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상 May 15. 2024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어렸을 때 드라마광이었던 나는 그로 인한 부작용인지, 아님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엉뚱하게도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유체이탈을 하듯 나의 일부가 이 상황에서 빠져나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감독이 된다.


그 장면에는 역시 내가 있고, 내가 놓인 상황이나 장소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있다. 감독이 된 또 다른 나는 그 상황에 적절한 미장센을 고심하고, 이 장면을 극적으로 만들어줄 혹은 나의 감정을 한층 더 깊게 만들어줄 꼭 맞는 배경음악을 고심한다.


인격장애나 정신질환 같은 다소 무거운 단어가 떠오른다면.. 음..

나의 이 망상 같은 공상은 지금까지 딱히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고, 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나 혼자 외딴 행성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수준은 아니니 지나친 걱정이나 염려는 마음만 받겠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처한 상황에서 배경음악을 찾는 것뿐 아니라, 음악을 듣게 되면 그때마다 그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적당한 한 장면이 떠오르거나, 노랫말이 이야기가 되는 새로운 뮤지컬이 머릿속에 펼쳐지지만 뭐 이 정도는 누구나 갖는 일상 속 소소한 유희 아니겠는가!  


어쨌든.. 어릴 적부터 시작된 나의 소소한 유희는 풍성한 음악적 아카이브를 전제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티비와 라디오, 교과서가 전부였던 문화극빈층의 시골아이는 필연적으로 몇 곡 되지도 않는 플레이리스트만 머릿속에 있을 뿐이었다.


부모님이 즐겨 듣던 뽕짝 메들리, 노래보다는 춤을 따라 하기 바빴던 대중가요, 그리고 가끔씩 동네 할머니에게 악보 없이 배운 노래인 듯 랩인 듯, 타령인 듯 민요인 듯 그 정체성이 상당히 모호한 맥락은 유지되나 가사는 늘 조금씩 바뀌는 노래 그것이 전부였다.


이런 결핍은 나를 늘 음악에 목마르게 했고, 그 갈증은 다양한 음악을 찾게 했고, 그 다양한 음악 하나하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만들었다.


결핍과 예술 그리고 사랑이라는 필연적이고 환상적인 사이클 속에서 당연하게도 처음 만나게 되는 음악은 내게 소개팅처럼 설레고, 한눈에 반하는 운명적 첫사랑처럼 강렬하다.


영국의 유명한 락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빰빰빰빰 빰빠밤 빰빰’


바이올린과 첼로가 현에서 경쾌한 달리기를 시작한다. 달리기를 하며 가볍게 바닥을 구르는 소리인가 싶지만 이내 곧 달리기를 하는 사람의 심장소리처럼 들리고, 마침내 나의 심장소리와 오버랩되는 순간 노래가 시작이 된다.


인트로부터 웅장하고 서사적인 이 노래로 나는 단숨에 콜드플레이의 팬이 되었다.


Viva La Vida.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 ‘인생이여 영원하라!’라는 뜻의 이 노래제목만 들으면,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나 좀 더 거슬러올라가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정도가 연관검색어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지만, 사실 이 노래는 제목과는 영 딴판으로 그런 가슴 훈훈한 희망응원곡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의 유작 ‘Viva La Vida’에서 제목을 따오고, 앨범재킷을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한 이 노래는 프랑스의 7월 혁명과 샤를 10세의 몰락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한때 왕이었던 사내가 있다. 바다도 그의 명령을 따르고, 적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눈빛을 가졌던 거침없던 절대권력은 하루아침에 혁명세력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난다.

이제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지하감옥에 갇혀 쓸쓸히 잠이 들고, 자신의 것이었던 거리를 쓸며 군중 속에서 새로운 왕을 향해 만세를 외친다.


새초롬한 꽃봉오리에서 눈부시도록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빛을 잃으며 시들어가 마침내 꽃이 있었던 흔적조차 사라지고 앙상한 가시와 메마른 가지만 남아있는 장미의 일대기가 연상되는 가사는 내내 웅장한 멜로디와 대비되며 씁쓸한 슬픔을 준다.


샤를 10세의 권력에 비견할 바는 못되지만, 13살 나의 그 작은 세상에서도 ‘찻잔 속의 폭풍’이 있었으니.. 나의 권력박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평온한 어느 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그때쯤이었다.


학교에서 최고권력자는 단연 교장선생님이다.

그 최고권력자의 집무실을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부류였다. 방 주인인 교장선생님과 그 교장실을 청소 및 관리하기 위해 간택된 학생.


국민학교 6년 내내 모범생이었으며, 비교적 선생님들께 호감과 신뢰를 받고 있던 나는 이 소수정예의 교장실 청소담당으로 일찌감치 간택되어 그 특권을 누리는 학생 4명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 보면 참 우스운 기준이지만 당시 교장실 청소담당을 선발하는 기준은 암묵적이지만 엄격했다.


첫째, 단정한 용모의 6학년 여학생(맙소사! 어쩌겠는가, 성인지감수성이란 말조차도 없던 때다.)

둘째, 상위권의 학업성적(이건 담임선생님이 판단한다. 단정(?)하면 조율가능하단 얘기다.)

셋째, 평균이상의 청결도(1m 이내 접근 시 피존냄새를 폴폴 풍기는 정도)

넷째, 붙임성 있는 밝은 성격(지나치게 까불어도 무뚝뚝해서도 안되고, 눈치가 빨라야 한다.)

다섯째, 입이 무거우며 손버릇이 없는 모범생(교장선생님의 물건을 훔쳐가다니.. 곤란하지 않은가!)


세자비 간택도 이보다 까다롭지 않을 것 같다 혀를 내두를 법 하지만, 학생 중 최고권력층인 6학년 최고참만이 할 수 있던 이 교장실 청소업무는 나름 까다로운 기준이 있었던 만큼 한번 지정되면 쉽게 바뀌지 않았으며, 그래서 사실상 학년 초 간택된 멤버가 졸업하기 전까지 그대로 담당하는 구조였다.


그러니 교장실 청소로 지정이 되는 것은 개인에게도 영광이었으며, 학교에서의 최고권력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6년 내내 한 번도 들어갈까 말까 한 교장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면서 절대권력자의 최측근에서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나 개인적 취향까지 알고, 그에게 수 백명의 재학생과 구별되어 얼굴과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는 위치라는 건 어려도 다 알 수 있는 나름의 권력이자 특권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있잖아~’로 시작되는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으며, 반 아이들은 물론 때로는 선생님들까지 눈빛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은 나를 매우 흡족하고 기분 좋게 만들었다. 권력의 맛은 달디달았고.. 나는 점점 더 그 달콤함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6학년이 누릴 수 있는 최고 권력을 얻고, 국민학교 생활의 마지막 시간을 화려한 전성기로 만들어 가며 이 영화로운 태평성대의 날들을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날씨가 너무 좋았던 것이 이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맑고 깨끗한 하늘에서 기분 좋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가끔씩 부는 살랑거리는 늦봄의 실바람으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쾌청한 날씨였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살이에 들어가기 전이라 나무들은 맑은 연둣빛에 한껏 싱싱하게 수분을 품고 있었고, 꽃들은 여기저기서 퐁퐁 물감을 뿌린 듯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간질간질 웃음이 날 것 같은 풋풋한 생명의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온했고.. 그래서 나는 그날따라 왠지 더 평소보다 즐거운 마음이 되었고, 그래서 단언컨대 내 몸에서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활화산처럼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을 것이었다.

강력한 호르몬들은 잠자고 있던 내 까불이 세포 하나하나를 다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이봐, 이렇게 봄이 활짝 피었는데,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거야?”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나는 이 에너지 충만한 행복한 봄을 맞아 교장실 청소담당으로서 가져야 할 조심성을 깨끗이 망각하고 6학년 최고참으로서 가져야 하는 점잖모드를 완전히 해제해버리고 말았다.


온몸의 까불이 세포들이 13살의 진중한 모드에서 해방되어 일제히 깨어나 기재개를 켜는 순간, 나는 이미 한도초과의 명랑함을 탑재한 ‘못말리는 짱구’가 돼 있었다.


그 당시 교과서에 실린 희곡을 실제로 학생들이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는 실습수업이 있었다.

나는 그 연극에서 심술궂은 할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꽤나 진지하게 연극을 좋아하던 나는 일찌감치 역할에 맞는 의상과 소품들을 부지런을 떨어가며 준비했고, 급기야는 학교에 아예 가져다 놓고 연습 때부터 ‘제대로 갖추고’ 연기에 임했다.


그 ‘제대로 갖추고’에는 할머니의 심술궂음을 더욱 부각시켜 주는 지팡이도 있었는데, 어디에서 그걸 구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1m 남짓의 길이에 아이 팔뚝만 한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통째로 지팡이로 만든 것이었다.

군데군데 나무옹기와 가치가 뻗어나간 곳을 쳐낸 자국이 있어 도깨비방망이처럼 뾰족뾰족 날카로운 부분들이 많았고, 지팡이의 머리 부분은 살짝 구부러져 있어서 노파의 괴팍하고 심술 맞은 성격을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지팡이를 썩 맘에 들어하던 나는 종종 연극연습을 할 때가 아닌 때에도 들고 다니며 마법사처럼 ‘쿵’하고 땅을 세게 구르기도 했고, 성룡처럼 양손으로 옮겨 쥐며 지팡이를 휙휙 돌리는 봉술을 흉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왜 그 지팡이를 굳이 청소하는 교장실까지 가지고 갔는지는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날씨가 심각하게 좋았고, 덩달아 나의 기분도 필요이상으로 좋았고.. 그래서 나대기 좋아했던 나는 교장실 청소 멤버들 앞에서 뜬금없는 즉석 공연을 하고 싶었다. 그 아이들을 웃게 해주고 싶었고,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며 이보다 좋을 수 없는 13살의 봄을 만끽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청소 중이라 교장실 구석에 잠시 세워둔 내 지팡이를 가져와 연극의 한 장면을 각색해 가며 조금 더 과장되고 우악스럽게 그 노파를 연기했다.


한 손에 지팡이를 쥐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콧잔등에 주름을 넣고 교활하게 웃기도 했고,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치며 가상의 상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위협의 제스처도 날린다.


아이들은 농익은 나의 연기를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웃음소리가 꽃봉오리가 퐁퐁 터지며 피듯 교장실 안에서 퐁퐁 피어난다.


애초에 아이들을 웃게 하려고 시작한 이 즉성공연은 관객의 호응이 기폭제가 되어 이제 광기 어린 연기에 접어든다.


이제 지팡이는 마치 생명이 깃든 것처럼 자기 혼자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허공을 휙휙 날아가기도 하고, 코브라가 되어 나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내 손끝에서 공중곡예를 펼치기도 한다.


와하하하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웃어대고 나는 자꾸만 더 신이 난다.

이제는 동네 강아지를 내쫓는 친구 할머니가 되어 빗자루 역할을 하는 지팡이를 들고 강아지를 혼내는 연기를 한다.


사실성을 더 하기 위해 소파 끝에 앉아있던 한 친구를 강아지로 삼고 삿대질을 해가며 발을 구르고 엄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할머니 연기에 과몰입한다.

연기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마침내 나는 그 말썽쟁이 강아지를 내쫓기 위한 최후의 일격으로 빗자루를 높이 들었다 땅으로 내려치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 지팡이를 들었다가 있는 힘껏 그 강이지 역할의 친구가 앉은자리 가까이에 내리꽂는다.


부우욱

지팡이가 땅에 닿기 전,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뒤섞여 순간적으로 희미하게 이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곧장 등골이 쭈뼛서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위기를 감지한 까불이 세포들은 일순간에 정전이 된 듯 몸속 어딘가로 꼭꼭 숨어버렸고, 근무태만에 직무유기까지 단행한 나의 이성이 그제야 재빠르게 돌아온다.


이미 교장실 안은 약속이나 한 듯 웃음소리가 뚝 끊겼고, 두려움의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아있었다.


그대로 도망가고 싶었으나, 그 소리의 발상지.. 우리 모두가 예상은 되지만 차마 눈뜨고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그 지점을 당사자인 나는 확인해야 했다.


지팡이를 꼭 쥐던 손에서 땀이 나고,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 금방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황은 예상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교장실의 한가운데는 1인용 한 개와 3인용 두 개의 소파가 ‘ㄷ’ 자 모양으로 놓여 있었는데, 그중 왼쪽의 3인용 소파의 손잡이 부분부터 시트를 지나 다리 부분까지를 지팡이로 내리쳐 15cm가 넘게 가죽이 찢겨 충전재가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가죽이면 어린 소녀의 지팡이질로 찢어질 리가 없다. 그 당시 교장실 교파는 소위 ‘레자’였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비로소 30년이 넘어 죄가 좀 가벼워지는 느낌이지만.. 그날의 내 광기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당시 가죽소파는 내게 TV 드라마에 나오는 사장님이나 교장선생님 같이 ‘이 사람은 높은 사람이다’를 상징하는 권력의 전유물이었다. 최고권력자의 물건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그 물건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던 어리고 가난했던 나는 두려움의 먹구름이 잔뜩 낀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멍하게 서 있었다.


청소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담임선생님이 올 시간은 아직 좀 남아 있었다.

나와 관람객 아이들은 청소는 잊고 소파에 앉아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크게 찢어진 소파를 아무도 모르게 원래상태도 돌려놓을 방법은 없었고, 그렇다면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모범생인 우리 모두에게 매우 께름칙한 일이었다.


답이 없는 토론은 계속 머리 위 허공을 빙빙 돌 뿐이고, 큰 사고를 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던 나는 그 와중에 피곤함을 느껴 앉아있던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엉덩이를 좀 빼며 앉던 자세는 옆으로 조금씩 기울여 앉으며 반쯤 누운 자세가 되어 버렸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편하게 고민하자는 생각에 소파 앞에 있던 티테이블에 나는 한쪽 다리를  척하고 올려놓는다.


이 어마어마한 사고에 대한 대책논의로 아이들 누구 하나 내 자세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우리는 시간이 꽤 지나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었다.


“너희들 교장실에서 뭐 하는 거니?”

날카로운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귀를 찢고 들려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등장에 나는 내 자세가 얼마나 흐트러져 있고 그것이 선생님의 시선으로 보기에 한없이 불량하고 어이없을 모습이라는 것을  잊은 채 멍하게 새로운 등장인물을 쳐다본다.


후다다닥.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이 상황을 아이들은 재빠르게 소파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각자의 청소도구를 챙겨 일을 마무리하는 태연한 모습으로 떨쳐내려 한다.  나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청소도구와 바닥에 널브러진 지팡이를 수습하는 모습으로 반성의 자세를 취한다.


“아주 다들 자기 집에 있는 것 같네.”

다시 한번 담임선생님의 날카로운 질책이 아프게 날아온다. 선생님의 노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그래서 평소보다 청소점검이 한결 꼼꼼해진다.


이윽고, 담임선생님 눈에 문제의 그 소파가 들어온다.


“저 소파는 뭐지? 왜 찢어졌어?” 노기는 사라지고 당황스러운 담임선생님은 다급한 눈빛으로 누구라도 빨리 대답을 하라는 듯 바쁘게 우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죄송해요. 제가 청소하다가 실수로 찢어버렸습니다.”

나는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순순히 잘못을 인정한다. 선생님의 얼굴은 당황스러움과 노여움이 번갈아 오르며 잠시의 시간이 흐른다. 크게 화를 내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며 수습을 먼저 생각하는 게 역력히 보인다.


스르륵.

“아이고, 아직 청소를 하고 있군요. 항상 고마워요.”

이런! 교장선생님의 등장이다. 우리 모두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시간감각을 잊은 채 있었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얼른 교장선생님을 향해 정중히 손을 모으고 살짝 목례를 하더니, 선량하고 연약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교장선생님, 죄송합니다. 우리 반 아이가 청소를 하다가 소파를 찢는 바람에 청소가 늦어졌습니다. 청소야 마무리가 됐는데, 이 소파가 찢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은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그 문제의 소파 쪽으로 걸어가서 조용히 살펴본다.

현행범인 나는 그 자리에서 심장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란든 채 눈만 껌뻑이며 숨죽여 처분을 기다린다.

“음.. 뭐 괜찮을 것 같네요. 내일 남자선생님 몇 분 불러서 소파 위치만 바꾸면 될 것 같네요. 허허”


살았다! 알고 보니 교장선생님은 성군이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내가 소파를 물어내도 되지 않는 상황에 제일 먼저 안도한다. 엄마의 회초리가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교장실 소파가 이렇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려 조만간 바꿀 수 있도록 상의드리겠습니다.”


최고권력자의 선처에 담임선생님도 안심이 됐는지 한결 목소리가 부드럽다.


“아니에요. 위치를 바꾸면 찢어진 부분이 벽 쪽으로 가서 보이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걱정 말고 다들 교실로 가세요.”


교장선생님은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손을 내젓고 1인용 소파에 앉으며 미소를 짓는다.

담임선생님과 우리들은 머리를 몇 번씩 조아리며 사죄에 감사를 표하고, 조용히 교장실을 나온다.

교장실 문을 닫고 교실로 가면서 담임선생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내부처분은 불가피할 것이다. 나는 담임선생님의 굳은 옆얼굴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교실도 청소가 마무리되어 일부 아이들은 모여서 떠들고 있고, 일부는 책가방을 벌써 다 싸서 책상 위에 얹어놓고 종례를 기다리고 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서둘러 자기 자리에 앉고, 교장실 청소 멤버들도 제자리를 찾아 얼른 앉는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유독 나를 이뻐해 주신 분이다. 지금까지도 그 얼굴과 표정, 목소리, 소소한 에피소드를 기억할 정도로 내가 좋아했던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날 담임선생님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때로는 나의 모습을 흉내 내 가며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날카롭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나를 나무랐다.


거침없는 선생님의 질책에 나는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눈을 내리깔고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나와 담임선생님을 곁눈질해 가며 속닥거리거나 눈짓을 주고받는 고문들을 그저 꾹꾹 참아내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죄책감은 스멀스멀 서운한 마음으로 옮겨 붙더니 마침내 자존심에 금이 가며 똥고집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날의 종례는 꽤나 긴 담임선생님의 사실적 묘사와 비난, 나를 향한 실망과 질책, 본인의 재빠른 사고수습으로 이어지는 일종이 무용담으로 채워졌으며, 꽤 많은 참을성이 필요했던 그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하고 나갈 때쯤 나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되었다.


종례를 마치고 교실 앞 한켠에 있는 교사책상에 앉은 담임선생님을 향해 다가갔다.


“선생님. 저 내일부터 교장실 청소에서 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말한다.

침묵이 흐른다. 교실 밖 운동장에서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그러고 싶니?”


“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눈을 여전히 내리깐 채 고집스럽게 대답한다. 내 잘못은 이미 잊혀지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상처가 이제는 내 마음의 한가운데 있다.


“그래. 알았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당분간은 운동장 청소를 하도록 해.”


“네.”


나는 크게 꾸벅 인사를 하고 미련도 없다는 듯 서둘러 교실을 나온다. 뒤에서 담임선생님의 옅은 한숨이 들려온다.


그렇게 나는 지팡이질 한 번으로 학생의 최고권력에서 물러나 평민(?)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선생님은 교장실 청소멤버에 다른 아이를 채워 넣지 않으셨다. 아마 내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다시 넣어주시기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교장실을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높은 사람이 없이 편하게 청소하고 떠들 수 있는 자유의 삶이 좋았다.

교장실 청소 멤버들이 여전히 나를 챙겨주었고, 소소하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래서 나는 재야의 정치고수처럼 전면에 드러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게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 흘렀고, 점차 교장실의 이야기도 내게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배제되었다는 느낌이 주는 씁쓸함이 13살 소녀의 가슴에 시리게 다가왔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교장실을 청소하고 선생님들께 싹싹하게 구는 모범생이었는데 내가 빼달라고는 했지만 두말없이.. 붙잡지도 않고 이렇게 교장실 청소에서  빼버리는 처사가 서운하고 부당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잘해도 결국은 이렇게 한 번의 실수로 내 밑바닥까지 반 아이들에게 탈탈 털렸다는 사실에 수시로 분노했다.


연극도, 담임선생님도, 교장실 청소멤버도 이젠 미워졌다. 그들만이 알고 있는 교장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들끼리 눈짓으로 주고받으며 하는 비밀스러운 행동들에 심한 질투심이 들었다. 내가 없으면 안 될 줄 알았던 그 예상은 민망하게 빗나갔고 나는 그렇게 자존심을 내세우다 졸업할 때까지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나 거친 운동장 한켠에서 분루를 삼켰다.


화무십일홍

13살에 나는 권력의 그 씁쓸하고 차가운 이면을 보고야 말았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던 교장실 멤버에,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던 모범생인 나를 담임선생님이 공개적으로 혼냈을 때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일종의 그 ‘망신주기’를 고소하게 생각하며 자신에게도 돌아올지 모르는 교장실 청소 특권의 기회를 기대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권력이 원래 그렇고, 사람의 마음 역시 또 그렇다.

지금 한껏 피어있는 장미가 영원할 것 같고, 기왕이면 나의 장미가 남들의 것보다 더 화려하고 더 오래 피어있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놓치기 쉽다.

한껏 아름답게 피어날 순간을 기다리는 꽃봉오리에 깃든 부푼 기대의 순간을.

이제 하나둘씩 떨어지는 꽃잎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노란 꽃밥이 품은 감동의 서사를.

그저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그 섭리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비밀을.


나와 당신의 삶도 장미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온 우주가 나를 고꾸라뜨리고, 나를 절망시키기 위해 작당모의라도 한 것처럼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다.


아메리카노를 보약 마시듯 마셔가며 미래의 에너지까지 대출받아 오늘을 버텨냈다.

과연 내 미래에는 뭐가 남아 있을까를 수없이 되물었더랬다.


상사와 후배 사이에 끼어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나 정도의 짬밥이면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늘 센스 있게 상사를 챙기고 후배에겐 꼰대력을 버려야 하는 무게중심은 시간을 거듭해도 찾기 어렵다.


어디에서나 나의 역할과 의무는 무한생성과 무한리필을 천연덕스럽게 해 가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지독한 생명력과 재생력은 언제나 놀라울 뿐이다.


늦은 밤 흐느적거리는 마음을 이끌고 냉장고 문을 연다. 주백색 냉장고 불빛이 위로가 된다.

‘탁’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몽글몽글한 거품이 넘쳐 나온다.

 이 밍밍하고 찌릿한 한 모금에 ‘후우’하고 큰 날숨을 뱉어본다. 이렇게 천천히 마시는 맥주 한 캔으로 오늘의 나를 충전해 본다.


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다.


13살에 학교 최고권력자의 소파를 찢는 대형사고를 치고도 나는 학교를 잘 다녔고.. 졸업을 했고.. 심지어 중학교에 진학까지 했다.


얼마나 대견한가!


인생 굽이굽이 마다 생각지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아플 거라 예상하고 덤빈 커다란 바위에는 역시나 보기 좋게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기도 했다.


너를 믿는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고,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무능한 물건을 보듯 욕을 먹기도 했다.

숨이 차서 더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무기력함에 눈앞에 직면한 암담함에 수없이 울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았다.

원래 이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들은 각자마다의 크기와 세기는 다르지만 다 비슷하게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는 남이 피운 꽃보다.. 내가 피운 꽃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보다 더 화려한 자태와 강렬한 향기로 내 장미를 자랑하기보다 내가 피운 장미가 어떤 녀석인지, 잘 크고 있는지, 이 녀석은 어떤 점이 특별한지에 골몰했고, 그래서 그렇게 궁리하다가 그 녀석을 무척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만 알아본다 해도 그 녀석을 잘 키워 꽃 피워보고 싶었다.


‘Viva La Vida’라는 제목과 비극적 결말을 맞는 절대군주의 가사가 연결되지 않아 나는 오랫동안 이 노래가 이해되지 않았다.


쫓겨난 왕에게 인생이여 만세, 인생이여 영원하라라니.. 조롱하는 노래를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불렀단 말인가!


단단한 음식을 오래오래 꼭꼭 씹어먹 듯, 이 노래를 백번도 넘게 들으면서 어느 날 나는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인생이 해피엔딩이라서 아름답고 영원하라고 찬양한 것이 아님을.

인생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기에 영원해지는 것이고, 그렇게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그 시간을 자기 것으로 살아내고 있는 나와 당신에게 보내는 만세임을.


나는 그 사실을.. 시들어가는 장미가 나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비밀을 참으로 더디게 알아챘다.


1954년 프리다 칼로가  47세로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역시 ‘Viva La Vida’이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서른 번이 넘는 수술, 남편의 끝없는 불륜, 세 번의 유산과 이후의 불임.

프리다 칼로는 그녀의 강인하고 강렬한 작품만큼이나 일생을 덮친 불행한 일들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그녀의 유작이 ‘인생이여, 만세!’란다.


탐스럽게 잘 익은 수박 몇 덩이가 정면에 놓여있다.

둥그런 수박과 한입 베어 물기 좋게 잘라놓은 수박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저 수박 중 하나를 얼른 집어서 나도 먹어보고 싶어 진다.


달콤하고 아삭한 수박을 시원스레 베어 먹으면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금방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프리다 칼로는 이 그림의 한가운데 있는 수박 조각에 ‘Viva La Vida’를 새겨 넣었다.


‘모든 것이 삶이라는 같은 법칙 아래서 존재하며 또 움직인다. 고통, 기쁨, 죽음은 존재를 위한 과정일 뿐이다’라고 말했던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는 고통과 슬픔을 기꺼이 마주했다.


많은 작품에서 그녀의 삶은 오브제가 되었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듯 그림을 그렸던 프리다 칼로는 유독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그렇게 온전히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해 고찰하던 화가가 삶의 끝자락에서 ‘인생이여, 만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눈에는 그녀가 키운 장미가 만세를 외치도록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과도 같을 것 같은 이 평범하고 무심한 시간은 그래도 언제나 ‘온고잉’이다.

그러나 얼마나 멋지고 대견한가!

쳇바퀴 같은 세상 속에서도 매년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나와 당신이!

우리가 만들어가는 희망과, 서사와 비밀들이 야금야금 역사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이!


그래서 좀 민망하지만 혼자서 크게 한번 외쳐본다.


"우리의 인생이여 영원하라! 우리의 인생이여 만세!"

작가의 이전글 안경잡이와 아웃사이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