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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r 17. 2024

조금 더 자유롭고 재수 없었을 나는

    작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올해에도 발달장애인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에 참여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당사자성을 가지고 서로 경청하며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 참 귀하다. 이번 모임에서는 몇 가지 질문에 자기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질문 중 하나가 유독 인상 깊었다.


    ‘장애형제가 없었다면 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 했을 것이다’


    이 문장이 현실치료의 기적질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적질문이란 현실치료라는 상담방식에서 사용되는 상담기법의 하나로, ‘만약 기적이 일어나서 당신이 잠든 사이에 당신이 가진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신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당신이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요?’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담자가 정말로 바라는 모습, 내담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행복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희망과 동기를 부여하고, 방향성을 설정하도록 돕는 기능을 가진다.


    작년에 집단상담을 받을 때 상담자님께서 ‘혜은 씨는 자기에 대해 탐색할 충분한 역량이 있는데, 그걸 전혀 안 해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최근 들어 스스로 많이 느끼는 바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참 모른다. 장애형제가 없었다면 어땠을지를 묻는 변형형 기적질문(?)을 마주하자 나를 ‘나’로만 보고 ‘나’만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았던 것이 하나의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장애형제는 손위형제라 장애형제가 없는 삶을 한 순간도 살아 본 적이 없다. 아주 어렸던 시절에는 언니의 장애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겠지만 그때는 기억 자체가 나지 않는다. 기적을 동원해야만 겨우 잠깐 지워지는 장애형제의 존재가 삶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언니가, 언니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평소 생각해 봤던 주제는 아니었지만 답변하기 어려운 주제도 아니었다. 문장을 보자마자 ‘자유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딱히 언니 때문에 못 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대학을 서울로 올 때에도 교환학생을 떠날 때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선택 이후에는 언제나 나만 (운 좋게도) 장애가 없어서 언니가 못 누리는 걸 누린다는 은은한 죄책감이 따랐다. 이런 감정을 느끼고 산다는 걸 인식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니 당연히 버릴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몰 토크일 뿐인 형제자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관계까지 숨기고 어떤 관계에서부터 드러낼 것인지, 드러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나 결과는 어떨 것인지, 나는 과연 어떻게 얘기하고 싶은 건지 고민도 많이 했다. 하루에 한 통 씩은 꼭 오는 언니의 전화가 너무 숨 막히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었다. 이런 순간순간들이 사실은 나에게 스트레스였나 보다. 언니가 없었다면 자유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걸 보면.


    하지만 그 생각만 들었던 건 아니다. 언니가, 언니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조금 더 재수 없었을 것 같다. 임용시험을 준비하기 전 기업 면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다대다 면접에서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주어졌는데, 한 사람이 이렇게 답변했다.


    “제 좌우명은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입니다!”


    그 말을 듣는데 너무 화가 났다.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름을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복지 관련 기업의 면접이었는데, 복지를 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말할 수 있지? 복지대상자한테도 그렇게 말할 건가?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고? 그러니 힘내서 해내라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그렇게까지 분하게 들렸던 이유는 언니의 존재가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바로 앞 문장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으로 쓸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으로 쓸지 고민을 좀 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 되는 것 같아서. 느낌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하는 건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 내가 느끼는 게 내 세계의 진실이라는 생각이 부딪친다. 모르겠다. 일단은 느낌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언니가, 언니의 장애가 내 삶에 떡하니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마음에 많이 화가 났었나 보다.


    그런데 언니가, 언니의 장애가 없었다면 내 좌우명도 그와 뭐가 그렇게 달랐을까 싶다. 조금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고, 길지 않은 인생인지라 아직은 알 수 없는 거지만, 아무튼 지금까지의 삶에서만 보자면 내 노력은 나를 크게 배신한 적이 없다.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올랐고 시험을 치면 합격을 했다. 인간관계에서도 엄청난 실패나 좌절을 경험한 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이런 직선적인 노력-결과의 삶에서 언니마저 없었다면 나도 어딘가에서 ‘노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류의 좌우명을 당당히 외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장애형제가,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재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덜 재수 없으니 장애형제의 존재가 감사하다~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좀 재수 없어도 자유로웠을 기적 속의 혜은이가 미치게 부럽다. 너무너무 부러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다른 방법이 있나. 언니와 함께하는 오늘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현실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긁어모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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