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
부끄러웠다. 영상 속 장면을 몇 장 캡처해 프린트를 했지만, 그걸 고모에게 들이밀고 ‘이때 봉투를 주셨냐’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게 지금 왜 궁금하냐고 물으신다면, 그 오랜 세월을 단 몇 문장으로 요약해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다만, 가장 솔직할 때 가장 단순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고모는 젊은 시절부터 부자로 살아왔다. 광주에서 고모부와 함께 그릇 장사를 했는데 하루 장사를 마치고 나면 가마니에 돈이 넘치도록 쌓였다고 했다. 가족 모임에서는 누구보다 잘 차려입고 나타났지만, 제일 먼저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었다.
고모는 가족 중 누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제일 듣기 싫어했다. 꼭 여유 있는 나보고 병원비 좀 보태달라는 소리로 들린다고 했다. 그런 고모가 그래도 큰오빠인 아버지와는 그런대로 사이가 좋았다. 아버지는 내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고모한테만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의 불행에는 늘 한 발짝 물러나 있던 고모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고모 기억 속에는 그 일이 아예 없을 수도 있겠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결국 고모를 찾아갔다. 고모만이 유일한 증인인데 또 고모가 기억하지 말기를 바라는 심정은 무엇인지 나도 헷갈렸다. 고모는 여전히 부자의 모습이었다. 팔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셨고, 홀로 사는 커다란 아파트는 깔끔했고, 은은한 커피 향이 났다. 무엇보다 변하지 않은 건 그 차가움에 가까운 매끈한 시선이었다. 나는 고모의, ‘그게 뭐 대수냐’는 식의 눈빛이 늘 싫었다. 고모 성격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 특별히 의문을 품지도, 당황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 일이 고모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일이라면 질문도 대답에도 민감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고모, 이 사진 좀 보실래요?”
나는 출력한 프린트물을 고모에게 건넸다. 고모가 식장을 들어오던 모습과 윤재 오빠와 마주하고 선 뒷모습이 담긴 장면이었다. 고모는 돋보기를 꺼내 두 장을 번갈아 보며 한참을 들여다봤다.
“야야, 이거… 아, 나네. 옷차림이 내가 입던 정장 아이가. 근데 이게 뭐꼬?”
“제 결혼식이에요. 1998년이요. 고모 그날... 혹시 기억나세요? 축의금 봉투를 누구한테 주셨는지…”
“봉투? 돈 말이가?”
“네, 그날 봉투가 사라졌거든요.”
“사라져? 우짜다가? 분실했나?”
고모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내 손을 잡았다.
“아, 니 결혼식, 그날이 생각난다. 눈이 많이 와 가지고 왜… 내가 나중에 도착했잖아. 나는 그날 인사만 하고 바로 니한테 갔제. 니 얼굴 보려고. 돈이 머 중요하나.”
“고모, 그러니까 그날 두 사람이 앉아 있었거든요. 이 사진처럼 고모가 이쪽 형부가 아닌 저희 사촌 오빠한테 봉투를 주신 거죠?”
“아, 그기 아이고, 고모부가 먼저 갔잖니. 봉투는 그 사람이 냈을끼야.”
고모는 봉투를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모는 돈에 대해서는 빠르고 정확한 분이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고모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네? 잘 기억해 보세요, 고모. 여기 이렇게 축의금 테이블 앞에서 봉투를 주시는 거 맞잖아요. 이 사진도 고모 맞다면서요.”
“오데? 내도 가 윤재 안다 아이가. 어머니 암 수술 잘 됐나 물어 봤을끼야. 맞아, 암인지 뭐라 카드라, 그 자궁암 크게 수술했다 아이가. 우리가 우원장을 소개해 줬거든. 수술이 잘못 돼 가지고... 바로 돌아가셨제. 잘 알제 ”
고모도 마치 자신이 범인은 아니라는 듯 구체적으로 답을 했다. 고모는 우리 외갓집 어른들과도 오래도록 가깝게 지낸 분이었다. 나는 고모의 기억이 생각보다 정확한 것에 놀랐다. 결혼식 날 눈이 많이 왔고, 그즈음 큰 이모님이 큰 수술을 했고, 그리고 자신이 그날 한 말까지도. 고모가 누군가를 위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럼 고모부는 그 봉투에 누구 이름을 쓰셨을까요?”
고모는 기억을 더듬듯 웃으며 말했다.
“우린 항상 선우 이름으로 냈제. 선우가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고모부가 자기가 낸 것도 꼭 아들 이름으로 적어야 선우가 어른들한테 인사도 받고, 아들 노릇도 한다고 말이야.”
“아… 그렇죠. 고모부랑 선우가 있었죠…”
나는 멍하니 프린트된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오래된, 아주 오래 열려 있던 그 커다란 문이 닫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모는 내가 왜 옛날 사진을 들고 와 느닷없이 봉투의 향방을 묻는지 그 이유는 묻지 않으셨다는 것이었다. 고모는 특별한 날도 아닌데 내가 자신을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 보이셨다. 그리고 먼저 간 고모부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셨다. 고모부는 이런 사람이었고, 저런 일이 있었고… 사람은, 자기가 중요하게 여긴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어 하는 법이라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고모의 집을 나서며, 나는 문 하나가 닫히면 어딘가 또 다른 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 다른 문은 지금까지도 조용히 열려 있었는지도 몰랐다.
허리를 곧게 펴고 몇 시간씩 서 있으면서, 아버지는 대체 무엇을 보셨던 걸까. 집에 돌아와 축의금 장부를 정리하신 것도 아버지였다. 그렇다면 고모부가 먼저 주고 간 봉투에 선우의 이름이 적힌 걸 확인했을 텐데 그건 선우의 것이고, 고모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봉투의 실종을 의심하셨던 걸까. 아버지는 아마도 잘 사는 고모 이름의 봉투를 꼭 받고 싶었고, 또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고모는 고모부를 통해 선우 이름으로 축의금을 전달해 놓고, 더 줄 수도 있었지만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고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원에 홀로 들러 백만 원을 두고 가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예감하지 못했기에, 고모의 백만 원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정작 장례식에서는 엄마보다 고모가 더 많이 울었다. 다들 고모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결국 사건을 만든 건 아버지였지만 애초에 사건이 없었기에 해결해야 할 일도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사소한 착각, 그리고 점점 더 확장된 왜곡, 그 세월이 너무 쓰라렸다.
사촌 형부는 그동안 왜 자신이 아니라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왜 그렇게 확신에 찬 메모를 남기셨을까. 윤재 오빠는 왜 형부도, 자신도 봉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정작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나는 무엇을 그렇게 집요하게 찾고 있었던 걸까. 나는 장롱 문을 다시 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분홍색 소쿠리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돌려받은 비디오테이프가 맨 위에 있었다. 꽉 잡아 보았지만 어차피 테이프로 재생은 불가했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노트북을 열어 저장된 동영상을 클릭했다. 빠르게 돌리고 멈추고, 다시 느리게 돌리고... 아버지, 아버지가 웃고 있는 장면을 찾아 일시 정지했다. 다크 그레이 양복에 언젠가 일본 바이어가 선물했다던 넥타이를 맨 채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계셨다. 사람들을 맞이하며 여러 번 엷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고 계셨다. 죽을힘을 다해 서 있었다고 했지만 하나도 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건강을 되찾은 얼굴로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진 그날처럼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서서히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억지로 눈을 깜박이며 화면을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나는 아버지의 이렇게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얼굴이 너무 좋아서, 계속 보고 싶어서 나도 웃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아버지의 얼굴을 고집스럽게 가리고 덮었다.
나는 프린트된 사진을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접었다. 분홍 소쿠리 속 색색의 실과 단추들, 오래된 영수증이 잠든 그 사이로 사진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맨 아래에 있던 상품권 봉투가 손에 잡혔다. 나는 프린트된 사진을 다시 꺼내 그 봉투 안으로 넣었다. 뚜껑을 닫고, 손바닥으로 그 위를 천천히 쓸었다. 비로소,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