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졸빙 Oct 21. 2022

마리화나에 대한 고찰

한국을 떠날 때마다 맞닥드리는 낯선 풀- 그 흔함에 대한 당황스러움? 

/ 2번 방_ 연두색 후디와 드레드락


한국에서 마리화나는 무서운 존재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초록색 풀(weed)이지만, 한국에서는 하늘을 날고 있던 지드래곤을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시킨 마약이다. 20대에 홍대가 있는 마포동에 살았지만 번쩍거리는 동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일상에서 대마초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여행자의 신분으로 혹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우리 나라의 울타리를 넘어갔을 때는 대마초가 마치 비둘기와 민들레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그 당시에는 네덜란드와 몇 소수의 유럽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마초의 소비가 합법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음지에서 비밀스럽게 거래되는 상황*이었지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가 마리화나 냄새를 맡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 뿐더러,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에도 420 friendly*가 심심치 않게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 법과 불법 사이에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담배를 물고 있는 고릴라 L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는 무척 기뻤다. 앞으로 같이 살게 될 수도 있는 사람의 프로필 사진이 내가 희망하는 만큼 맑고 청량하지 않아서 찝찝하긴 했지만,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나의 광고를 읽었고, 공감했고, 행동으로 반응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덮어주었다.


우리는 억지로 커피를 사지 않아도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동네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1층 짜리 크지 않은 도서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 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기초 사회 능력이라고 생각했으나 L을 도무지 가려낼 수가 없었다. 문자 찬스를 쓸 수 밖에 없었고 문자를 받은 L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왔다. 크-은 사람이었다- 뼈의 움직임이 저절로 읽혀질 정도로. '아, 사람이 걷는 다는 것은 저런 작은 움직임들의 합작이구나,'하고 생각했다. L의 외모는 내가 이제껏 지나쳐왔을 수십만명의 사람들과 달라서 그 낯섦과 신기함에 나는 입이 벌어졌다.        


물과 기름 같은 미국과 러시아가 공존하는 알래스카라는 곳이 있다. 원래는 러시아 땅이었는데 미국이 19세기에 헐값을 주고 사게 되면서 미국 땅이 되었다. 어떤 조약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모르지만, 미국인들이 이주해온 후에도 떠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쭉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있다고. 러시아인과 미국인이 결혼을 하기도 해서 L과 같은 알래스카 출신의 러시안-아메리칸*이 세상에 꽤 있다고 한다. 나의 짧은 인생에서 경험한 미국과 러시아는 적확히 개와 고양이 같아서, 그들이 섹스를 해서 낳는 "개-고양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개-고양이는 도대체 어떤 외모와 특징을 가지고 있을지 나는 테두리 조차도 그릴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L은 러시안-아메리칸이었고, 그는 고대 소크라테스가 있던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가, 화성으로 이주해 살다가 지구가 그리워 과거로 날아온 미래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시간 초월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L이 입고 있던 낡은 연두색 후디와 츄리닝 바지는 그가 잠시 연기하는 어떤 역할의 소품처럼 설익어 보였고, 그의 굵고 긴 드레드 락은 중요한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밥 말리를 포함한 마리화나 친구들이 공유하는 저-세상-아우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마초를 충분히 피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군가를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L에게 물어보았다.


"대마초를 피웁니까?"


그는 일 년에 3번 정도, 깊은 숲 속에서 특별한 날들을 기념하고 누리기 위해 한다고 대답했고, 나와 남편은 365일의 3일, 일 년의 0.8%의 시간을 대마초와 교제하는 사람을 대마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의 소리에 따라 결정했다. 처음 만난 사람을 신뢰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나름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L과 그렇게 같은 집에 살게 되었고, 같이 사는 50일동안 L은 전형적인 대마초인의 모습을 다각도로, 확실하고 세세하게 보여주고 떠났다- 너덜너덜한 방을 뒤에 남긴 채.           



L을 추억하게 만드는 사진. 참신한 기준과 질서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유사한 황당함과 섬뜩함을 자극한다.  






마리화나를 좀 아는 사람은 대마초인을 알아보는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눈빛, 말투, 말의 내용, 옷차림 등에 베어있다고*. 그들은 L을 만나 나처럼 그 질문을 묻지도 않을 뿐더러, L도 피우냐는 질문에 0.8% 같은 깜찍한 숫자를 날리지 않겠지. 설명을 들으면 대략 이렇다: 합법이 아닌 나라에서 대마초를 많이 피운다는 것은 지갑에 엄청 큰 구멍이 생긴다는 뜻인데다가, 대마초를 피우면 삶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정직하고 꾸준하고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도 가장 버틸만한 직업이 아티스트). 대단한 비틀즈나 헐라우드의 별들이 아닌 나의 평민 친구들은 물 처럼 새나가는 수입과 , 토나올 것 같은 징장, 매일 감당해야 하는 생활비를 감당해보려고 하지만, 그 사이 복잡한 돈 문제는 그들의 가족과 연인 관계를 끊어지게 하고, 돈을 조금 밖에 안주고 일은 많이 시키는 직장은 너무 불만족 스러운데다가, 점점 새로운 시공간이 더 편안해지는 그들은 그렇게 사회에서 도태되어간다는. 


마지막으로 대마초에 대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점을 한가지 이야기하고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 신비초는 "영혼의 눈을 뜨이게 해서" 흡연자로 하여금 어떤 초현실적 등극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게 한다. 대마초인 중의 한 명은 진심으로 자신에게 세번째 눈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은 신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 하는 모든 이야기 안에 이 메세지가 포함되어있었다.) 그 외 자신이 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 더 있긴 한데 이런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 인구 중에서 자신들이 깨어있는 (enlightened) 상위 5%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즐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높아지는 정신 세계보다 훨씬 빠르게 내려가는 삶을 보며 (혹은 썩어가는 방을 보며)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늘 대마초는 과학적으로 중독성이 없기 떄문에 나는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대마초가 쓰는 사회적 미끼이고 가면이다. 대마초를 그만 피는 것과 함께 직면해야하는 자신의 평범함, 왜인지 모르겠지만 벽에 의자가 박혀있는 나의 방, 계속 쌓이는 고지서, 마음이 떠나버린 여자친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마리화나를 원하게 된다.



Peace.






*주의력 결핍장애, 우울증, 불면증의 환자들은 의사로부터 정식 처방을 받으면 양지에 있는 조제실에서 한정량을 분배받을 수 있었다.    

*대마초 흡연자를 환영한다는 뜻, 현 거주자들이 흡연자라는 뜻; 1971년에 5명의 미국 고등학생들 ("the Waldos")이 버려진 대마초를 탐색하는 계획을 420라는 코드로 정하고, 4시 20분에 만나 입수한 대마초를 피운 것으로부터 유래되어 4월 20일이 대마초의 날로 지정되었다.  

*미국 국적을 가진 러시아인도 러시안-아메리칸이라고 불리운다.

*마리화나에 대한 고찰 2에서 다뤄볼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중심의 지속가능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