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 버프와 재휴학
휴학기 1년은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나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상승곡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지지해주었고 애인이 옆에 있어주었으며 친구들도 나를 응원했다. 그렇게 3월을 맞이했다.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꽤 훌륭하게 1학기를 마쳤다. 성적은 로스쿨에 입학한 이후 최고였고-코로나로 인해 완화된 상대평가 방식이 채택되었기에 그런 학점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나는 변호사 시험을 앞둔 수험생으로서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꾸준히 그를 풀어나가며 한 학기를 잘 보냈다. 아니,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학교도 거의 매일 나갔고, 수업도 빠지지 않았고, 치러야 할 시험들도 잘 쳐냈으니 나는 시간을 잘 보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돌보는 일임을 잊고 말이다.
2학기가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학점을 모두 실무 수업으로 채우니 매주 2-3개의 시험이 있었다. 들어가는 수업마다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로 시작하는 변호사 시험에 대한 압박이 끊이질 않았고, 매주 시험 치는 시험에 대한 평가를 받아 드는 것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공부를 다 해놓고 잠들어도 시험이 있는 아침이면 도무지 침대에서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엄마가, 남자 친구가 몇 번의 전화를 해대도 나는 그냥 도피성으로 잠을 잤다. 시험 시간으로 달리는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도 그날은 공부를 잘해놓았기에 조금은 시험을 쳐볼 마음이 있긴 했다. 친구가 전화를 해서 나를 깨우고 내가 씻는 동안에도 전화를 붙들고 있어 주었다. 그리고 가기 싫다는 나에게 우선 집 밖으로 나가보자고 했다.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런데 도저히 집 앞에서 학교 쪽으로 발이 떨어지질 않는 거다. 울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엉엉 울었다.
'언니 나 못 하겠어. 못 가겠어.'
'그럼 시험 치지 말자. 그냥 학교만 가자. 그래도 괜찮아.'
울음기를 다 지우지 못한 채 학교에 도착했다. 시험이 막 시작할 시간이었다. 시험 때 필요한 필기구를 챙기기 위해 열람실을 들렸다. 그리고 강의실로 가야 했는데, 나는 열람실에 주저앉아버렸다. 눈물이 났다. 나는 이렇게 또 실패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또다시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는 시험이 뭐라고 공부까지 다 해놓고 시험을 치러 가지도 못하는지. 친구가 그렇게까지 격려하고 도와주었는데. 내가 시험이 있는 날, 나를 깨워주고 가기 위해 애인은 2시간의 출근을 선택했는데. 엄마는 내 시험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의 휴가를 냈는데. 그 모든 이들의 노력을 내가 헛되게 했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또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열람실에서 도망치듯 나와 야외 테라스로 갔다. 한참 수업 중일 시간이기에 아무도 없었다. 다시 친구와 전화를 했다. 몇 시간 후 두 번째 시험이 있었기에 친구는 조금 쉬다가 다음 시험이라도 들어가 보자고 했다.
그 길로 카페를 갔다. 그리고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러냈다. 시험 보러 가기 싫어 '죽겠다.'는 말이 딱 내 상황이었다. 나에겐 그 사실이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상태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대로 학기를 강행하면 1년의 휴학 동안 겨우 쌓아왔던 일상생활이 모두 무너질 것만 같았다.
A4용지를 꺼내고 마인드맵을 그려보았다. 가운데엔 크게 '재휴학'이라는 단어를 써넣었다. 그리고 나의 생각들에 대한 가지를 뻗쳐나가기 시작했다. 왜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지 않은지. 해도 되는지, 하면 안 되는지. 나는 남들보다 이미 일 년 늦춰진 상황에서 또 한 번 일 년이 늦춰지는 것에 대한 초조함과 두려움 때문에 겁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겁낼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 어렸고, 일 년이 더 늦춰진다고 해도 여전히 어린 나이대였다. 일 년 늦게 돈을 번다고 해서 우리 집이 망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꾹꾹 내 고민들을 써 내려가다가 엄마에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엄마, 나 휴학 한 번 더 할래.'
눈물이 쏟아졌다.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부모님에게의 미안함, 원하던 졸업을 늦춰야 한다는 아쉬움.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엄마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자며 내 생각을 존중해주었다. 그렇게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내 앞에 가만히 앉아 할 일을 하고 있던 친구는 그제야 나를 바라보았다. 꼭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기다려주었다는 듯.
'휴학 한 번 더 하기로 한 거야?'
'응...'
'잘 생각했어, 언니.'
정말 잘 한 결정이 맞을까 그때까지도 의문이었다. 친구가 건네준 티슈를 받아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확신은 들지 않았다. 또 도망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