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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Nov 05. 2023

지난여름

소란했던 한국과 고요했던 몽골의 기억

    지금 보니 마지막 글이 세 달 전이네. 딱히 바쁜 게 없었던 것 같은데 뭐 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 건지 모르겠다. 일단 여름에 몽골 여행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며 깊이 있는 생각을 정리하고 와야지.. 하는 각오(?)가 있었는데 가서는 생각보다 생각을 정말 안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불안감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 SNS에 짧게 적었던 몽골 후기를 브런치에도 기록한다.




    물 걱정 전기 걱정 없이 개운하게 씻고 밀린 잠 다 자고 일어났다. 꼬박 3일에 걸쳐 천천히 캐리어를 정리하고 빨래를 했다. 자취 시작하고 가장 오래 집을 비운 기간이어서, 집구석 곳곳 쓸고 닦은 후에야 겨우 한숨 돌리고 있다. 대체 귀국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들은 뭐지.. 너무 대단..... 존경...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너무 건조해서 바셀린을 치덕치덕 바르다가 제습기를 사고 물통을 비우고 있자니 아 진짜 한국이구나 싶고, 난방기 냉방기 가습기 제습기가 다 필요한 이 나라는 대체 뭔가 싶기도 하다.

            

    잠시 떠나 있는 동안 한국은 정말 소란했다. 출국날에 들은 어린 선생님 소식이 너무 마음 아팠다. 한국에 비가 많이 온다는 말에 집 천장이 걱정 됐고, 신림역에 일이 났다는 뉴스에 지나가다 현장을 본 우리 학교 학생은 없을지 심장이 떨리다가 데이터가 아예 터지지 않는 날에서야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맑은 날 한적한 호숫가에 앉아서 술 마시고 풍경 보는 시간을 즐기다가도 문득문득 멀리 떠난 어린 선생님과 2학기에 만날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함께 여행하는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평소답지 않은 시끌벅적함이 답답한 마음을 밀어내줬다. 이 시기에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몽골에서 다른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태어난 곳에 따라 삶의 모양이 크게 달라진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여러 조건 중 많은 부분들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결정된다. 그런데 그게 또 어떻게든 살아진다. 캐나다의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지 못한 게 아쉽지만 뭐 어떡하냐... 이미 여기서 이렇게 태어났는데. 살아야지. 나의 최선의 행복을 찾아야지. 안 되겠으면 도망도 쳐야지. 개똥밭(혹은 말똥밭이나 모래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어찌 됐든 살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버티려고 끊었던 티켓이고 너무 지친 상태에서 출발한 여행이라 뭔가 흥이 안 나는 느낌이었는데 그런대로 즐겁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아 감사하다. 다 뒤집어진 피부와 알 수 없는 다리의 멍들 과 허리통증을 남겼지만 후회 없이 아름다웠던 몽골! 바이르싸!



    몽골 여행을 끝내고 귀국한 다음날에 혼자 서이초에 방문했었다. 학교를 빙 둘러싼 근조화환을 보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는 진심이 아니라서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며 먼저 떠나가는 세상이 착잡했고 그 착잡한 세상을 만드는 데에 진심이 아닌 내가 일조한 것 같아 미안했다. 몇 달간 떠올리지 않고 살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다시 눈물이 난다. 떠나간 사람들이 평화롭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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