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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Nov 03. 2022

블태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05. 블태기 극복!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요즘 블태기(블로그+권태기)다.


고백건대 10월 한 달 동안 글을 다섯 개 밖에 안 올렸다. '블로그'를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면서 정작 그 주제가 되는 블로그에는 소홀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마저도 10월 1일 날 두 개를 연달아 쓰고, 14일, 22일, 28일 이렇게 썼으니 일주일에 한 번 가뭄에 콩 나듯 올린 셈이다.


블로그는 나의 오랜 취미이자,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 같은 존재다. 그래서 조금 귀찮아졌다고, 혹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고 블로그를 아예 안 해버릴 생각은 없다. '블로그에도 글 올려야 하는데...' 불편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떠다닌다.


비록 글을 쓰거나 이웃들과 소통을 하지는 않지만 하루에도 네댓 번씩 블로그에 들락날락한다. 마치 '잊지 않고 있어. 나 곧 다시 블로그에도 글 쓰러 올 거야'라고 안심시키듯.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3, 6, 9의 법칙(3개월/6개월/9개월마다 혹은 3년/6년/9년마다 이직 뽐뿌가 오는 것)이 있는 것처럼 블로거들에게도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지독한 권태감이 있다. 이름하야 블태기. 그리고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니?!
- 블로그 계의 역병 '저품질' 현상


첫 번째는 '저품질' 때문에 찾아오는 블태기다.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점차 방문자수가 늘어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체험단 무상제공, 기자단 원고료, 광고 수익 등과 같은 각종 부수입에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은 마치 달콤한 사탕처럼 엄청난 중독성을 가졌다. 시간이 갈수록 짭짤한 부수입을 가져다주는 글 외에는 소홀하게 된다. 의도치 않더라도 수익성/의무성 포스팅을 작성하기 바빠 점점 자발적 포스팅은 할 여력이 없어지기도 한다.


물론 모든 블로거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경우, 처음에는 일상의 소소한 기록 정도로 시작했더라도 점차 블로그 수익화의 달콤한 맛에 빠지면 점점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심이리라. 하지만 거기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방문자 수가 1/10, 혹은 그 이하로 곤두박질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고, 포스팅 발행 이후 평소와 같이 검색 노출 순위를 확인하다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 글 때문에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썼다 하면 좋은 키워드에 상위 노출이 되고, 훌륭한 홍보 효과를 지녀 빵빵한 방문자수를 자랑하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광고 제안이 끊임없이 들어오던 블로그가, 어느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 그야말로 블로그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물론 네이버에서는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저품질 블로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저품질의 원인이나 해결방법 등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면 해야 할 얘기가 너무 많고 이번 글과는 주제가 맞지 않으니 언급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일단 저품질에 걸린 블로그를 살려야 하니 각종 방법을 찾아 시도해본다. 광고성 짙은 글들을 삭제하거나 비공개하기도 하고, 갑자기 글을 없애 버리는 것도 안 좋다며 기존 글은 그대로 둔 채 광고 없는 일상 게시글만 연달아 올려 보기도 한다. 누구는 일주일 만에, 누구는 한 달 만에 돌아왔다고 하고, 누구는 결국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해봐도 소용없을 땐 결국 새 아이디를 만들어 처음부터 다시 차곡차곡 쌓아 가기도 한다.


물론 내가 전부 겪은 일이다.


플랜 A, 플랜 B... 그리고 최후의 수단인 '블로그 이사'까지. 그런데 이 과정을 겪다 보면 블로그에 대한 애정의 불씨가 말라 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 배신자#@&!%#*₩...'


저품질에 걸리기 전 이미 진행키로 약속해 놓은 홍보 건들 이 아직 남아 있으면 그나마 덜 하다. 일단 얘네는 책임 지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니까. 그런데 올리기로 약속된 포스팅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면 의욕이 점점 사그라드는 것이다.


'어차피 올려봤자 볼 사람도 없는데 뭐하러 이것저것 올리나. 블로그 다 부질없네.'


이렇게 블로그 저품질은 우리를 블태기로 몰아넣는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다음은 그냥 만사가 다 귀찮고 하기 싫어지는 거다. 일종의 무기력증과도 같다. 블로그엔 아무 이상 없지만, 문제가 있다면 블로그 귀차니즘이 발동한 바로 본인이랄까.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꾸준함'이다. 물론 요즘에는 검색 로직 상 한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돼, 본인이 주로 올릴 카테고리를 정하고 그 분야의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는 점까지 추가됐다. 아무튼 혼자서만 보기 위해 글을 비공개로 올린다거나 검색 비허용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정보 공유 혹은 소통 차원에서 올린다면 무엇보다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업로드할 수 있는 끈기가 요구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글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어야 한다. 포스팅 의무가 없어도 물건을 곧바로 언박싱 하지 않고 일단 사진으로 남겨두고, 어떤 장소에 가서든 사소한 것 하나까지 빼놓지 않고 촬영한다. 언제 올릴지 모르지만 일단 글감은 끊기지 않게 준비해두는 거다. 안 해본 사람은 잘 모르지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의무 없는 포스팅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두고 블로거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뼈로거(뼛속까지 블로거)'라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블로그를 꾸준히 이끌어가려면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글감을 끌어모으거나, 아니면 차라리 체험단/협찬이라도 계속해서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내 무기력증과도 같은 블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뭘 올려야 하지?'라는 물음표에서 시작한 블태기의 조짐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블로그를 하는가'는 꽤나 철학적인 질문까지 끌고 온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포스팅 자체로 들어오는 애드포스트 수익은 아주 작고 귀여운 수준이기에)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은 거다.


게다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내 경우엔 여기에 정신적인 부담감까지 더해진다. 노출이 잘 안 돼서 스트레스, 악플이나 이상한 사람들의 댓글이 달려서 스트레스, 체험단으로 방문한 업체의 광고주에게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들, 이렇게 쓰면 광고주가 만족할까, 렇게 쓰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무 편협적으로 느끼지 않을까...! 에라이, 렇게까지 머리 싸매고 고민할 바엔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깊은 권태감에 빠졌다가도 결 다시 블로그에 돌아오게 되어 있다. 한 번 들린 재미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두면 다시 살려내는데 또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는 권태감에 잠식될 틈 없도록 늘 끊임없는 글감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블태기는 위의 두 가지 경우 중 후자에 해당한다. 요즘 글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심리적으로 다른 일들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잠시 의욕이 느슨해진 듯하다. 체험단/협찬이 안 들어오더라도 소비생활은 늘 하고 있으니 자발적인 포스팅이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런데 일단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눈앞에 글감이 있어도 그저 약간의 불편한 기분만 조금 느끼다가, 곧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블태기인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 내가 눈을 비비며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블로그 앱의 통계를 확인하는 일이다. 어제는 블로그에 몇 명이 방문했는지, 애드포스트 수익이 얼마나 찍혔는지. 물론 요즘 글을 거의 안 쓰고 있으니 방문자수는 내가 10여 년 전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과 맞먹고, 애드포스트는 하루에 10원도 안 찍히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한두 포스팅이 가끔 메인 추천 글에 뜨면 방문자수가 조금 활력을 띠기도 하고, CPC 단가 높은 광고가 클릭되면 방문자수와 관계없이 수익이 껑충 오르기도 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아무리 귀찮아져도 절대 끊을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이랄까.


아무튼 블태기 극복을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블태기 극복의 열쇠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블로거 자신이 쥐고 있으니까. 얼마 전 구입한 요거트 메이커도, 선물 받은 와플 메이커도 훌륭한 글감이 되어주겠지. 게다가 다음 주엔 간만에 체험단 일정도 잡아 놓았으니 이러나저러나 블로그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 며칠간 질질 끌던 브런치 글 한 편을 오늘에서야 드디어 마무리 지었으니, 이제 내일은 블로그에 글을 써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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