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과는 딱히 상관없는 사소한 것들
나한테는 잠이 몹시 중요하다. 인간의 5가지 욕구 중에서 수면욕이 가장 강하기도 하고, 실제로 수면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 딱히 식욕이 없어서 밥은 한 두 끼쯤 걸러도 기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잠은 하루만 잘 못 자도 다음날 너무 힘들다.
2형 양극성 장애가 조절되지 않던 시절에는, 경조증이 와도, 우울삽화가 찾아와도 잠이 오지 않았다. 특히 우울삽화 중에는 불면이 먼저 찾아온 뒤 우울해지는 건지, 우울해서 잠이 안 오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선후 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불면이 먼저 찾아오든, 우울이 먼저 찾아오든, 우울한 건 매한가지였다.
어쨌든 불면과 우울이 함께 찾아오는 지난날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잠이 오지 않으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었다. 이대로 또 잠 못 드는 괴로운 나날이 며칠씩, 몇 주씩 이어지는 건 아닐까. 혹은 또 우울 삽화가 찾아온 건 아닐까. 잠들지 못한 다음 날이면 평소 보다 날이 서서 나의 정서, 기분을 살폈다. 우울한가? 죽고 싶은가?
요즘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잘 지내는 나날) 불면이 꼭 기분 탓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지나치게 심각했던 내가 좀 우습기도 했다.
일단 열대야가 찾아오면 잠이 안 온다. 한여름에도 얇은 이불은 꼭 덮는 편인데, 몸과 침구 사이에 열이 축적되면 누워있는 자리가 마치 온돌처럼 뜨끈해진다. 그러면 잠이 잘 안 온다. 확실히 좀 시원해야 빨리 잠들기에는 유리하다. 그래서 부쩍 더워진 요즘엔 선풍기를 수면 모드로 틀어놓고 잔다. 해결.
나이가 들면서 콩팥의 소변 농축 기능이 떨어진 건지, 잠들기 전에 물을 많이 마시면 새벽에 꼭 한 번은 요의를 느끼고 깬다. 그래서 자러 가기 전 반드시 화장실을 들리고, 소량의 자리끼를 떠놓는다. 해결.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보면, 확실히 잠들기 어렵다. 뇌가 과흥분 상태가 되면서 방금 전 본 자극적인 내용을 계속 곱씹게 된다. 침대에 눕자마자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최대한 멀리 놓는다. 침대에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도록. 핸드폰 대신 협탁에 잔잔한 책을 한 권 두고 잠들기 전 잠깐 읽는 것은 의외로 도움이 된다. 해결.
해결 못한 것들도 있다.
일단 술. 많이 마시면 수면 유지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잠들지 못하는 날 소량의 음주는 또 꽤나 도움이 된다. 물론 조절이 어렵다. 좋아하는 친구, 지인들과 마시는 술자리는 더더욱. 술을 마시면 안주를 안 먹기도 참 어려운데, 야식은 당연히 숙면을 방해한다.
나는 좋은 베개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다. 너무 푹신해도 안되고 너무 딱딱해도 안되며 너무 높아도 안되고 너무 낮아도 안된다. 커버는 순면이어야 하고, 경추 베개, 라텍스 베개 싫어한다. 구스가 좋다지만 나한테는 너무 푹신하고 마이크로파이버 베개는 자칫 너무 높거나 딱딱하기 일쑤다. 알레르기 비염도 있어 집먼지 진드기 방지 기능도 있어야 한다. 결국 꼭 맞는 베개를 아직 찾지 못했다. 내 기준엔 지나치게 높은 베개의 끄트머리에 머리를 올려놓고 잠든다. 그래야 그나마 원하는 높이와 푹신함이 된다.
잠들기 1-2시간 전에는 격렬한 운동을 하지 말라 하지만, 일하는 현대인에게 운동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저녁 먹고 난 뒤 밤 9-10시경이다. 이건 포기했다. 그냥 잠드는 시간을 밤 12시 이후로 미뤘다. 운동하고 나면 샤워를 하게 되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뜨거운 물로 씻게 된다. 잠들기 1-2시간 전에는 역시나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물로 씻지 말라하지만 추위를 많이 타고 운동과 맞물려 있으니 이것도 어렵다.
적고 보니 꽤 많다, 기분이 아니어도 숙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퀘스트 깨듯이 하나하나 바로잡다 보면, 혹은 시간이 지나면 (여름이 지나가면) 저절로 좋아질 때도 있다. 정신질환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증상의 원인을 항상 정신 질환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따지고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이것도 일종의 강박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