리 회사는 2일도 휴무라 연속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이 확보가 되어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할 때 쉬는 기분은 언제라도 신나는 마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해의 성과에 대한 보답이 있는 성과급이 나오는 날이다. 기본급 베이스가 적게 설정된 우리 회사 급여체계상 성과급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높다. 많은 기대감을 안고 영업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내 한 몸 쓰러지며 여기저기 읍소하고 다니는 12월의 연속이었다. 추정치로 결산했을 때 어느 정도의 확보된 이익률로 성과급의 규모는 결정된다.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는 보였기에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래의 언급이 있기 전까지,


'현재 자금수지의 상당한 영향이 발생되어 유동성에 심각한 문제가 예상됩니다. 직책자들은 1/3일 성과급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뭐?? 뭐라고???? 


오늘 11시 대표이사님 주재로 직책자 대상으로 긴급회의가 소집이 되었다. 여기서 직책자란 우리 회사에서 팀장, 부서장, 임원, 대표이사 등 어떠한 직함을 가진 조직의 리더를 직책자라고 한다. 자금 유동성 문제에 따른 성과급 지연 지급에 대한 통보를 하기 위한 회의가 소집이 되었다. 


'대금 회수에 문제가 있어 자금 유동성이 좋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게 불편하시겠지만 직책자 여러분들에게는 1/2일에 성과급이 지급이 됩니다. 양해 바랍니다.'


어제 미리 들은 얘기가 있어 기분이 나빴었고,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타격감을 덜 했다. 하지만 난 이제 팀장이 된 지 1년이 딱 되었는데 이런 희생을 감내하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려운 회사 사정으로 인해 팀장 이상 여러분들의 고통 분담을 요청드리오니 부탁드립니다.'


고통 분담이라, 예전 IMF나 14년 조선경기가 바닥을 칠 즈음 명예퇴직이 많아지던 그 당시 희생자들처럼 내가 지금 그런 상황이란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명예퇴직은 이전 회사에서 한번 겪어 봤는데 여기 와서 고통 분담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14년 울산의 이 동네는 어떤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임원에서 급여를 반납하는 시절이 있었다. 사실은 그 당시에 받지 않은 것이고 나중에 일괄 지급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성과급 현재 반납이라는 단어가 직책자 성과급 지연 지급으로 대체하여 쓰인다. 그 반납자가 나라는 게 기분이 묘한 것 같다.

그 당시 임원들도 고통 분담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했다. 묘하다는 게 양가적인 감정이 들어 그런 것 같다. 첫 번째는 늘 하던 것(성과급을 받는 것)을 하지 못하는 기분 나쁨과 두 번째, 우리가 나중에 받고 직원들 먼저 챙기면서 회사의 사기를 유지하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다 회사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냐고? 

나 또한 피가 뜨거운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이직을 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내려놓고 싶고 그랬던 적이 있지만 지금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결국 배워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은 모양이다. 우리 회사의 후배들이 나와 같은 상황이면 수용해서는 안된다. 당연하다.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한 우리 회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을 우리 직책자들이 이끌어 주고 후배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한다. 우리 회사가 잘 되길 바라고 더 커지길 원하고 예전처럼 다시 합쳐지길 바라는 마음이기에 조직이 안정적으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에 대한 회사의 인정과 보상은 필수!!!)


사모펀드가 주주로 있는 현재 상황에서 자금 운영이 쉽지 않지만, 이 안에서 버티는 힘을 만들어가고 발전하는 우리가 되어 가며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만들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잠깐의 희생으로 안정적인 나의 직장이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너무 긴 희생은 거절합니다만,,,,)


아내와 통화를 한다. 어제도 얘기를 했지만 1/2일에 지급이 되는 것에 괜찮아 보인다. 다행이다. 미안했던 내 마음은 누그러졌고 씁쓸하고 좋지 않던 기분도 가라앉게 되었다. 이해해 주는 아내가 있어 너무 고맙다.  


고통 분담의 동참자가 되었어. 너도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 나 이만큼 회사에서는 인정받고 대우받는 존재야 잠깐의 희생으로 균형이 맞아지는 것이라면 너도 충분히 동의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 고마워.


기분 나쁨과, 자금 유동성확보를 위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들었던 나는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는 힘을 얻은 것 같다. 활화산 같이 타오르던 시간들을 지나 조금 더 유연하게 바라보고 안정적인 상태로 성장한 나에게 아주 조금 칭찬하며 퇴근 준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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