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서문화재단 씨앗 김태윤 상임이사 인터뷰
정독도서관을 입장료를 내고 다니던 한 청소년은 책으로 지식을 독점해 권력이 되는 시대에 엔지니어로 살다가 독서 관련 재단을 설립한다. 그는 같이 잘 살아보자는 생활방식을 응원하고, 그리 특출 나지 않은 청소년들의 해방을 지지하며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콘텐츠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을 지향한다. 담작은도서관을 시작으로 청소년 독서클럽 책톡, SpaceT, 모야 프로젝트, 스토리 라이브러리, 티티섬 라이브러리 등의 사업을 진행하신 (재)도서문화재단 씨앗의 김태윤 상임이사님을 만나보았다.
Q. 많은 선생님들께서 책톡으로 인해 씨앗 재단은 알고 계실 텐데요.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우리 재단은 2005년, 주로 엔지니어로 구성된 창립 멤버 여섯 명이 기금을 모았고, 그 기금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고민했습니다. 당시는 TV 즉 지상파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던 때였고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전국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의미 있는 일이 도서관 사업이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고, (재)어린이도서관문화재단을 출범 후 어린이도서관을 건립하고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죠. 그렇게 2008년에 춘천에 담작은도서관을 개관했으나 하자마자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이도서관의 이용자 대부분은 영유아부터 10세 전후의 어린이고, 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도서관을 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자발성 없이 보호자의 손을 잡고 오는 곳이 과연 도서관이 맞을까? 싶었고 그즈음부터 계속 다음 도서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특정 주제 전문 도서관이나 청소년 전용 도서관이었는데 당시 자문을 구했던 분들 모두 청소년 전용 도서관은 실패할 거라 했습니다. 유일하게 해 볼 만하다고 추천하셨던 분들이 이성희 선생님을 비롯한 독서운동을 하시던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청소년 모두가 공부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갈 곳이나 놀 만한 곳이 마땅치 않으니 청소년 전용도서관이 생기면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하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사회의 반대로 청소년 도서관은 보류 상태로 들어갔죠.
Q. 그렇다면 주제 전문 도서관으로 방향을 잡으셨겠네요. 주제 전문 도서관은 곳곳에 많이 생기는 분위기입니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도 그렇고, 최근에는 의정부에 주제 전문 공공도서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A. 긴 고민 끝에 먹거리를 비롯한 에코 관련 주제 전문으로 정했습니다. 식농 도서관이라는 다소 재미없는 이름까지 붙였었는데 이후 2015년 지금의 (재)도서문화재단 씨앗으로 이름과 정관을 변경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에 창립 멤버 중 2명만 남고 이사회를 개편하게 됩니다. 2기 이사회가 출범하자마자 도서관 건립을 위한 부지 확보를 위해 탐색을 했고 서울 내곡지구에 도서관 부지 800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순위인 서초구가 도서관을 지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민간분양을 했는데 재공고가 여러 번 난 상황이었죠. 70억 정도의 금액이었고 도서관에 관심이 있는 민간 또한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재단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마감 10분 전에 한 중소건설사가 입찰에 들어왔습니다. 어이없게 추첨에서 그 건설사가 낙찰되어 우리는 부지 확보를 못하게 되었죠. 지금도 그 부지는 비어있습니다. 건설사에서 도서관을 지을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우리 재단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쉽지 않은 이유는 많았습니다. 지역적인 이유로 서초구에 사는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주로 혜택이 갈 수밖에 없는 공간이라는 점, 청계산 입구라 등산객이나 노인들이 주 이용자일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주제 역시 에코니 얼마나 많이 왔겠습니까.
Q. 도서관 건립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동안에도 책톡을 포함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걸로 아는데요. 어떤 게 있었나요?
A. 책읽는사회문화재단, C-program, 느티나무 도서관 등과 협업해 SpaceT라는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공공도서관의 한 층을 트윈 전용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전주시립도서관의 우주로1216, 수원 슬기샘어린이도서관의 트윈웨이브 등이 있습니다. 기적의 도서관 이후로 공공도서관의 확충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경험이 적은 공무원이 담당하며 실질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우리와 같은 민간 재단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 거죠. 그래서 공간의 설계, 디자인, 시공, 콘텐츠와 관련된 일체의 비용과 구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아무래도 기존의 공공도서관에서 볼 수 없는 큰 변화인데요. 많이 달라짐을 느끼시나요?
A. 몇몇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보니 이 정도의 협업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기에는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도대로 건립이 잘 되지도 않을뿐더러 잘 되었더라도 운영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설계를 기부하는 정도만의 성과만 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운영을 위한 인력 지원이 재단의 요청과 맞지 않는다거나 활용의 측면에서 효율성보다는 민원 방지를 위하는 쪽으로 하는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사실 도서관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원과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을 편하게 이용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너무나 조용하고 책만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굳이 찾지 않죠.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누구나 미디어와 콘텐츠를 접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공공도서관에 대한 관점 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전에 만들어두었던 공간과 콘텐츠가 이제 유효하지 않습니다. 운영하는 사람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죠. 지금의 방식대로 최소의 공간 관리 인력만을 준다면 공간이 변해도 예전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Q. 티티섬 라이브러리 개관 역시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몇몇의 SpaceT를 조성해보니 직접 운영해보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예산을 한 곳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고 C-program 팀과 함께 고민하며 과거에 보류했던 청소년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했죠. 요즘 공공도서관의 이용자는 어린이, 취준생, 노인뿐입니다. 취준생은 독서실이 필요한 것이지 콘텐츠가 필요하지 않은 이용자입니다. 노인 역시 훨씬 적은 인원으로 만족스러운 서비스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공공도서관이 수적으로는 많이 늘고 있지만, 도서관다운 서비스를 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청소년을 위한 서비스는 거의 없죠.
Q. 인터뷰 전에 둘러보니 기존의 공공도서관과는 다름이 많았습니다. 이곳에서 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나요?
A. 청소년들이 티티섬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영자(운영자)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티티섬은 관장님을 포함한 12명의 영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은정 관장님은 대구에서 청소년센터 운영 경험이 있는 분이고, 다른 영자들도 각각 다른 분야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으로 채용을 했습니다. 영자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영자들이 있는 티티섬은 용자(이용자)들에게 괜찮은 어른을 만날 기회를 주는 공간이 될 수 있죠. 티티섬은 8개의 초․중․고가 부채꼴로 둘러싼 도서관입니다. 대부분은 오래된 빌라 형태에서 거주하는데 가족의 수도 적고 가족 모두가 괜찮은 어른일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동네의 특성상 가정에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청소년이 꽤 있고, 학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새로운 활동을 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로나19로 학교 문이 닫히자 이 청소년들은 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행히 작년에 개관을 해서 동네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기도 하고 해먹에서 쉬기도 하고, 재봉틀을 하거나, 식물을 키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죠.
Q. 도서관인데 기존의 도서관 같지 않네요. 지금 방문한 용자들 역시 책을 읽기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 티티섬에 오는 청소년들은 책은 아주 가끔 읽습니다. 하하. 도서관이지만 책 중심이 아닌 사람이라는 콘텐츠가 중심이죠. 변화를 시도하는 도서관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슬로의 비블리오 트윈이라는 청소년 전용 공공도서관이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도서관 규칙도 없고, 사서도 없습니다. 전직 프로듀서, 작가 등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고, 방문하는 청소년들과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는 영감과 관계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분명 기존의 도서관과 다를 것입니다. 티티섬에 오는 용자들도 익숙한 활동에는 적극적이지만 잘 모르는 활동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이곳의 모든 공간을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했으나 영자가 그들을 끊임없이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처음 보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용자가 주도하는 용자 워크숍도 그중 하나인데요. 용자들이 모여서 자신이 잘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각 층에서 버스킹이 이루어지고, 춤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Q. 티티섬의 영자와 용자가 책톡에서 팀 리더와 팀원의 관계와 비슷한 것 같아요. 책톡 사업 또한 애정이 많으신 것으로 압니다.
A. 책톡 또한 굉장히 역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원이 누구이냐에 따라 다르고, 이끌어가는 교사가 어떤 포지션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재단에서 팀 리더를 계속 바꾸려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계속 같은 사람만 하는 건 다양한 자극도 줄 수 없고, 그리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책톡 사업은 우리 재단이 끝까지 가져갈 사업입니다. 기금이 바닥날 때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Q. 이렇게까지 큰 애정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책톡을 통해 기대하는 바가 있으신가요?
A. 현재 전국 400여 개의 학교에 2,500여 명의 학생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책톡을 통해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보다 좀 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학생이 교사를 수업이 아닌 다른 활동으로 만난다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학교 와서 종 치면 앉아있고, 점심시간이면 밥 먹고, 그렇게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이 많잖아요. 제 아들도 그렇게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것을 보았고요. 그 외에 부수적인 효과도 노리고 있긴 합니다. 학생들 간의 관계, 학생과 교사의 관계, 교사와 교사의 관계 역시 유심히 들여다볼 부분이 있습니다. 책톡 활동에서의 콘텐츠 역시 누군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이야기하며 만들어내고 결정하죠. 책톡의 활동이 그것을 경험하거나 지켜보는 또래들, 그리고 하나의 학교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그것이 적어도 나쁜 영향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요.
Q. 티티섬 라이브러리, 혹은 도서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A. 처음 재단을 시작할 때 모았던 기금을 초기엔 부동산을 하거나 금융 투자를 하며 운영을 했었습니다. 현재 부동산은 모두 정리한 상태고, 금융 투자만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30명이 넘는 상황이라 앞으로 10년 정도 보고 있는데, 조만간 바닥날 예정입니다. 건립해서 직접 운영하는 공간들은 지자체에 기부채납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사실 지자체에서는 꺼립니다. 인력과 예산이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인데요. 담작은도서관도 춘천시에 기부채납 했고, 이후의 운영적인 면에서 고민이 생겨 민간위탁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관장님과 함께 일했던 분들이 모여 도서관 운영이 목적인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춘천시가 이 협동조합에 5년간 위탁을 주도록 하고 넘기고 나왔습니다.
이 공간도 임대의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고, 미래엔 이곳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직원들에게도 설명합니다. 영원하지 않다고. 영원한 재단 자체가 이상하죠. 재단을 만든 사람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기금을 다 썼다면 사라지는 거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나 되어야 영원할 수 있겠네요. 워낙 쓸 돈이 많으니. 하하. 삼성사회봉사단이라고 삼성그룹에서 만든 장학재단이 있습니다. 연간 5000억 예산 규모에 직원은 2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 명이 250억 정도를 쓰는 건데, 그 돈이 얼마나 의미 있게 쓰이느냐를 생각해보면 의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재단은 아주 훌륭한 재단입니다. 운영하는 사람에게 50프로의 재원을 쓰고 있거든요. 하하. 미래를 이끌어갈 콘텐츠는 결국 사람이 중심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공간과 달리 제한도 없고 대체 불가능입니다. 시시각각 변하고 관계가 계속 새로 만들어집니다. 책톡 활동도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활동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사람을 만나는 활동이잖아요.
Q. 이사님께서는 어떤 미래를 꿈꾸시나요?
A. 제가 아닌 재단에서 함께 일하는 많은 분들이 꿈을 꾸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방해하지 말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그 중심엔 청소년이 있겠죠. 그래서 언젠가는 교육청이 운영하는 도서관과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청소년이 움직일 수 있도록 자극하고 안내하는 콘텐츠를 교육청 소속 도서관과 함께 만들어 보는 게 꿈이라면 꿈이 될 수 있겠네요. 사실 요즘 경기도교육청에서 견학을 많이 옵니다. 지자체 도서관에 비해 교육청 도서관 근무자가 수적으로 많은 이유는 업무가 많기 때문인데 그들이 바쁜 이유가 청소년을 자극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건축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일을 교육청 도서관에도 함께 할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저희는 아주 뛰어나지도 않고, 엄청 개성 넘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없거나 현재 자신이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 청소년들이 할 거리, 놀 거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그 시간에 학원을 전전하며 좌절감을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내지 말고요. 청소년들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 또한 변화할 수 없어요. 아주 뛰어나거나 생각이 뚜렷한 청소년만 목소리를 내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특기도 취미도 딱히 없는 많은 청소년들이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아지트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체육센터나 청소년문화센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이 안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2022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