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막내가 빨간 채점 펜 안에 심을 사달라고 했다. 다섯 개야 한다고 해서 인터넷 쇼핑으로 몇 군데 찾아보았는데, 심으로 사려면 배송비가 들었다. 배송비가 안 드는 걸 쿠팡에서 골랐는데, 심만 따로 파는 제품은 없어서 4,500원에 펜 다섯 개인 제품으로 주문했다. 가격도 제일 저렴했고 로켓배송이라 단순 변심이라도 환불이 가능해서 선택한 것이었다.
다음날 물건이 와서 막내에게 기분 좋게 주었는데, 막내가 환불하라고 했다.
“심만 사라고 했는데, 펜을 사면 어떡해? 당장 반품해!”
“심만 파는 건 배송비가 들어서 비싸! 낱개로 다섯 개는 안 판단 말이야. 펜으로 사면, 안에 심이 들어 있는데 뭐가 문제야?”
“난, 심이 필요하지. 펜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헐, 너, 바보니?”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그럼, 말해봐, 그렇게 고집부리는 이유가 뭐야?”
“싫어, 안 알려줘!”
막내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았다. 지금 펜이 그리도 좋으면, 새로 산 펜의 심을 빼서 넣어서 쓰면 되는데 고집을 넘어서 아집이었다. 나는 막내를 설득하려 했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펜을 다시 포장해서 반품할 수밖에….
"내가 산 것보다 비싸면 안 사줄거야!"
“가위바위보 해?”
“왜?”
“내가 이기면 엄마가 사주는 거고, 엄마가 이기면 내가 커피 사줄게.”
막내는 나보다 가위바위보를 잘한다. 꼼수를 쓰려고 하는 거다.
“싫어, 엄마 믹스 커피 많아!”
“치, 암튼 반품해, 알겠지?”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그 펜을 쓸 것이 아니라서 반품해야 했다. 가지고 있다가 친구에게 선물하면 어떠냐고 물어봤는데도 싫다고 했다.
“엄마, 심 다섯 개 사주라니까. 샀어?”
“네가 찾아서 사! 네가 원하는 건 없을 거야.”
“엄마 핸드폰 죠, 찾아보게!”
막내는 내 핸드폰으로 쇼핑을 열심히 하더니 골랐다고 했다. 심이 열 개에 13,800원이라고 했다.
“엄마, 요것 사!”
“내가 고른 것보다 값이 두 배가 넘어! 그런 걸 왜 사?”
나는 막내가 고른 걸 보지 않고 매운 것 먹은 것처럼, 화끈거리는 머리를 식히려 냉수를 마셨다.
“심 다섯 개에 사천오백 원 넘으면 차액은 네가 내!”
“알았어.”
갑자기 머리에 띠 두른 화가 뚝 끊기며 멘톨 같은 시원함이 퍼졌다.
“웬일?”
나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 돼 있었다.
“너, 학원 선생님이 준 거라 그렇지? 다른 펜을 사서 선생님이 준 펜과 섞이면 큰일이고.”
“맞아, 내겐 소중한 펜이야.”
“그래서 심만 필요했던 거구나!”
“응, 선생님이 심 다 썼대. 그래서 사주려고.”
막내는 학원 수학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선생님이 일주일 전쯤에 준 거였다. 가르치는 학생이 추천해 줘서 써봤는데 좋았다고 막내에게 한 개 준 펜이었다. 선생님이 알아서 살 텐데 선생님이 사기 전에 막내가 사주고 싶다고. 한 개에 천 원 하는 펜인데, 낱개 심이 천 원 했다. 넉넉히 다섯 개를 선물해 주고 싶은 막내의 마음을 읽으니, '이럴 땐 마음이 넓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막내같이 그랬을까?
“기특하네!”
“그런데 10개면 엄마가 고른 건 9,000원에 살 수 있는데, 13,800원에 사야 하니까, 네가 4,800원 줘야 하는데 그래도 살 거야?”
“응, 사 줘!”
막내는 피 같은 4,800원을 자기 용돈에서 수혈해서라도 사드려야 한다고 했다. 막내의 깊은 마음이 고집을 이겼다. 나는 막내가 고른 상품을 봤다. 낱개의 펜 10개에 심이 2개씩 들어있는 상품이었다. 내가 고른 걸 사도 되는데 굳이 다른 상품을 고른 걸 보면, 막내와의 생각의 차이를 다시 한번 느꼈다.
“자기가 고르면 이유 없이 다 맘에 들지!”
나는 막내가 사고 싶은 건 엄마에게 부탁하지 말고, 합리적인 가격 안에서는 모든 걸 스스로 고르라고 해야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자녀마다 다 그런 걸 보면, 부모가 고르는 건 무리수다. 불필요한 선택권을 막내에게 주기보다는 스스로 찍어 쓰는 바로 티켓을 유도하는 게 낫다. 그러면 내게 고집으로 비치던 모습이 더 이상 고집이 아니고, 자기 결정권이 된다. 선생님에게 펜 심을 주고 싶은 막내의 사랑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