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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Oct 25. 2022

카메라의 무게

04. 지금 목에 걸고 있는 그것은 마패가 아니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썰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기나긴 취준 생활로 지쳐 있던 시기, 점심시간 오피스 단지를 지나가다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까지 느꼈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점심시간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직장인들의 목에는 하나 같이 저마다의 사원증이 걸려 있는데, 마치 '나 OO기업 다녀요~'라고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그런데 취준 생활 끝에 자신도 직장인이 되고 보니 점심시간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원증을 뺄 정신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이 썰을 읽으며 많은 직장인들이 실소했을 것 같다. 나 또한 회사에서 퇴근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을 때, 여태 사원증이 목이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어쨌든 실제 직장인들에게 사원증이란 출퇴근 기록을 태그 하기 위한, 혹은 기업의 임직원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고될수록 속된 말로 자신을 묶어 두는 '목줄'이라고 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직장인들의 목에는 사원증이 걸려 있다면, 블로거들의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다. 그렇다면 블로거에게 카메라란 무슨 의미일까?







신림동 순대타운 사장님의 한숨



신림동 순대타운에 맛집 체험단 건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신림동 근방에 몇 년을 살면서 얘기만 숱하게 들어 보았지, 실제로 가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 건물에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백순대 전문점만 몇십 개(건물 전 층이 다 백 순댓집인 것을 감안하면 족히 100집은 될 터)가 몰려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들깨 가루의 꼬순내와 감칠맛 나는 양념장을 푹 찍어 맛있게 먹고 있던 그때, 사장님이 근심 어린 얼굴로 우리 테이블 옆에 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 여기서 몇십 년 동안 장사했는데, 홍보니 뭐니 그런 거 여태껏 아무것도 모르고 해 본 적도 없어. 그냥 성실하게만 장사해서 우리 아들 딸 대학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다 했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복 입은 젊은 사람들이 와서 요새 파워 블로거다 뭐다 해가지고 홍보해야 한다면서 나를 막 설득하는 거야. 그러더니 계약금을 먼저 내야 한다면서 백만 원을 이체하라고 해서 또 얼떨결에 그 자리에서 이체해버렸지 뭐야? 근데 그 양복쟁이들 가고 나니까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는 거야. 정말 이렇게 하는 거 맞나, 나 혹시 사기당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요새 잠도 못 자... 젊은 이들은 이런 거 잘 알 거 아니야? 원래 이렇게들 백만 원 이백만 원씩 턱 턱 계약하고 그래? 잘한 거 맞아?"


그러면서 사장님은 체험단 업체 영업 담당자와 나눈 문자 내역을 보여주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체험단 업체의 매출 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스물서너 살의 내가 느끼기에 계약금으로만 백만 원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심지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7평 남짓한 순댓집에서. 그저 자식들 먹여 살리는 것 말고는 이제 더 바라는 것도 없다는 사장님에게도 백, 이백 하는 단위는 꽤나 부담스럽긴 매한가지였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바로 그 체험단 업체를 통해서 방문했다는 사실이었다. 체험단 업체 담당자와 본 적도, 얘기한 적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중간에서 말 한마디 잘못 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체험단 업체를 나쁜 쪽으로만 몰아가면, 그 업체를 통해서 방문한 나는 뭐가 되는 것인가. 그래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면서 사장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사장님, 거기 엄청 큰 회사예요. 저는 사장님들이 체험단 계약할 때 보통 얼마씩 계약하는지는 몰랐는데 백만 원은 생각보다 많이 비싸긴 하네요. 그래도 저도 이렇게 그 회사 통해서 연결받아서 왔고, 다른 분들도 다 글 잘 써주실 거예요. 적어도 사기 치는 데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 사기 치는 곳들은 돈만 받고 블로거 안 보내준대요."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런 얘기를 들은 건 어찌 보면 다행이라 느끼기도 했다. 이후로 다른 체험 건으로 매장에 방문했을 때, 불쾌한 태도로 블로거를 대하는 업주들을 볼 때가 종종 있었다. 신림동 순대타운 사장님의 이야기를 먼저 듣지 못했더라면, '아, 사장님도 체험단 생각 없었는데 업체의 영업에 잘못 넘어가 계약했구나...'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겠지.


물론 모든 체험단 업체의 영업 담당자가 저렇게 밀어붙이기 식으로만 영업하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그때의 업체 또한 지금까지 1위 업체로서의 명맥을 이어 오면서 영업 방식이 많이 점잖게(?) 바뀌었다. 그때보다 체험단 업체 수많아져, 체험단 업체의 전반적인 진행 비용 또한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되었다.


어쨌든 순대타운 사장님의 하소연에 가까운 고민을 듣고 나서,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겠다는 가벼운 마음 정도로 이 일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체험단 업체의 영업에 못 이겨 진행하게 됐는지, 광고주가 스스로 원해서 계약했는지는 모르지만, 가능한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을지 몰라도, 방문하는 블로거들이 계속해서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홍보 효과까지 확실하게 볼 수 있다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날, 백순대를 먹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만 느껴졌다.




카메라 하나 멨다고 목에 힘주지 말자.



보통 1:1 예약제로 운영되어 다른 손님을 마주칠 일이 많지 않은 뷰티숍에 비해, 음식점의 경우(예약 후 방문하더라도) 일반 손님들과 함께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활발히 블로거 활동을 하던 시기는 '블로거지'라는 뭇매를 많이 맞던 시기였는데, 가뜩이나 소심하고 남들 눈치 많이 보는 나는 체험단으로 음식점에 방문할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상상해보라.


일단 매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다. 매장의 외관을 한 번에 담으려면 가까이서 찍기보다는 길 건너에서 담는 것이 수월하다. 그렇다면 저 멀리서부터 카메라를 들고, 모델도 없는 매장 외관을 찰칵찰칵 찍어 대야 한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가서는 가장 먼저 사장님 혹은 직원분께 예약 사실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매장 곳곳을 돌며 사진을 찍는다.


아마 제 3자가 보았을 엄청 튀는 손님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테이블에서 '블로거인가 봐' 하며 수군수군 대는 듣기도 했다. 매장 안에서 사진 찍을 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늘 다른 사람들이 나오지 않게 찍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어필하기 위해 애썼다. "지금 내 카메라에 님들 안 나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진을 찍어대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 손님도 있었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와 남들 눈치 많이 보는 성격, 어떻게든 남에게 피해 안 주려고 하는 성격 탓에 블로거로 방문한 곳에서는 행동거지 하나하나 더 신경 썼다. 분명 매장 측에서 잘못 한 사실이 있어도, 일반 손님으로 갔더라면 잘잘못을 따졌을 일도 웬만하면 그냥 좋게 넘어갔다. '블로거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어떤 사람의 일화처럼, 나 한 사람의 행동으로 블로거 전체가 손가락질받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렇게 늘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로 체험에 임하고, 나를 불러준 것에 대해(물론 선정은 체험단 업체가 했을지라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졌더니 오히려 나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주로 뷰티숍 쪽에서는 고정으로 협찬을 해주겠다며 제안해주어 꾸준히 인연을 이어온 곳이 종종 있었고, 드물지만 음식점에서도 재방문 연락이 오기도 했다. "OOO님 지난번에 OO체험단 통해서 오셨었죠. 그때 후기 잘 써 주셔서 너무 감사했는데 이번에 시간 되시면 또 식사하러 오세요."라고 말이다.


재방문 요청을 바라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물론 내 글로 인해 홍보 효과를 보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 됐든 업체와 블로거 또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아니던가. 아무리 상위 노출이 잘 되고 홍보 효과가 좋았더라도 방문했던 블로거에 대한 기억이 엉망이라면 굳이 그 블로거를 다시 매장에 부르지는 않을 거다. 멀리 본다면 체험단으로 방문한 곳을 단지 '한 다녀오고 가면 그만인 곳'으로만 여겨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목에 건 카메라를 암행어사의 마패 쯤으로 착각하지는 말자,라고 그렇게 늘 되새겼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때, 개인적으로는 카메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스트랩으로 목, 혹은 어깨에 걸치는 것을 선호했다. 평소 자그마한 미니백, 토트백 종류를 선호하는데 카메라를 가방에 넣기엔 역부족인 데다가, 시꺼멓고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20대 시절 한창 예쁘게 꾸몄던 나의 아웃핏을 해치는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사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로도 일반 카메라 못지않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게다가 완전히 흐릿하고 깨지는 사진이 아니라면, 카메라로 찍으나 핸드폰으로 찍으나 상위 노출 로직에 있어서도 차이가 없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하이엔드 디카 종류도 있으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꼭 '목에 건' 커다란 카메라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블로그 체험단은 유의미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 또한 아직도 종종 체험단에 참여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셔터질이 업체에는 어떤 의미일까 상기시켜 본다. 체험단 통해서 진행되는 건이라면 한 명 선정하기 위해 들였을 블로거 수고비, 그리고 방문했을 무상으로 제공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비용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무겁게 숙여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카메라 참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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