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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라 하와이

정신없던 출국

by 수에르떼

인생의 한 번뿐인 아주 뜻깊은 신혼여행지의

결정은 생각보다 쉬웠다. 나는 아시아 쪽만 아니면

된다 주의여서 어디든 괜찮았다.

오빠와 나는 휴양지와 관광지의 중간쯤 된다는

하와이로 마음을 맞췄다. 비행기값을 내고

업체 담당자님께 여행 스케줄을 안내받으면서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결혼 준비로 정신없어서

설레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었다.


우리는 일요일 낮 결혼식이었고 비행기는 다음날 저녁 시간대였다. 결혼식 전날에 신혼여행 짐을 완벽하게 싸려고 했는데 오히려 전날이 더 바빴다. 예복과 한복을 챙기고 여기저기 다녀오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본식 전날까지 짐을 싸고 있다니 현타가 왔다.

리스트를 작성해서 짐을 싸다가 새벽이 가까워지자

눈에 보이는 짐을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다른 부부들은 전날 일찍 자서 피부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어 놓던데 우린 그런 것도 없었다.

두꺼운 화장 덕분에 우리의 칙칙한 얼굴이 가려져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본식 당일에는 긴장이 풀리고 너무 피곤해서 완전 푹 퍼져버렸다.

덕분에 그다음 날 번갯불에 콩 볶는 것처럼 짐 챙기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제일 중요한 e-ticket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담당자분께서 인쇄해서 가야 한다고 예전부터 말씀하셨는데 집에 프린터가 없던 우리는 계속 미루다가 결국 오늘에까지 와버린 것이다. 이젠 현타를 느낄

여유도 없었다. 이 모든 건 대책 없이 내일의 우리에게 미룬 어제의 우리 탓이었다. 부리나케 준비를 끝내고

pc방에 갔는데 e-ticket 파일이 열리지도 않고 인쇄도 제대로 안되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pc방에 가면 인쇄도 금방 하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할 줄 알았는데...

역시 모든 계획에는 플랜비가 필요하구나.

애꿎은 마우스와 키보드만 타다닥 클릭해 댔지만

원하는 화면은 나오지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이러다가 비행기 못 타는 거 아니야?




혹시 몰라 검색해 보니 다행히 인천공항에도

프린터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그 즉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천공항. 말로만 들었지 가본 건 처음이었다.

오빠와 첫 해외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설레서

e-ticket에 대한 초조한 생각은 잠시 잊혔다.


인천공항 주차장에 도착하니 초겨울 같은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우린 옷깃을 여미고

길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옆에서는 쉬지도 않고 비행기가 계속 이륙했고 그 모습을 구경하던

우리는 얼마 기다리지 않고 공항버스를 탔다.


엄청나게 넓은 공항의 스케일에 감탄하는 것도 잠깐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미리 신청해 뒀던

오빠의 도시락도 받아야 했고 제일 중요한 e-ticket을

인쇄해야 했다. 인포메이션에 물어물어 겨우

프린터를 찾았다. 프린터 앞에는 생각보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만 바라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우리 앞에 중년 여성과 남성, 그리고 젊은 남자는 꽤 오랫동안 컴퓨터와 프린터를 붙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도 하고 열리지 않는 홈페이지를 수십 번 새로고침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직도 여기에 발이 묶여 있다니 여행 시작 전에

짜증이 먼저 나기 시작했다.


인내심이 바닥을 치달을 때쯤 드디어 그 사람들이

자리를 비켰고 우리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빠르게 필요한 서류들을 인쇄했다. 정확한 탑승 수속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전광판을 보는 순간 우리는 멘붕이 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거다.


여유롭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놈의 e-ticket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우리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 겨우 체크인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사람들은 다 들어간 상태였고

승무원들도 거진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상태여서 겨우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정말…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터질 뻔했다.

여행이 얼마나 좋으려고 초반에 이렇게

드라마틱한 일이 생길까. 하하하.

하지만 놀랍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주 어마어마한 멀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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