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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영 May 23. 2024

새 물건보다 헌 물건을 더 좋아합니다

취향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물건에 한창 집착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빈티지에 미쳐서 살고 있지만, 회사를 다닌 직후였는지 아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였는지 그즈음이었을 거다. 명품을 산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종의 사치가 맞았다. 보상심리였겠지.

어릴 적 일본에서 자란 터라 다양한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는 어딜 가나 찾을 수 있었다. 저만한 양의 스티커북이 나는 2권 동생은 1권 가지고 있었다. 다른 장난감은 많이 사주시지 않으셨지만 유일하게 스티커만큼은 언제든 이야기하면 사주시곤 했다. 나는 입체모양의 물과 반짝이는 별이 들어있어 소리가 나는 스티커들을 특히나 좋아했다. 핑크 말고 스카이블루. 어릴 땐 나는 스카이블루를 내 동생은 연핑크를 좋아했다.


중국에선 줄 곧 보세 옷 혹은 SPA브랜드 아니면 온라인구제에서만 옷을 샀었는데, 한국으로 귀국하고 난 뒤 언제부터인가 운동복은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브랜드의 옷을 입는 것이 당연해졌다. 옷도 대량 생산되는 브랜드에서 사서 입었다. 의류 쇼핑몰을 시작하게 되면서 보세 옷을 잠시 입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지속성과 내구성 현저하게 떨어져 더 이상 저렴하지 않게 보였다. 옷을 팔며 공부했고, 그 덕분에 빈티지샵을 돌아다니며 옷을 살 때마다 핏이나 박음질 그리고 재질과 안감 등등 여러 군데를 모두 보고 가치가 있는 옷들만 쏙쏙 찾아내는데 재미를 붙이니 이보다 더 재미있는 걸 찾을 수 없었다. 굳이 새것이 아니어도 되는 거였다. 나에게 처음 온 물건이라면 그것이 나에겐 새 물건이다.


요즘엔 빈티지한 식기나 물건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점차 내 빈티지의 세상이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어느 시즌 상품인지 알 수 없어 가늠만 하는 재미도 있고, 코디를 해서 입으면 어떤 옷은 00년대 초반 90년대 후반 등 다양한 연령대의 옷이 한 세트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걸 볼 때면 더없이 즐거울 수 없다. 어디에서 왔는지 가늠하지 못하니 편견도 그새 사라지게 된달까. 여전히 사용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와 닮은 물건들을 찾아 모아가는 재미는 나를 꽤나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잠시 내가 나를 잃을 때 ‘나’를 상기시켜 준다. 그냥 빈티지를 좋아한다는 걸 뭐 이리 길게 말하냐 싶겠지만 이런 깊고 깊은 이유들로 난 빈티지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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