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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Dec 20. 2024

공부하려고 밤샌다고?

-막내의 강력한 돌림노래

요즘 막내의 학교와 학원에 가기 싫다는 돌림노래는 요즘 잠잠하다. 그런데 또 다른 강력한 돌림노래가 나타났다. 2주 전부터 조짐이 보이더니,

“나, 시험공부해야 해서 밤샐 거니까 방해하지 마!”

처음엔 막내가 알아서 밤새며 공부하겠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늦게 자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니까 탐탁지는 않았다. 막내가 선포하듯 한 말이라 잘 샐지 궁금해서 간식을 줄 겸, 방 청소할 겸 겸사겸사 드물게 방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막내는 학원 다녀와서 내가 핸드폰을 걷어가는 시간까지 유튜브와 게임을 하며 낄낄대고 요란한 저녁을 보냈다. 그 시간이 밤 11시였다.

‘밤을 새운다고 하고선 밤새도록 노는 거 아니야? 시험 기간이라며?’

“내가 알아서 해! 공부 대신 해줄 것도 아니면서 엄마는 간섭 마!”

막내는 밤을 새우려고 내 커피까지 꺼내 먹더니, 2시간을 못 버티고 그날 자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서 막내는 또 시험공부하겠다고 밤을 새운다고 했다. 과학 문제집을 한 권 풀어야 하는 게 이유였다.  

“낮에 공부하고 밤 1~2시에 자면 되는데, 늦은 밤부터 공부해서 날 새겠다고? 그럴 필요가 있니?”

“있어! 난, 샐 수 있는데 엄마가 못 믿는 거야. 두고 봐, 내일 되면 깜짝 놀랄걸!”

막내는 지난 주말에 이렇게 돌림노래를 불러댔다.     




“엄마, 밤샐까? 저번에 못 푼 과학 문제집 꼭 풀어야 한단 말이야!”

“여태까지 공부한다며 밤샌 적이 없는데, 굳이 새려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큰딸이 말했다.

“엄마, 그냥 제 말 무시해!”

“막내야, 그만해. 너무 들어서 귀 터지겠다!”

나는 막내를 만류하며 말했다.

“엄만 내가 공부하겠다는데 격려는 못 해줄망정 하지 말라고만 해! 이번엔 꼭 성공할지 모르잖아!”

“그러면 말하지 말고 조용히 공부하면 되잖아! 할까, 말까? 물어보지 말란 말이야! 날 새면서까지 공부하겠다고 장담하고 지켜지지 않는데, 나도 화나지. 늦게 자서 아침에 못 일어나는 널 깨우기 얼마나 힘들다고, 입맛도 없다며 밥도 안 먹고 가잖아!”

나는 할 말이 많았다.

“게임은 주말에 몰아서 하던지, 공부도 계획을 세워서 하면 날 샐 필요 없어! 저번에 과학 문제지 다 풀어야 해서 밤새겠다고 하고선 이번에도 똑같은 얘기로 밤을 새우겠다고 하는데,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당연하지!”

막내는 똑같은 돌림노래를 재창, 삼창 했다.

“내가 공부하려고 밤을 새우겠다는데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막내는 열변을 토하며 어제도 불평했다.      


막내와 나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막내는 정말 칭찬받고 싶은 걸까? 막내는 칭찬보다 날을 새보겠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 같았다. 엄마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서 엄마를 이겨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밤새 불태우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일도 막내에게는 경험이지!’

나는 말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내가 “공부하려고 밤샐 거야!”라고 말해도 큰딸의 말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내는 새벽 1시 반이 될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이후의 일을 모른다. 먼저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유부초밥을 들고 막내 방에 들어갔다가 8시가 넘은 시간에 다시 들어가 봤는데, 막내는 초밥 한 개의 반쪽만 먹고 누워 있었다.

“일어나야 해, 8시 반엔 학교에 가야 되잖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정말 사춘기 자녀들의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은 엄마의 말을 차단하는 최상의 말인 것 같다. 막내는 피곤해도 학교 나가는 시간에 맞춰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했다.

“어제 내가 몇 시에 잔 줄 알아? 엄마가 알면 깜짝 놀랄걸!”

“밤샜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무슨 말이 그래? 밤샜냐고?”

“나, 수학 100점 맞으면 알려줄게.”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막내의 뒤통수에다 대고 말했다.

“그리고 막내야, 바짝 밤새서 공부하는 게 나은지, 평소에 좀 늦게까지 공부하고 자는 게 좋을지 생각해 봐. 네가 오늘따라 너무 피곤해 보이네. 내일도 시험 치잖아.”

“알았어, 다녀올게.”    

 

막내는 당치도 않은 말을 하고선 나갔다.

‘일주일간 학원 수학 선생님이 기대가 크다며 꼭 수학 100점 맞아야 한다고 한 것 같은데, 80점 맞던 막내가 백 점을 맞을 수 있을까? 말이 씨가 될까? 그리고 애매하지만 막내가 어제 날을 샜을까? 아마도 새벽 5시까지 안 잤겠지, 설마 날을 샜겠어!’

막내가 혹 공부한다고 날을 샜다면 얼마나 자랑할지 눈에 선했고, 오늘부터 기말고사인데 며칠간 계속 날을 새겠다고 하면 어쩔까 걱정은 좀 됐다.      




나는 막내를 보내고, 동화동아리 모임에 갔는데,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야? 나 수학, 국어 시점 몇 점 받은 줄 알아?”

“지금 모임 있어서 바쁘거든. 나중에 통화하자!”

“엄마, 그러면 몇 시에 와?”

“점심 먹고 갈 거야.”

“그러면 집에 올 때 젤리 사 가지고 와?”

“알았어.”

나는 동아리 회원들과 인근 돈가스집에서 점심을 먹고 젤리를 사 가지고 2시 반쯤 집에 도착했다. 막내는 피곤한지 자고 있었다. 나는 젤리를 막내 책상에 놓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한 시간 반이 흘렀다. 나는 막내를 깨웠다.


“수학학원에 가야지?”

“내일 과학시험을 쳐서 안 가.”

“그렇구나. 그럼 더 자도 되겠네.”

“아니야, 과학 공부해야 해.”

막내는 낮잠을 자서 좀 피곤이 풀린 것 같았다. 막내는 젤리를 먹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젤리 사 와야지, 이건 아닌데?”

“너 콜라 맛 좋아하잖아. 그래서 이거 사 왔는데.”

“나, 과일맛 젤리를 더 좋아해.”

“알았어, 다음엔 그거 사 올게. 두 개 중 고르다가 이걸 사 왔네.”

막내는 아쉬운 대로 젤리를 먹다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엄마, 나 수학 100점 맞았다!”

“정말?”

“중간고사 때 나에게 점수 물어봤던 친구가 자기가 더 잘 봤다며 자랑했는데, 이번에는 걔가 나보다 못 봤어. 하하하. 기쁘더라고. 나 오늘 하루 종일 이 기분 만끽할 거야!”

막내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말이 씨가 되다니….

“그럼, 어제 날 샜는지 알려줘야겠네.”

“아, 아침에 수학 100점 맞으면 알려주기로 했지!”

“그래.”

“새벽 4시 반에 잤어.”

“날 샌 건 아니네.”

“그렇지, 잠을 안 자면, 머리 아파서 시험 못 칠걸. 그리고 국어 선생님이 국어를 잘하려면 일찍 자고 6시에 일어나서 공부하래.”

내가 백날 일찍 자라고 말해도 안 되던걸, 국어 선생님 말 듣고 바로 이해하니... 역시 공부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얘기해 주는 게 낫다는 걸 느꼈다.  

“엄마, 나 수학 100점에 국어 88점 맞았으니까. 사만 오천 원 주면 돼. 내일은 과학 보고, 모레는 영어 보니까 얼마를 더 받을 수 있나?”

막내는 머리를 굴렸다.

“엄마, 목표한 사만 오천 원 벌었으니까, 나 공부 안 해도 되지?”

“얘가, 그러면 시험 보는 과목의 최하점수 70점 이상, 75점 이상 되면 5점 단위로 오천 원줄 거야!”

“농담, 농담이야!”     




다음날 과학을 89점 받아왔다. 막내는 시험 치고 만 오천 원을 어제에 이어 추가로 벌었다. 육만 오천 원에 내일 영어 시험 80점 이상만 돼도 칠만 오천 원이 된다. 후덜덜. 그래도 막내가 좀 더 열심히 하는 동기 부여가 되고, 고등학교까지 쭉― 이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약속하고 주는 일 년에 두 번 주는 격려금 같은 것이어서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다.

막내가 수학을 100점 맞는 바람에 자기가 한 말이 씨가 됐고,

‘공부하려고 날 새지 않을 것이다,’에 한 표는 내가 맞췄다.  

오늘도 1:1 쌤쌤이다!     


“엄마, 오늘 과학시험 점수, 만 오천 원이야. 그 돈은 마라탕으로 대체할게. 지금 마라탕 사줘!”

막내는 이번 달에 1번 사주는 마라탕은 지난달에 당겨 먹었고,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특별히 사주는 것도 월초에 먹었다. 이번 달에는 마라탕을 사줄 일이 없는데, '시험 점수 용돈'으로 마라탕을 사달라니!

내 계획에 없는데, 막내 계획에는 있었던 거다. 막내가 한 수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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