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슐머신, 노잼시기, 노비팔자, 그래도 산다
커피머신이 갖고 싶어서 당근을 뒤지다 큐리그 머신을 봤다. 원래는 거의 대한민국 보급품 수준의 일리 3.3이나 7.1을 사려고 했는데 남들 다 사는 거 사기 싫은 청개구리짓이 도진 거지. 미쿡 언냐들 브이로그에 많이 보여서 검색해 봤더니 북미 쪽 국민머신 이래네. 후기 찾아보니까 압력으로 추출하는 게 아니라 드립 형식이라고. 캡슐 구매도 쿠팡이나 직구로 충분히 가능. 다른 모델도 올라왔던데 얘는 추출량 조절이 돼서 좋은 것 같더라고. 결정적으로 이게 이만 원에 올라와서 그냥 ‘이거 사야지!’가 됐다. 근데 너무 무거워서 들고 오는데 택시비 만 사천 원 씀. 그래도 같은 모델이 사만 원에 올라온 걸 봤기 때문에 그보다는 싸게 산 걸로. 첫날은 캡슐이 안 와서 청소만 해놓고 쿠팡맨만 목 빠지게 기다림. 캡슐 오자마자 바로 내려먹어 봤는데 저 레버 내릴 때 기분 되게 좋음. 뭔가 묵직해. 어딘지 미쿡 키친 분위기 나. 혼자서 상상 속 브이로그 촬영함. 커피맛은 무난. 어차피 카페인 수혈이 목적이고 맛있는 커피는 핸드드립 하면 되고 라떼는 모카포트 쓰면 되고. (이미 웬만한 커피 도구는 다 있음) 에쏘 머신은 나중에 유라나 밀리타로 사고 싶다. 꿈만 꾼다.
또 왔다, 노잼시기. 너무 자주 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보통은 요때 많이 온다. 올 한 해 또 어떻게 버티지?라는 의문과 이맘때쯤이면 꼭 나오는 퇴사자들. 다들 이미 집에 주 수입자가 있는 상황이라 나랑은 다르지만 그래도 퇴사하는 사람들 보면 싱숭생숭하다. 나만 이렇게 억지로 돈 벌러 다니나 싶어서. 그리고 나는 1,2월이 제일 수업이 적은데 그것도 한몫하는 듯. 안 바쁘니까 쓸데없는 생각만 자꾸 는다. 차라리 바쁘면 일하느라 딴생각할 틈이 없을 텐데. 이래서 사람들이 날 보고 노비 팔자라고 하나 보다. 나는 예전부터 시험기간에는 멀쩡하다 시험만 끝나면 앓아누웠다. 바쁜 중에는 아플 틈도 없는 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월화수목금금금일 때는 쌩쌩하다가 여유만 생기면 드러눕는다. 점 보러 갔을 때도 백수 될까 봐 겁난다 했더니 코웃음 치면서 아가씨는 평생 놀고먹는 수는 없다 그러더라.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할 팔자래. 그 말 듣고 얼마나 좌절했는지. 나도 돈 많은 백수 하고 싶다고, 집에서 놀면서 돈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를 보여줄 수 있다고. 근데 틀린 말이 아닌 게 요즘 일이 좀 널널하니까 불안해져서 뭐 할 거 없나- 하면서 당근에 부업 알바를 찾고 있더라. 당장 다음 달부터 수업이 늘어서 어떨까 싶긴 하지만 주말에라도 노는 시간에 하면 좋지 않을까? 계속 고민 중. 그거라도 하면 잡생각 안 나지 않을까?
체감상 사회생활 시작한 이래 경기가 최악이다. 코로나 때도 이 정도 불안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22년 3월 어느 날 가지고 있던 국내주식 팔아서 s&p랑 나스닥 etf로 갈아탄 나 칭찬해. 27년까지 국내 주식은 쳐다도 안 볼 거다. 최대한 절약해 보려고 강제로 적금도 넣는 중. 언제 깨야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이자가 적어도 작은 돈으로 여러 개를 들었다. 나는 저런 식으로 빨리빨리 만기를 만드는 게 성취감이 들어서 더 좋더라. 하나 만기되면 비상금 통장에 일부 넣어두고 etf로. 재테크 고수들이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그냥 내가 편한 대로 하고 살래. 신용카드도 5년 가까이 안 쓰다가 최근에 만들었다. 신용카드가 없으니 결제일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는데 나이 드니까 혹시 큰 일 생겼을 때(병원이나 큰 가전 같은)를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신용카드를 적당히 쓰는 게 신용점수 관리에 좋다고. 그래도 결제일 걱정하는 거 싫어서 쓰면 무조건 다음날 즉시 결제로 메꾼다. 현재는 엄마 식세기 할부만 10만 원씩 빠지는 중.
이러고 보면 노잼에 우울에 경기침체까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은 다 휘감고 있으면서도 어찌 저찌 산다 싶다. 살아있는 한 안 힘들 수는 없다는 걸 알아서인가.
기왕 태어난 거 X 같아도, 그래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