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두 번 통화해도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인연이 있다. 알고 지낸 지 30여 년이 다 돼가지만 그분을 볼 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조용하지만 열정적이고, 여리지만 진보적인 반전 매력을 갖고 계신 분. 몇 년 전부터 신체 곳곳에 적신호가 켜졌고 어떤 부위는 심각한 상황일 수 있는데, 한 보따리의 걱정 대신 검진으로 객관화를 시킬 줄 아는 분. 다음 주까지 몇 군데 병원에서 검진이 예약돼 있고, 그다음 주면 버킷리스트 1호였던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여행을 홀로 떠난다며 근황을 알려왔다.
갑자기 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매년 경고장을 보내는 무릎이 내년에는 더 나빠질 수 있기에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거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슬로베니아까지 이어져 있는 알프스 중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돌로미티 트래킹이 버킷리스트 1호였다는 말에 '훅' 한방이 쑥 들어왔다. 사사로운 잡념에 눈멀어 내 안의 우주를 폐가처럼 방치하고 살고 있었구나. 그래서 한발 한발 앞을 향해 내딛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즐거운 자극을 받는다.
전화를 끊기 전 내게 남기신 말씀.
"인생이란 폭풍이 지나가는 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그러니 받아들이고 즐기고 넘기며 가볍게 삶을 살자는 당부! 내 삶에 해법 하나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