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나의 꿈은 부모님의 꿈이었다.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른바 ‘사'자가 들어간 직업을 갖는 것은 그 당시 대부분 부모님의 꿈이었으리라. 나 역시 드라마 속 변호사, 검사가 멋있어 보였다. 학교 진로 희망 조사서에 쓰는 나의 꿈과 부모님의 꿈을 적는 칸은 항상 일치했다.
20대에 들어서는 광고 전공에 따라 광고 기획자를 꿈꿨다. 그들이 하는 행동과 말은 모든 게 다 ‘크리에이티브'해 보였고, 심지어는 헝클어진 머리 스타일마저 멋있어 보였다. 광고회사는 그렇게 야근이 심하다고 하던데 그 열정이 대단해 보였고 광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광고업은 광고홍보학을 전공하는 새내기에게 멋진 목표가 되어줬다. 학기 중에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수업을 듣고 방학 중에는 친구들과 함께 공모전을 도전했다. 한 2년 정도 그렇게 했을까, 나라는 사람에게는 ‘크리에이티브함’이 전혀 내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홍보로 진로를 바꿨다. (‘광고’와 ‘홍보' 구분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아 덧붙이자면, 홍보는 미디어를 대상으로 기업과 제품을 알리는 언론홍보부터 실제 소비자 이벤트 운영 등의 일을 일컫는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특히나 홍보업은 인력을 갈아 넣어 수익을 올리는 구조였다.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일을 하느냐, 내가 얼마나 많은 클라이언트를 맡느냐가 곧 매출로 직결됐다. 인내심과 성실함 빼면 시체이던 신입 시절의 나는 ‘회사 불 끄고 퇴근하는 애’로 불릴 만큼 오랜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이 부분을 인정받아 회사에서도 안정적인 포지션을 가져갈 수 있었다. 안정감을 최우선시하던 나는 ‘홍보가 내 적성에 맞는구나’ 여기며 4년 동안 회사를 다녔다. 아마도 팀장과의 큰 갈등을 겪지 않았다면 아직도 홍보 대행사에서 열심히 나를 갈아 넣으며 일하고 있을 테지.
두 번째로 다닌 회사에서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일을 하게 됐다. 광고 전공과 홍보 경력, 이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어 ‘더 이상의 이직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는 매체, 인플루언서, 소비자 등등 모든 집단과의 소통을 포함한다. 귀신보다도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라는데, 사람과 소통하는 걸 업으로 삼다 보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게 일상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최신 트렌드를 경험하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직무라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2023년. 회사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와 걷던 중 찍은 사진
하지만, 나는 40대에 은퇴를 꿈꾼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고되고 일이 지쳐서? 아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직업’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10대와 20대 때에는 내가 가진 ‘직업'이 곧 ‘내 인생'이라고 여겼다. 내가 하는 일이 내 개인적인 시간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신입 시절에는 거의 저녁 없는 삶을 살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이런 생활을 6-7년 정도 했을까, 문득 ‘회사에서의 내 모습’과 ‘회사 밖에서의 내 모습’의 간극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을 느꼈다.
회사 밖에서의 나는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고 얘기 나눠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의 나는 새로운 자극을 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어려워했다.
퇴근 후 친구와 함께한 저녁 식사 후, 한강 공원을 따라 걷던 길
이러한 간극을 느끼고 난 이후로는 내 사생활이 직장에 의해 침범받을 때마다 예민해졌다. 바쁜 시즌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야근이라던가 퇴근 전 갑자기 들어온 업무 요청들. 싫어하는 것을 넘어,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내 직업과 회사에 대한 원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내 나이 32살, 누구는 한창 일할 나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40대 은퇴'를 결심하게 된 때였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때까지는 직업의 개념이 ‘내가 삶을 살 수 있는데 필요한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을 충족시켜 주는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있어 돈이 필요했고,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에는 소속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업에 대한 정의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40살을 넘겨서는 다른 정의를 택하고 싶다. 회사 이름이나 소속에 얽매이기보다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 내 마음이 편안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며칠 전, 팀원들과 점심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언제쯤 은퇴할 계획이냐는 팀장님의 질문에 “40살에 은퇴해서 가죽 공방을 차릴 거예요"라는 답변을 건넸다. 이미 마흔을 넘긴 팀장님은 본인을 보라며, 은퇴가 그리 쉬울 것 같냐는 농담을 했다. 주위 친구들 역시 손재주 하나 없는 내가 공방을 운영한다고 하면 적자나 안 나면 다행이라고 타박을 한다.
사실, 나의 ‘공방 창업 계획’에는 직업의 개념을 넘어 ‘나의 공간'에 대한 욕심이 투영되어 있다. 자그마한 공간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 안을 추억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하는. 이 계획을 위해, 나머지 8년의 직장 생활을 이겨내보려고 한다. 마흔에 이르러 ‘진짜 내 삶'을 살기 위해 잠시 투자한다고 여기고. 그러면 정말 8년 뒤에는 내 이름을 건 공방을 차리고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내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