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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예지 Oct 11. 2022

거기 그대로

아빠가 등장하는 기억 중에 가장 윤이나는 걸 고르자면 단연 아빠의 월급날이다. 있다 가도 없는 그까짓 게 뭐라고 돈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참으로 쉽게 샀다. 아빠가 월급을 받으면 우리 가족은 외식을 했는데, 웃긴 건 메뉴와 장소가 거의 매번 똑같았다는 것이다. 양념갈비, 등대사거리의 그 고깃집. 양념갈비만큼은 끝없이 입 안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그 시절 부지런히 키워 둔 근육인 걸까.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멀끔히 씻고 나오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행복이란 이름표가 너무도 떳떳하게 붙여져 있는 것만 같은 시간의 시작.


단골 고깃집에 가면 양념갈비를 1차로 먹는다.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밑반찬으로 나왔던 콘 옥수수를 동생과 함께 싹싹 긁어먹기는 했지만, 그 정도 양은 이 코스에 정식으로 낄 수 없었다. 고기로 어느 정도 배를 채웠다 싶으면 된장찌개나 냉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희대의 난제이다. 후식으로 나오는 수정과까지 야무지게 원 샷 해주고 나면 산 만 해진 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주 찾는 코스이니만큼 서비스가 빠질 수 없다.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서비스는 바로 노래방이었다. 갈비에 이어 또 하나 희한한 게 나온다. 노래 부르는 것도 여전히 좋아한다는 사실. 코인 노래방은 심심하면 가는 장소이고, 오늘도 출퇴근 길 차 안에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단 말씀이다. 어린 시절 일상이었던 것들의 힘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 가. 노래 실력은 평범한데 어이없게도 노래 부르는 걸 되게 좋아하는 가족이었다. 아빠가 가수 이수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그때 알았다. 특히, 이수영이 리메이크한 조덕배 원곡의 ‘꿈에’라는 곡을 좋아했다. 내가 아빠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수영을 들으면, 특히 ‘꿈에’를 들으면 아빠가 떠오른다. 그러곤 비단 우리 아빠만의 18번 곡이 아닐 ‘아빠의 청춘’까지. 아빠가 그걸 부를 때마다 또 이 노래를 부른다며 낄낄댔지만, 아빠의 옆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며 함께 무대를 꾸몄다.



종종 거리 뷰 기능을 이용해 예전에 살던 그곳을 둘러본다. 뭐가 어떻게 바뀌었나 보는 재미도 있지만, 사실은 그 무엇들이 얼마나 그대로인가를 보기 위함이다. 건물 1층 주인집 아주머니의 옷 가게, 친구와 창가 자리를 도맡아 종종 수다를 떨러 갔던 파리 바게뜨, 오로지 포장만 가능했던 우리 가족 유일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집,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하얀 부분만 밟고 다녔던 코앞의 횡단보도, 같은 교복을 입고는 너도나도 새치기하기 바빴던 버스정류장, 칼국수 천 원어치를 사 오라는 심부름에 툴툴대며 걷던 시장 가는 길까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추억이 덕지덕지 묻은 공간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한결같았으면 싶다. 다섯 가족이 옹기종기 힘들고 행복하게 살았던 그 동네가 그대로였으면 싶다.


사랑했던 것들이 희미해져 가는 걸 보는 일은 슬프다. 증발하기 바쁜 기억의 뚜껑을 닫을 방법이 없으니 야속하기만 하다. 자꾸만 잊게 되니까, 변하거나 사라지고 마니까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들이 그대로였으면 하는 되뇌임이 욱신하게 마음을 누른다. 잊혀지는 일 앞에서는 온통 무력해지기 때문에 눈으로만 담아두었던 걸 후회하게 된다. 눈을 넘어 마음 깊숙이 담아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억해낼 수 있는 걸 알면서도. 후회는 몰랐기 때문에도 오지만 알기 때문에 오기도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건 그런 맥락일 거다. 이미도 많은 것들이 희미해졌지만 반짝반짝 윤이 나서, 그랬던 만큼 눈에 띄어서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것들. 그것들을 붙잡아 두려는 마음. 오늘의 내가 써 두면 미래의 내가 좀 더 같은 모양으로 지니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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