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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an 08. 2023

돌아오지 않는 것에 관하여

08. 얻은 것과 잃은 것 (1)



내 인생은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 문장을 쓰면서 INFJ인 나는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나를 블로그 만능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내가 브런치 활동을 시작한 주제가 바로 블로그니까. 브런치에서 만큼은 블로그를 중심으로 내 세계가 돌아간다고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블로그 활동을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달려보기도 하고, 조금은 느슨하게 때로는 걷고 때로는 쉬며 돌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래도 10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적지 않은 의미를 가져다준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 사소한 것 하나에 의미 부여까지 해 가며 2013년 1월 1일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첫 글을 썼었다. 그에 비해 10년이 지난 지금은 새해가 밝고 일주일도 더 지났으니 처음의 포부는 온 데 간데없고 게으름만 남아 있는 듯하다.


 아무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겠노라고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날짜를 따져 보니 벌써 이렇게나 된 것이다. 모든 일에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들 한다. 나도 돌이켜 보면 블로그를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많은 것을 잃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거쳤고, 회사 생활보다 앞서 사회를 먼저 배우기도 했다.


 그중에 어떤 것부터 써볼까... 역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잃은 것부터 적어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돌아오지 않는 것에 관하여



 지난  '블태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것처럼, 저품질 블로그에 걸렸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블로그 이사'라는 방법이 있다. 물론 저품질에 걸려도 몇 년이고 끈기 있게 그냥 존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때마다 조금 더 견뎌보지 못하고 새 둥지를 틀었다. 얼른 다시 키워서 수익화를 하는 게 중요했던 거다. 하지만 또 반복적으로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글을 써 대니, 기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은 다시 같은 쳇바퀴를 돌려야만 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철없던 나는 20대 시절의 연애가 늘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마지막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시콜콜한 모든 일들을 공개적인 그곳에 일기장처럼 기록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그 모든 관계는 끝이 났다. 일상과 협찬,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마구 혼재되어 있는 블로그는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하나 둘, 글을 정리하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아무것도 없는 백지장 같은 블로그를 다시 찾게 되었다.


 네이버에서는 하나의 실명 인증 정보로 최대 3개까지 아이디 생성이 가능하다. 실명 인증 정보 1개 당 아이디 1개만 되는 다른 사이트들에 비하면 후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나는 그 후한 할당량을 다 채우고도 부족했다. 3번째로 만든 아이디 마저 쓸모없는 카드가 되었을 때, 내 앞에 놓인 블로그 1호, 2호, 3호를 두고 고민했다. 새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 과연 어떤 카드를 버려야 할까.


 결국 나는 가장 오래된 1호 아이디를 버렸다. 너무 오래 전의 글들이었고 한 번 저품질에서 살려내 다시 잘 운영하다가, 같은 블로그에서 두 번째 저품질에 걸려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첫 번째 아이디는 가장 공을 많이 들였고 가장 많은 활동을 해낸 곳이기도 했다. 어떤 대외활동 담당자의 조언을 따라, 블로그 자체를 '포트폴리오'화 해놓은 상태였다. 그 블로그를 통해 10개도 족히 넘는 기업체의 마케터/서포터즈 활동을 했다. 대외활동을 제외하고도 각종 체험단, 협찬으로 소상공인의 홍보 마케팅 수단이 되어준 건이 몇백 건은 되었다.


 당시 나는 '이미 마케터로 취업을 했으니 이제 내게 중요한 건 회사에서의 커리어뿐이야. 대학 시절의 자질구레한 대외활동들은 신입 취업준비생 때나 필요하지 지금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단지 커리어냐 취준생의 경험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젊은 날들의 기록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해킹해서 모든 기록을 날려버린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의지로 내 손가락을 움직여 행한 일이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4번째 아이디를 만들기 위해 하나를 버리는 쪽을 택하기보단, 기존의 글을 비공개하고 어떻게든 꾸려 나갔으면 어땠을까. 사실 예전에 같이 블로그 활동을 하다 저품질에 걸렸던 이웃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나처럼 쉽게 아이디를 갈아치운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미우나 고우나 자신들의 둥지를 다시 차곡차곡 쌓아 나가고 있었다.










 근 십 년을 잊고 지내던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작년에 부활했다. 어디까지가 전체공개이고 어디까지가 비공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진들이 나도 모르는 틈에 전체공개로 복구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알림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다 복구됨과 동시에 들어갔다. '복구만 되면 내가 이 흑역사들 전부 다 폭파시켜(=탈퇴해) 버린다.'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냥 삭제해버리기엔 아까운 나의 시간들이었다. 결국 그곳에 고스란히 남겨 두기로 다. 언제든 옛 추억이 떠오를 때면 들어가서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삭제'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고 간편하다. 그리고 남겨진 내 기록들의 '삭제or보존' 스위치 또한 온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시간들을 클릭 한 번에 날려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소중한 지난날들의 기록을 이미 쓸모없어진 패, 혹은 판도라의 상자 정도로 치부하지 않겠다.


 그 속에 담긴 '나' 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 (2)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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