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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페 Oct 25. 2022

'함께'할 수 없는 순간에 나도 '함께'이고 싶다

오늘도 잘 있음에 감사하며 마음속으로 욕심내 본다

괜찮음에 함께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병원 외래를 다녀오기 위해 아침부터 일찍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춥지 않을 거라 예상해서 대충 옷을 걸치고 혹시 모르니까 목도리를 칭칭 감았다 생각보다 견딜만한 추위였다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나름 일찍 나왔고 생각했는데 출근시간 걸려 평소보다 이천원이나 요금이 나왔다 엄마에게 다음부턴 외래를 좀 늦게 잡자 했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은 생각보다 대기가 길지 않았다 이렇게 이른 시간은 늘 접수부터 대기 채혈도 대기 뭐든 접수표 뽑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어 금방금방 할 수 있었다 채혈을 하고 암센터에 외래 접수를 하고 교수님 방앞에 앉았다 이제 예약시간까지 앉아있으면 된다 한 시간이 남았다


 기다림 끝에 교수님을 뵙게 됐다 오늘 교수님과의 대화는 아주 짧았다 실은 오늘 외래 안 와도 되는데 내가 온다고 한 거였다 저번 주 외래 때 감기약 타기도 했고 백혈구수치도 좋지만 평소 외래 때보단 좀 낮다고 교수님이 '와도 되고'해 그럼 올게요 했다 별 탈 없으면 안 와도 된댔는데 불안한 마음에 온다고 했다 병원에 있으면 집에 가고 싶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은 이중적인 마음이  안 가고 싶은 이유는 집 가면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 때문이다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도 솔직히 살짝 불안하다 그래서 외래에 피검사만 해도 마음이 편안하다 아 오늘도 난 괜찮구나 하면서 말이다 자기 암시도 더 잘된다 '이것 봐 괜찮잖아 지 마 너' 이렇게.


 견딜만했던 추위는 병원을 나서자마자 너무 추웠다 거의 달달달 떨면서 택시를 탔다 병원 입구에 바로 택시가 왔어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을 달달 떨 만큼 추웠다 갑자기 많이 추워진 거 같았다 더워도 플리스 입을걸 살짝 후회도 했다 집 가는 택시 안은 히터로 아주 따뜻했다 차도 막힘없이 바로 집으로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쯤. 아침 일찍 나오느라 엄마와 나는 매우 배가 고 점심 먹기 전 간단하게 콘치즈와 토르티야 피자를 만들었다 만들 피자 위에 페퍼로니, 소시지 이번에는 감자튀김도 올려봤다 맛있게 먹을 생각에 부풀어서 신나게 칼질 없는 요리 중이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2호 데리고 점심이나 저녁 먹으러 가도되?'


 안 그래도 둘째가 보고 싶었다 내일은 첫째랑 엄마랑 셋이서 호캉스를 가기러해서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럼 가족 다 같이 먹게 저녁에 오라고 했다 남편이랑 전화하는 사이 에어프라이어가 아주 열일을 해주 맛있는 토르티 피자가 완성이 되었다 약간 오버 쿡 된 거 같긴 했지만 굿굿굿 어디서 감자튀김이 올려진 피자를 본 기억이 나서 따라서 감자튀김을 올려봤는데 아주 칭찬해 나 자신. 오늘은 일 안 가고 쉬는 오빠야랑 엄마 그리고 나까지 맛있는 한 끼를 먹었다 분명 이거 먹고 점심도 먹으려 했는데 은근히 배부르더니 결국 점심은 먹지 못했다 날이 쌀쌀해져서 장칼국수를 해 먹으려 했는데 다음에 먹어야겠다 잊지 말고 달력에 표시해두었다 요즘 달력에 아침 점심 저녁 메뉴를 적어 놓는다 안 그러면 뭘 먹으려 했더라? 하고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아침부터 움직여 배도 불러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주 달콤한 잠이었다 시간을 보니 30분도 자지 않은 거 같은데 개운했다 은근 불안했던 이 며칠간 오늘 병원을 다녀오고 불안이 사라졌나 보다 불안이 사라진 거만 해도 너무 좋았 신경 쓰이는 게 없으니 신경질도 짜증도 덜났다 첫째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남편이 첫째를 데리고 왔다 첫째는 여전히 밝고 귀여웠고 둘째는 오늘도 엄마인 나보다 할머니였다 나에게는 밥시간에만 잘 온다 나는 밥 주는 사람인가 보다 너무한 녀석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다음 주에 시키려던 뼈찜을 시켰다 매운걸 잘 먹지 못하는 우리들은 매워서 쓰읍하 하면서 먹는데 남편과 아빠는 아주 잘 먹었다 성인 5인 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역시 뼈찜에 콩나물이 최고다 아귀찜의 콩나물보다 맛있는 거 같다


 남편이 숟가락을 놓자마자 첫째와 둘째에게 집에 가자며 일어섰다 아직 7시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일어난 남편에게 놀라 벌써 가냐는 나의 질문에 다들 힘들다며 일찍 간다는 남편의 말. 물론 알고 있다 내가 아프면서 아이들을 보고 있는 남편부터 양가 부모님들이 조금씩 고장 나고 있다는 걸 조금 더 아이들을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단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 일찍 가려는 남편에게 서운함 감정 들었다 그러 본인도 조금 더 있다가 가고 싶었겠지 싶었다 요즘 남편이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안타까웠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내가 빨리 낫는 방법밖엔 없었다 이식을 앞두고 있지만 이식하고도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남편이 아이들을 봐야 했다 참으로 이 상황이 답답했다


 엄마와 함께 자겠다는 첫째를 내일 엄마랑 할머니랑 이 자자고 얘기하고 아빠와 동생과 함께 집으로 보냈다 엄마가 함께 있어줘야 하는데 엄마의 이기심에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게 해서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셋을 보면서 나도 함께 집으로 가고 싶었다 아프기 전 나로 돌아가서 함께했던 우리 집으로 그냥 맛있는 거 얻어먹으러 친정에 왔다가 네 식구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으면 하고 바랐다 오늘따라 너무 함께이고 싶었다 왜일까 오늘 뭐 특별히 한 게 없는데 본 것도 없는데 나는 왜 집에 가지 못할까 아니 집에 간다면 갈 수 있지만 내가 안 가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 하루라도 더 빨리 낫고 싶어 선택한 일인데 오늘따라 못 견디게 사무쳤다 어서 나아서 주변에게 보답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에 상처만 주는 건 아닌지 오늘따라 괜히 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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