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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zu Dec 01. 2022

영화 본즈 앤 올 '무참히 잔혹한 사랑'



열여덟 소녀인 리의 관점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리는 친구들과 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평범한 욕망을 가진 소녀다. 늦은 밤 아빠가 걸어 놓은 잠금장치를 피해 몰래 집을 나와 친구에 집으로 달려갈 때까지 그녀는 분명 그러했다. 나란히 누운 친구의 손가락을 씹어 먹어 버리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매런은 그저 소녀였다.


이 영화는 카니발리즘이라는 키워드를 쥐고 있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으며, 대다수의 사람에게 불쾌감과 거부감을 주는 요소이다. 그러니 나는 이 영화가 이런 키워드를 갖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봤으면 한다.



매런의 아빠는 결국 소녀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남기고 도망친다. 매런은 간단히 짐을 꾸리고 아빠가 남기고 간 몇 안 되는 돈을 털어 일생 동안 마주한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엄마를 따라나선다.


그녀는 이동 중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이터'인 설리를 마주하게 되고 설리와 함께 죽어가는 사람을 먹는다. 그것이 매런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처음이다. 설리는 매런에게 동행하기를 권하지만,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져 설리를 두고 매런은 도망치듯 떠난다.


두 번째로 마주한 이터는 소년 리다.

상점에서 마주친 리는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남자를 자신의 방식으로 먹는다. 피를 범벅하고 나온 그를 보며 매런은 자신과 같은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우연히 마주쳐 함께 이동하기 시작한다.


리는 매런의 엄마가 있는 지역까지 함께 가주겠노라 말한다. 소년과 소녀의 손가락이 뒤엉키고 가볍게 입술이 교차된다. 더할 나위 없는, 첫사랑의 시작이다.



영화는 말도 안 될 만큼 아름다운 색채와 풍경과 구도를 중간중간 보여주며 이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에 대한 이질감을 준다.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이들은 정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여 분명 괴물일 텐데, 자꾸만 그 고독과 괴로움이 안타까워진다.


좀처럼 세상에 섞일 수 없는 이들. 간절히 바라고 애원해도 평범을 가질 수 없는 소외된 이들.


마침내 매런은 엄마를 만나지만, 그녀는 오래전 매런에게 준 편지를 보여주고는 너 같은 괴물은 사랑의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매런을 죽이려 든다. 그럼으로써 또 한 번, 버림받는다.


엄마를 두고 병원을 뛰쳐나온 매런은 치미는 분노와 온몸을 할퀴는 외로움에 괴로워한다. 자신을 이해해 줄 단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막무가내로 감정을 토해낸다. 그런 소녀의 앞에는 유일히, 그리고 온전하게 소녀를 이해할 수 있는 리가 있다. 칼날같이 날카로운 소녀의 말에도 리는, 매런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초반 리와 매런은 현저히 다른 가치관을 띄며 부딪힌다. 소년은 체념한 채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아가고 매런은 끊임없이 윤리에 대해 고민한다. 다른 이터들을 만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방식을 꾸려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돌고 돌아 리와 매런이 다시 재회한다. 매런은 리를 끌어안고 매런 역시 리를 끌어안는다. 그 어느 날처럼, 낡은 트럭을 타고 함께 떠난다.


리는 자신의 엄마와 여동생을 폭행했던 아빠의 이야기를 하며 숨 죽여 눈물을 흘린다. 이 때 매런은 "널 사랑한다는 생각 뿐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음으로 리를 포용하고 이해한다. 어떻게든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자 했고, 본능에서 발버둥 치고자 했던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구원을 맞닥뜨리며 틈없이 닿으려 한다.


소년과 소녀는 감히 평범히 살아가려 했다. 세상에서 내몰린 괴물이기에 무참히도 서로를 사랑했다. 황량한 풍광을 오가며 세상을 응시했고 어떻게든 이해하려 했다.


결국 끝으로 내몰린 그들은 여전히 뜨겁게 사랑한다. 이별을 앞둔 눈물은 어느새 붉은 핏방울로 변하는 것만 같다. 세상에게 소외되어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던 나의 유일한 사랑. 이제 매런은 남김없이 리를 사랑해야만 한다. 단단한 뼈가 으스러지고 검붉은 피가 온몸을 뒤덮을 때까지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만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아스라이 사라질 테고 버석한 풍경 속에 매런과 리 둘만이 남을 것이다. 사실 구원 같은 건 필요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소년과 소녀에게 필요했던 건 오직 서로일 뿐이다.


소녀는 소년을 알기 전으로, 결단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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