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찹, 밥도둑을 만났다.
얼마 전 오랜만에 했던 메추리알 장조림을 아들도 신랑도 나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배송으로 만난 재료들을 아침부터 신나게 주방에서 펼쳐보았다.
한 번 해봤다고 후다닥, 불을 켜고 순식간에 완성된 밥도둑 메추리알 장조림, 이번에도 성공이다.
음, 괜히 출발이 좋다.
그럼 이번엔 다른 반찬도 해볼까?
최근 작가님들의 글을 염탐하면서 보게 된 진미채와 잡채를 하려고 장을 봤으니 해야겠지?
손도 몸도 마음까지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방 근처만 가면 머뭇거렸던, 모든 게 낯설었던 그 시기가 지나고 어느새 10년 차 주부다.
익숙하지 않았던 주방이 제일 설레는 공간이 되기까지 굉장히 자연스럽게 흘러간 시간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집에서만큼은 가장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내 공간이다.
아직도 요리를 잘할 줄은 모른다.
그냥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맛은 뭐.. 가끔 얻어걸리면 진짜 맛있게 되긴 한다.
그런 날은 무조건 며칠 뒤에 다시 해서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지만, 사실 며칠 지나고 나면 사라지는 기억이다.
엉뚱하고 사소한 기억은 잘도 해가며 스스로 힘들게 괴롭히면서 이런 중요한 레시피는 억울하게도 바로 기억 상실이다.
매콤한 진미채, 이젠 아들 녀석도 매콤한 걸 즐기는 요즘이라 부담이 없었다.
오징어가 너무 두꺼워서 잘게 찢어내는 노동을 할 줄은 예상도 못했지만 나름 생각 없이 찢어대는 무한반복을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했다.
역시 나는 단순 노동을 추구하는 몸뚱이가 확실하다.
양념장에 휘리릭 볶아내고 참기름에 깨소금을 촤~! 마무리를 지어보니 매콤하고 달콤한 게 이 녀석도 분명 밥도둑이 확실하다.
백반집이나 구내식당, 반찬가게에서 진미채 볶음은 늘 나에겐 1등 반찬이었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 는 아직 멀었으나, 내가 부추를 뭐 하려고 샀더라?
기억을 되짚어 눈앞에 당면을 보니 아차! 잡채다!
다른 채소들이 있는지 냉장고 털기를 자동으로 할 수밖에 없다.
양파 조금, 당근 조금 남아있길래 합류, 순식간에 한 접시 완성, 맛을 본 순간 후회했다.
양을 더 많이 했어야 했다.
어쩜, 간이 또 딱 맞는다.
오늘은 뭘 해도 얻어걸리는 날이로구나~!
뿌듯하다.
이왕 맛있으니 아들 녀석 영어학원 가기 전에 간식으로 슬쩍 맛을 보여주기로 한다.
결과는 최고다.
먹는 내내 웃으며 감동하는 아들 녀석의 표정을 보니 오늘은 비빔면을 이긴 날이 확실했다.
김치찌개, 아들 녀석 최애 메뉴다.
국물에 푹~! 졸여진 두부를 원하는 탓에 미리미리 끓여야 한다.
잡채까지 성공한 마당에 김치찌개는 뭐, 껌이다.
마침 삼겹살이 있었고, 두부도 있었고, 안 할 이유가 없는 김치찌개, 당연히 이 녀석도 밥도둑이다.
칼칼하게 끓여두고 저녁에 또 끓이면 완벽하니 오늘은 진짜 폭식, 과식의 날이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크, 벌써 몇 개를 한 거야. 도둑 중에서도 밥도둑은 집에 항시 들여야 마땅하다.
어쩐 일로, 저질체력이 오늘따라 도와준다.
물론 밤에 기절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쌩쌩한 몸뚱이 조금 더 에너지를 빌려본다.
최근에 시장에서 감자를 잔뜩 사 왔다.
그리고 며칠 전엔 나눔으로 보냈던 가구가 있는데, 가져가시면서 감자 한 봉지를 놓고 가시는 배려와 센스를 보여주신 덕에 본의 아니게 감자 부자가 되었다.
강판에 갈갈갈갈, 갈아주고 수분을 쫙 빼준 후 아주 잠시 두었다가 물 버리고 전분만 살렸다.
갈아둔 감자와 함께 섞어서 소금 간을 해주고 바로 프라이팬으로 직행, 기름 두르고 손바닥만 하게 감자를 올려 익힌다.
꾹꾹 눌러 지글지글, 역시 기름에 부쳐먹고 튀겨 먹는 건 다 맛있다.
밥도둑들이 많으니 심심하고 고소하니 감자전도 딱 어울린다.
기가 막히게 신나는 주방 놀이를 했더니 흐뭇, 가족과 함께 먹는 집밥이 오늘은 유독 더 맛있다.
앞으로 작가님들의 요리 레시피는 우리 집 밥상에 자주 올려야겠다.
메뉴고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번주가 벌써 든든하다.
아주 행복하고 뿌듯하고 맛있는 밥도둑과 함께 한 시간, 부지런함이 발동 걸리 듯 귀차니즘은 물러간 하루, 주방놀이가 새삼 재밌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