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했으면 하는 순간이 있어. 변함없이 가져가 끝까지 내 것이었으면 하는 것. 그런 것은 곧 추억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기억이라는 공간에 가장 빛나고 예쁜 모양으로 저장이 되곤 하지.
순간을 담은 추억뿐만 아니라 오랜 습관 같은 것도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 붙잡고 있을 ‘나’의 의지만 있다면 기한 없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거야. 서랍 깊은 곳에 숨겨 놓은 편지 상자처럼 맘만 먹으면 언제든 열어볼 수도 있어. 하지만 내 의지만으로 이어갈 수 없는 것도 있더라.
한때 내 인생의 전부 같았던 사람들이 있어. 네가 꼭 그랬고. 서로가 없는 오늘과 미래를 상상할 생각조차 못 했던 과거의 나도 그러한 한때의 일부였어. 우리 얼마나 즐거웠니? 얼마나 많은 걸 함께 했는지 기억해? 서로의 근황을 훤히 꿰고 있는 건 말하기도 입 아팠고, 무엇보다 만남이 어렵지 않았잖아. 언제나 눈에 띄어서 서로를 찾아내는 일도 금방이었지. 그래서 이 사랑이 쉬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장담은 무척 쉽고 당연할 수밖에 없었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을 텐데도 사랑은 가끔 뭐든 당연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게 두려웠던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고.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지는 오래고, 현재의 많은 걸 공유하고 있으니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던 결과였겠다. 우리가 이 관계에 대한 애정을 아예 버리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때였어. 하얗다 못해 깨끗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가끔은 꿈같아. 예전에 꿨던 꿈이 꼭 현실 같이 느껴질 때가 있잖아. 실제로 나는 종종 착각하기도 하거든. 그런 것처럼 꿈같은 현실도 있는 건 가봐. 내게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게 믿겨 지지 않기도 해.
사실, 모든 관계를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달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많은 책 속에 주문처럼 등장하는 문장이라 이미 익숙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문장을 체득하게 되는 때는 따로 오는 듯하더라고. 삶의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도 최근에야 저릿하게 깨달은 나인걸.
지극히 평범한 이유였을 거야. 각자만의 사정이 늘어난 거지. 서로가 필요 없어졌다거나 상대가 별로였다고 단순하게 치부해 버리기에는 엮여 있는 마음이 간단하지 않아. 한 개인의 세계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상황이 물 밀듯이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자연스럽게 지금의 우리에게 더 중요한 사람과 더 중요한 상황이 생기게 된 거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건 조금 씁쓸하지만 짙든 희미하든 서로 안에 늘 존재했을걸?
이렇게 생각하자. 우린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했어. 평생일 것만 같았던 그런 아름다운 시절을. 딱 그 순간에 만나서 그 시절을 함께 향유했던 건 운명일 거야. 이토록 커다란 우주에서 너와 내가 알게 된 걸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운명 말고 뭐가 더 있겠니?
서운해하지 말자. 오랜만에 만나도 이렇게나 반갑고 좋으니 된 거야.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와 주어서, 나의 그때에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