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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나라의개짱이 Jan 29. 2023

한 달에 200만개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방법

양이 질을 낳는다


 문송한 문과생이 대기업에 취업해서 할 수 있는 직군 많지 않다. 그중 MD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그나마) 인기가 많은 직군이 아닐까.


여러 협력사들과 주도적으로 미팅을 하며 협상력을 발휘한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뒤 박수를 받는다. 불현듯 떠오른 영감으로 개발한 상품이 대박을 쳐서 SNS에 오르내린다.
"아~ 그 빵이요?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 하하하..."


 MD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그래, 솔직히 내가 가졌던 환상이다. 물론 MD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MD라는 글자가 '뭐(M)든 다(D)한다'의 약자라는 말이 있다. MD의 업무 범위가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온갖 궂은일을 다해야 하고 업무량이 많다는.


 이 글은 흉흉한 소문의 진실보다는 MD에 대한 환상과 그에 대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쓰는 글이다. MD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지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가공식품 MD로 5년 일해보며 느낀 상품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곰표 맥주' , '포켓몬빵', '연세크림' 등 MD 직군에 재직 중인 사람들이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릴 만큼 성공 신화를 쓴 상품들이다. MD를 꿈꾸거나 준비 중인 사람들 역시 저런 상품들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떠들썩한 이슈를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 기대에 부풀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처음 MD를 맡게 되었을 때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신하고 트렌디한 신상품에 대한 개발 계획이 가득했고, 무언갈 먹으러 가거나 핫한 곳에 놀러 갈 때는 나도 모르게 MD의 시선으로 개발할 거리들을 찾곤 했다. 박 상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상품 하나 만드는데도 온갖 장벽이 존재하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가장 먼저는 내부 팀의 의사결정 받아야 한다. '이런 걸 누가 먹냐?' '누가 이걸 이 가격에 사냐?'라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의사결정자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입맛도, 관심사도, 세대도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건 지난한 일이었다. 내가 기획해 간 상품은 '잘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만 먹는 전통음식' 같은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데이터와 논리와 가끔은 떼쓰기까지 동원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이제 마케팅, 디자인팀, 품질팀 등 유관부서의 협조 받아야 한다. 나는 모든 일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웬만한 회사는 시스템과 부서별로 엄격하게 구분된 역할이 있다. 회사 오너가 아닌 이상 내가 결정하거나 맘대로 할  있는 건 생각보다 얼마 없다. 그렇게 컨펌을 받으며 몇 번 깎여나가고 유관부서와의 협의에서 또 몇 번 깎여나가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상품의 초안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기 마련이다. 령 '고소하고 진한 식물성 크림이 듬뿍 들어가 있는 연세크림우유빵'을 기획했다면 실제로 출시되는 상품은 '적당한 원가의 크림이 판매가에 맞는 양만큼 들어있는 모두가 한 번은 봤을 법한 비주얼의 크림빵'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자 중 그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말이다. 이뿐인가. 나의 회사가 OEM을 주지 않고 모든 걸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제조사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는 제조를 전문적으로 하는 협력사와 을 빌려야 한다. 그들 역시도 나처럼 온갖 사정들이 있다. 내부 컨펌을 거쳐야 하고 유관부서들과 협의를 해야 하고 이익도 내야 한다.


  상품을 하나 기획하고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객 이전에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하는 거다. 그렇게 수많은 칼날을 거치며 나온 상품은 깎이고 깎여 결국 둥글둥글해진 채 시장에 나오게 된다. 그런 상품이 어떻게 고객을 설득하고 돌풍을 일으키고 화제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 상품이 성공할 수 있을까? 가끔은 작은 제조사에서 오너의 전폭적인 지지와 결정을 업고 출시되는 상품이 있다. 또 간혹 MD에게 상품 개발의 전권이 주어질 때도 있다. 이런 상품들은 모두 성공하는가? 애석한 말이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카테고리를 좁혀서 보더라도 수많은 제조사와 브랜드가 난무하고 있는 시장에서 한해에 쏟아지는 신상품이 몇 개나 될까? 그중 대충 만들어서 대충 판매하는 게 얼마나 있겠나. 다 나름 치열한 고민과 분석의 결과로 나온 상품들이다. 시장 조사도 했을 테고 데이터도 봤을 거고 이런저런 분석 기법으로 전문적인 분석도 했을 테다. 상품의 기획단계에서 다들 대박이 나리라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맛을 잡고 디자인을 선정할 때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겠지. 근데 그중 고객의 선택 받고 이슈가 되는 상품은 극소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상품이 성공하느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상품은 출시되기 전 모두 나름의 분석을 거치고 출시된다. 상품을 제조하고 재고를 보유하고 출시하는 것까지 모든 게 비용인데 누가 가능성이 없는 상품을 돈을 들여 만들겠는가. 다들 각자의 상품은 성공할 거라 믿는다. 그런데 때로는 내가 보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너무 훌륭한 상품인데 쪽박을 차는 경우가 있고, 또 때론 아무런 기대도 관심도 없던 상품이 대박을 치는 경우도 있다.

 질문을 조금 바꿔서 어떤 상품이 성공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양이 질을 낳는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조금 저렴하게 말하자면, 많이 하다 보면 못해도 하나는 얻어걸린다는 거다. 조금 깊이 있게 말하자면, 수많은 시도를 하다 보면 그만큼 경험과 내공이 쌓이고 내놓은 결과물의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상승한다는 거다. 결국 대중의 니즈를 공략하는 상품이 출시될 확률도 높아진다. 요즘 시대는 정보와 광고는 지나치게 많고, 개인의 취향은 극히 세분화됐다. 사실상 개개별 상품이나 마케팅이 성공할지 말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게 의도한 대로 풀리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많이 하고, 자주 할 것. 획부터 거절당하고, 개발 중 깎여나가고, 출시 후 실패하더라도.


부정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만 실컷 늘어놨지만, 실은 나도 아직도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는 곰표 맥주를, 포켓몬빵을, 연세크림우유빵을, 원소주를 만들고 말 거다. 그렇게 개미는 오늘도 영-차! 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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