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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Mar 20. 2021

우리는 어쩌다 농사를 짓게 되었나?

주 2일 농부가 깨달은 삶-1편

결혼 전에도 슬슬 눈치채고 있었지만 결혼하고 보니 남편은 자연인 덕후였다. 어쩌다 퇴근 후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텔레비전을 보는 날에는 당연히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했다. 1화부터 최근 화까지 다 보는 건 기본이었고 본 걸 또 보고, 또 보고, 다시 무한 반복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걸 쓰다 보니 다시 생각나는 <나는 자연인이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페이지를 찾아가 봤더니~ 썸네일만 봐도 내 눈엔 비슷비슷 ㅠ_ㅠ


'아니,  화가 됐든  똑같은 이야기에 똑같은 장면들인데 대체 뭐가 재밌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결혼한 사이라 해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으니 '재밌다니 열심히 보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람은 뭔가를 좋아하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전해주고 싶어 한다.  지점을 간과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어떤 날에 남편은 잠자리에 누워 "오늘  자연인은 진짜 존경스러웠는데"라고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끝도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제게 이야기의 힘을 알려준 세헤라자데 언니, 왜 미래의 제 남편이 되는 어린양에게는 다녀가지 않으셨나요?


절대 저 사람의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끝도 없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게 사랑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타인을 굳이 이해하지 않고 살아갈  있는 우리네 삶에서, 연애란, 결혼이란, 사랑이란 어쩔  없이 나와 지극히 다른 타인을 계속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하고, 부딪히게 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되짚어 보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닥치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세상이 그나마 굴러간다고 믿어왔다.

아주 구차하고도 긴 변명 같은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가끔 같이 보고, 그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감명받은 자연인 에피소드를 듣고(물론 듣는 동안 자주 딴생각을 하긴 했다, 인간의 의지는 얼마나 나약한가!) 가끔은 가지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다 짜내어 질문도 던지곤 했다.


연애할 때부터 남편은 종종 '나중에 자연인처럼 저렇게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가진 단어장 속 '나중에'란 단어는 '먼 미래의 어느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늘 '나중에 북극에 가서 펭귄을 직접 보고 싶다'거나 '캐나다에 여행 가서 오로라를 보고 싶다'거나 '한 달 동안 해외 낯선 바닷가에서 유유자적 살아 보고 싶다'거나 이런 무수한 나중에가 많았다.


사람들이 각각 다른 것처럼 본인이 가진 단어장 속 단어도 조금씩 다릅니다.


남편의 나중에가 내가 생각하는 나중에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결혼 2 차쯤이었다. 남편은 주말을 보낼 땅을 일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땅을 알아보러 다녔다. 혼자 다닌  아니었고,  의견도 중요하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주말에 나들이 삼아 차를 타고 땅을 보러 갔다 왔다. 물론, 우리 첫째 아이도 함께였다  

종종 사람들이 내게 '아니, 어떻게 남편이 하고 싶다는 걸 다 하게 해 줬어?' 하고 물어오곤 했다. 설마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걸 다 할 수 있도록 했겠는가!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딴지도 걸었다가 반대도 했다가 설득도 했다가 어떨 때는 의견 차이로 싸우기도 하는 등 여러 면모를 보여주며 살아간다. 다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사람이 하고 싶다는 게 있고, 그게 내가 충분히 지지해줄 수 있는 종류라면 
꼭 내가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야겠다.' 하고.

남편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해지면 좋겠다. 그게  행복이기도 하니까. 정말 이런 아주 단순한 이유로 남편이 소망하는 지지해주고 싶었다.


지지자가 되려고 결혼한 건 아니지만요~ 사랑이 가진 모양은 여러 가지니까요


하지만 땅을 구입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근교  농사를 짓고 주말을 보낼만한 , 그리고 대출을 받더라도 우리가 소화할  있는 금액인 . 동쪽으로, 서쪽으로 여기저기 다니곤 했다. 그렇게 시간흐르고 흘러,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결혼 4년 차쯤 우리는 작은 땅을 구입했다. 남편은 일주일 간 휴가를 얻어서 땅을 다듬고 주2일 동안 지낼 수 있는 농막을 설치하고 울타리를 세우는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 과정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지리멸렬하고 괴롭고 힘든 작업이었다. 대부분 남편이 혼자 계획하고 처리하고 꾸렸다. 나는 종종 공사 진행 중인 사진을 받아 보며 '우와, 이 사람 대단하다' 하고 감탄했을 뿐이었다.


사진은 땅을 꾸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땅을 꾸리는 건 진짜 웬만한 열정과 노력과 정성으로도 안 되는 일(물론 내 기준)


사실 놀란 지점은 여러 군데였다. '나중에 자연인처럼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말이 이렇게 빠르게 현실화된다는 점에 놀랐다. '목표를 정하면 기어코 해내고 마는 사람'이라는 지점에서 나는 절대 그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옆에서 지켜보는 나초자도 지리멸렬하고 힘들고 괴로운 과정을 지치지만 기쁘고 즐겁게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농사를 지을 거면 구청에서 운영하는 텃밭도 있잖아?"라고 한 친구가 훗날 반문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땅을 만드는 과정을 묵묵히 진행하는 남편을 보면서,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오롯이 통과하면 기쁨이란 게 있음을 알게 됐다. 그 과정 속에서 오는 괴로움만큼 즐거움이 있어 보였다.


이런 과정을 지나며 
우리는 주2일의 자연인이 되었다.

저 깊은 골짜기에 박힌 땅은 아니지만, 도착하면 새삼 서울의 공기와 다른 질감을 느낀다. 지난여름, 불어닥친 태풍 속에서 멧돼지떼가 들이닥쳐 옥수수밭난장판 되기도 했다.

태풍이 물러가자마자 농작물 걱정에 새벽녘부터 차를 몰아 땅에 간 남편이 '멧돼지들이 우리 농장에서 가족 모임을 가졌나 봐'라며 옥수수 한 자루도 남지 않은 휑덩그레한 밭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나도 남편도 그 상황이 어딘가 모르게 희한하면서 재밌어서 크게 웃었다.

"우리가 열심히 지은 옥수수로 멧돼지 가족이 배불리 먹었으니 다행스러운 일 아니야?"

남편은 이렇게 말하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농사가 정말 싫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에 자리 잡은 작은 텃밭에도 관심이 없었다. 흙을 일구는 일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 땀을 담뿍 흘리는 일도 취미에 없었다.


여름에는 이렇게 소중한 결과물을 얻었다! 산지직송!


정말 이상하게도 남편이 일군 그 땅에서 나는 삶을 자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내는 이 삶의 방향을, 우리가 겪어내는 삶의 고난을, 살아가며 깨닫게 되는 어떤 교훈을, 농사를 지으며 떠올리게 된다. 그 찰나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깊게 이해하곤 했다. 왜 땅을 일구고 싶어 했는지, 텔레비전에서 본 자연인을 왜 존경한다고 했는지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나라면 가지 않았을 길을,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과 함께 걸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삶의 단면을 만나게 된다. 마치 내가 토마토를 따면서 내 삶에 숨겨진 비밀들을 깨닫게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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