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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20. 2024

뉴욕의 택시 운전사에서 현대음악의 거장이 되기까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와 친해지기 2편



미국 작곡가이자  미니멀리즘을 응용한 신음악의 작곡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란 찬사를 받는 필립 글래스는 마흔 살까지 뉴욕에서 택시 기사를 겸업한 '아웃사이더 예술가'였습니다.  1976년 그의 첫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매진되며 찬반 격론이 뒤따르는 가운데 초연됐지만, 생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요.   


'음악가는 가난의 벗'이라는 등식처럼 재능을 인정받기 전까지 예술가의  고단한 삶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필립 글래스는 줄리어드 음대 시절 6개월간 기중기를 몰았고, 직업 음악가로 활동하던 초기에는 배관공으로도 일했습니다.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는 자기 집 식기세척기를 고치고 있는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걸 보고 놀랐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지요.   필립 글래스의 생존을 위한 노동자로서  삶은 오페라 <사티아그라하>를 위촉받았던 1978년까지 계속됩니다.  






음악의 꿈을 키우던 볼티모어 시절






필립 글래스는 1937년, 미국 볼티모어의 한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라디오 수리점과 가게를 같이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여러 음악을 접했다고 해요.  




아버지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음악에 대한 지식과 감식안을 쌓아 갔고, 결국에는 실내악을 비롯한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대해서도 세련되고 풍부한 식견을 갖추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안락의자에 앉아 거의 자정까지 음악을 들었다. 아버지가 틀어 놓은 음악을 몰래 들으면서도 내 귀도 좀 트였다.  우리 집은 볼티모어 다운타운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립주택이었고, 형과 나의 침실은 거실 바로 위에 있었다.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계단 중간쯤에 걸터앉아 한참을 귀 기울였다. 아버지지가 고개만 돌리면 들킬 위치였지만 한 번도 걸린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거기 있는 것을 알고도 내버려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나눈 밤을 헤아릴 수 없었다. 


<음악 없는 말> 필립 글래스 자서전 중에서 







2017년 여든에 이른 필립 글래스가 자신의 예술 세계와 삶의 여정을 써 내려간 회고록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의 1부 목차를 보면 유년기 시절을 보낸 볼티모어, 시카고, 줄리어드, 파리, 라비 샹카르, 나디어 불랑제, 동방 순례 등으로 이어지는데요.  이런 목차에서 그의 음악적 성장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볼티모어 시절 라디오 전파상과 음반점을 함께 운영했던 아버지 덕분에 필립 글래스는 유년 시절부터 재즈와 팝 같은 대중음악에서부터 바르톡,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곡을 접하게 됩니다. 당시 이 음악가들의 레코드판이 잘나가지 않자, 아버지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파고들다가 결국 현대음악의 전도사가 되기에 이릅니다. 그 덕분에 어린 필립 글래스도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현대음악을 귀동냥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현악 4중주나 현대음악처럼 안 팔리는 음반이 있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들고 왔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한 아버지는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과  여덟 살 때 플루트를 가리켜 피바디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시킵니다.  이곳에서 피아노도 함께 배우면서 필립 글래스는 많은 악기를 섭렵하게 됩니다.











음악적 성장을 이루던 시카고와  줄리어드, 파리 시절



필립 글래스는 열다섯 살에 시카고 대학 조기 입학 대상자로 선정되어  문학, 역사, 철학, 과학, 수학,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지적으로도 풍성하게 성장합니다.  또 시카고라는 도시가 제공하는 수준 높은 문화를 닥치는 대로 흡수해, 훗날 그의 음악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 시기 필립 글래스가 집중한 음악은 재즈였지요.  그 당시 버드 파월,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델로니어스 몽크, 레드 갈란드, 스탠 게츠, 쳇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 오넷 콜맨 등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재즈의 거장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재즈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에서 필립 글래스는 현재 재즈의 진수를 배우게 됩니다.  훗날 그는 어릴 적 귀동냥으로 들었던 고전적 실내악과  시카고 시절에 심취한 재즈가 자신의 음악을 이루는 두 개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고 고백했지요. 



이런 내적, 외적 성장을 이룬 필립 글래스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졸업과 함께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 줄리어드 음악원에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그는 윌리엄 버그스마와 빈센트 퍼시케티에게 사사하며 작곡 수업과 훈련을 부지런히 밟아 갑니다.  줄리어드의 필수 과정인 합창단 활동 역시 작법에 필요한 기초를 두루 다지는 데 밑거름이 되줍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무조건 피아노 앞에 앉아 공부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뮤즈의 활동을 엄격히 금지했던 줄리어드 시절의 필립 글래스가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줄리어드를 졸업한뒤 1964년 파리로 건너간 필립 글래스는 걸출한 두 스승을 만납니다.  음악가들의 스승으로 유명한 나디아 불랑제와 시타르 명인으로서 인도 고전음악을 서구에 알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라비 샹카르가 바로 그들이지요.  나디아 불랑제에겐 음악가가 갖추어야 할 확실한 연장통을,  라비 샹카르에겐 비서구 음악에 눈뜨게 되는 계기와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통찰을 배우게 됩니다. 




라비 샹카르
나디아 블랑제
음악인들의 스승 나디아 블랑제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 런던 로얄필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자 작곡자, 오르가니스트였던 나디아 블랑제.  그녀가 20세기 음악사에 가장 두드러지게 기여한 것을 들라면 무엇보다 교육자로서의 역할일 겁니다.  아론 코플랜드, 아스토르 피아졸라, 존 엘리엇 가디너, 필립 글래스, 예후디 메뉴힌, 엘리엇 카터, 디누 라파티 등 훌륭한 음악가들을 길러낸 음악가들의 음악가.   20세기 프랑스 음악사에서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나디아 블랑제를 만나게 된 것은 필립 글래스에겐 아주 큰 행운이었습니다. 










감상할 곡은 필립 글래스의 1979년 작 Mad Rush



https://youtu.be/8Q0G0-9E5SE




지금 들으신 이 곡 Mad Rush는 1979년 11월, 달라이라마가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대중 연설을 한 것을 기념하여 작곡한 곡입니다.  1960년대부터 인도 음악에 큰 영향을 받은 필립 글래스는 불교 사상에 깊은 음악적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는데요.  티베트인들을 위한 위로와 중국을 향한 평화적인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가 세인트 존 디바인 성당으로 입장할 때 오르간으로 연주되었던 곡입니다.


일정한 패턴을 느리게 점진적으로 반복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이 곡은 약 15분 정도 진행되는 동안 리듬과 형식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고, 독특한 음색과 음향 세계를 보여줍니다. 최소한의 소재를 점차적으로 변형시켜 강렬한 리듬과 선율에 도덜하고 다시 사라지는 듯한 악상으로 마무리 되며 명상적이면서도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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