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옵니언 Oct 13. 2023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오고 나서

2023 부산국제영화제 후기


 2023 부산국제영화제에 약 일주일 정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은 하고 다니지만, 그 이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정도로 지적인 밑바탕이 마련되지는않은 터라 가볍게 즐기러 갔다고 보는 편이 어울릴 법 합니다. 나름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개봉 가능할 영화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웬만하면 접하지 못할 영화들을 우선으로 시간표를 꾸리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꽤나  살인적인 계획표가 짜여졌다라고요... 6일 동안 약 18편 정도 가까이 본 것 같습니다.


  원래는 보고 온 영화들에 대한 평가이거나 후기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록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만, 생각 외로 발견한 영화들에 대해 할 말이 필요해 보이더라고요. 저에게 있어 할 말이 많다는 것은 작품의 성취가 뛰어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아닙니다. 작품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텍스트 안쪽에서 여전히 설명할 것이 필요하거나 혹은, 주관적인 감상에 젖어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근질거림 같은 것에 오히려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약 18편의 영화(그 중 3편 정도는 입장 시간을 헷갈렸거나, 도중에 졸아버려서 보았다고 하기 애매했습니다...)에 대한 짤막한 문장이거나 단상이라도 정리해 둘 필요를 느낀 것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사실상, 지금 '이것들'을 말하지 않으면 나중가서 말할 기회가 보다 적어질 것 같다는 조바심 때문이기도 하죠.


  여전히 영화관을 나오는 직후부터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 생생하게 감흥에 젖게 만들었던 영화들이 있습니다. 몇몇 짚어보자면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은 영화적 각본이 최대로 힘을 발휘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짜여질 수 있는가에 대한 절묘한 저울대 같고(심지어 이를 정말 완벽하게 수행합니다), 팜 티엔 안의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이거나 푸티퐁 아룬펭의 <모리슨>은 최근 아시아 권에서 가장 마술적인 카메라 렌즈를 가졌다고 여겨지는 '비간'의 영향력을 각각의 언어에 어떻게 녹여냈는가에 대한 훌륭한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장면들에 대해선 오랫동안 말해도 질리지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되네요. 영화를 보고 난 평가들 역시 개인적인 취향에 가깝고 찰나의 순간 단숨에 뽑아낸 문장들입니다. 영화 전체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깊거나 정확하지 않더라도 숨겨진 부분을 쬘 수 있는 발돋움처럼 자리했으면 좋겠네요. 


  점수는 별 5개 만점으로 책정했고 영화에 대한 정보와 간략한 한 줄 평 정도만 적어둘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by. filmstone


-----------------


 <모든 것의 설명> ★★★☆

  감독 : 가보르 레이스

  제작 국가 : 헝가리, 슬로바키아


     - 설명하면서도 조율되지 않는 일, 서로의 치부를 확인시켜야 마지못해 봉합되는 일.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

  감독 : 팜 티엔 안

  제작 국가 : 베트남


     - 외피의 믿음으로부터 탈각된 영혼이 누에고치 속에서 다시 단단히 여물기까지.



<비행자들> ★★★☆

  감독 : 로드리고 모레노

  제작 국가 : 아르헨티나


     - 능선을 걷다보면 어느샌가 예상치 못한 곳에 와 있더라.



<홀리>  ★★

  감독 : 핀 트로호

  제작 국가 : 룩셈부르크


     - 허리를 굽히면서까지 조각들을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포 도터스> ★★★★

  감독 : 카우타르 벤 하니야

  제작 국가: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 투쟁의 현재는 렌즈 위로 투영되고 다시 다큐의 어법으로 되감싸진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제작 국가 : 일본


     - 악행에서 악이 지워지는 순간, 각자의 영역을 지키려는 당위만 남을 뿐, 교묘하게 위장하고 지독하게 선고한다.



<사라진 소년병> ★★

  감독 : 대니 로젠버그

  제작 국가 : 이스라엘


     - 어설프게 걸쳐진 시의성, 얕은 고민으로 해결하려는 만용.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

  감독 : 라두 주데

  제작 국가 : 루마니아


     - 착취되는 건 노동 뿐만이 아닌 시간일지도.



<모리슨> ★★★★☆

  감독 : 푸티퐁 아룬펭

  제작 국각 : 태국


     - 이어질 수 없는 공간들을 기필코 잇는 미러볼의 규칙.



<청춘(봄)> ★★★

  감독 : 왕빙

  제작 국가 : 중국, 프랑스


     - 건져낼 수도, 건져지지도 않는 날 것의 삶 그 자체.



<블라가의 마지막 수업> ★★★☆

  감독 : 스테판 코만다례프

  제작 국가 : 불가리아


     - 쉽게 등을 내주는 만큼, 쉽게 등을 돌리게 되는.



<유령들의 초상> ★★★

  감독 :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제작 국가 : 브라질


     - 무너진 공간을 톺는 기억의 상흔들.



<찬란한 내일로> ★★★

  감독 : 난니 모레티

  제작 국가 : 이탈리아


     - 세상을 기억하는 영화, 영화로 기억되는 세상, 정치적인 관계 속 부산스런 율동.



<독전 2> ★☆

  감독 : 백종열

  제작 국가 : 한국


     - 정말, 처절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바튼 아카데미> ★★★☆

  감독 : 알렉산더 페인

  제작 국가 : 미국


     - 밉지만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