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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연휴

by 수에르떼

2025년의 추석 연휴는 몇 년 전부터 직장인들의

희망과 꿈이었다. 앞 뒤로 연차를 쓰면 무려 10일을

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연휴이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황금연휴가 시작되었다. 허나 비극적이게도

내겐 이 연휴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회사의 일이 매우 바빠져서 이 기간 동안 계속

출근을 해야 했다. 좋은 마음으로 출근을 하려고

했지만 출근 일수가 늘어날수록

마음속에 부정적인 기운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이 황금연휴를 기다려온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나는 계속 회사에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게 3일의 휴일이 주어졌다.

추석 당일에도 근무를 하고 퇴근 후 오빠와 함께

시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차로 20분 거리에 계셔서 오고 가는데 부담이 없었다.

굵은 장대비를 무릅쓰고 시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밤길에 비까지 많이 와서 걱정을 잔뜩 하셨던

아버님은 집 앞 골목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님의 따뜻한 환대와 어머님의 따스한 손길에

묵혀있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서둘러 준비해서 본가로 향했다.

동생은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부터 일찌감치 본가에 내려와 있었다. 결혼 후 부모님과 동생을 자주 봤지만

본가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라 가는 길이 설레고

기분 좋았다.


다행히 비도 그쳐서 안전하게 잘 도착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우리 집은 포근하게 날 반겨주었다.

푸르른 잔디밭과 아빠가 공들여 키우신 식물들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이 풀렸다.


아빠와 엄마, 동생을 보니 없던 힘도 솟아났다.

집에 있었을 땐 빨랫줄에 걸린 젖은 수건마냥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본가에 오니까 햇빛에 잘 말린 뽀송한 수건마냥

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반찬을 많이 내오셨다.

윤기 나는 수육에 김치를 더해 쌈을 입이 터지게

싸 먹으니 행복이 몰려왔다.

오랜만에 엄마의 반찬을 먹으니까 반갑고 뭉클했다.

오빠와 우리 가족들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날은 비가 하루 종일 내려서 집에서 쉬었다.

오빠는 개천절에 라섹 수술을 해서 선글라스를

쓴 채로 방에 들어가 쉬기도 하고 잠깐 나와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컨디션이 100%가 아닐 텐데도 나와 함께 와준

오빠에게 참 고마웠다.


쇼파에서 편하게 쉬면서 같이 tv를 보고

동생과 함께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근처에 새로 개장한 아자개장터에 가서 저녁밥을

먹었는데 백화점 푸드코트처럼 다양한 음식들이

많아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소고기국밥, 돼지고기 육전,

약돌돼지 표고버섯 소시지, 돈까스,

직화 돼지고기구이까지 아주 푸짐하고 넉넉하게

먹었다. 아자개장터 분위기도 사극에 나오는 저잣거리 같아서 좋았다.




다음날은 예쁜 꽃밭 구경을 갔다.

부모님께서 먼저 다녀오신 후 추석 연휴에

우리가 오면 같이 가려고 찜해두셨던 곳이었다.

보랏빛 꽃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우리를 반겨줬다.



며칠 동안 세차게 내린 비탓에 허리가 꺾인 꽃들이

보였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꼿꼿하게 서있는

꽃들이 많았다. 넓은 대지를 보랏빛으로 물들어 놓은 꽃을 보니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서 오빠와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예쁜 보랏빛 추억을 만들었다.


꽃구경을 실컷 한 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를 먹었다.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순간이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했다.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주는 게 바로 가족 아닐까.


2박 3일 동안 아빠, 엄마, 동생 그리고 오빠와 함께

편하게 잘 지내고 푹 쉬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구경도 함께 하면서

예쁜 추억을 만들어서 좋았다.

그 추억들이 일상을 버텨낼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예전에 취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본가에 갈 때면

부모님은 꼭 어딜 함께 가고 싶어 하셨다.

맛있는 식당을 알아뒀다며 같이 가자고 하시고

걷기 좋은 곳이 있다며 함께 가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철이 없던 나는 피곤하다며 집에 있고 싶어 했다.


그땐 왜 몰랐을까. 2주마다 한 번씩 딸이 오면

당신들이 먹었던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싶고

좋은 곳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 어리고 철이 없었다.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기운찬 모습으로

곁에 계신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이 제일 젊으시고 체력이 좋으실 때니

기회가 될 때마다 좋은 곳 가고 맛있는 걸 함께 먹는 게 큰 효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앞으로 쭉 멋지고 좋은 곳을 함께 하고 싶다.


10일이나 되는 연휴 동안 3일밖에 못 쉬었지만

그 소중한 3일을 우리 가족과 함께 해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다. 황금보다도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황금빛 연휴였다. 화려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소소한 일상 그 자체로 행복했으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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