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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선비 Dec 14. 2022

관음성지 낙산사 템플스테이 ①

겁쟁이 선비의 인생 첫 번째 템플스테이



1. 발단

작년(*2021년) 3~4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부적인 환경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아니었고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그런 류의) 강력한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하필이면 그 강력한 스트레스의 크기가 내가 감당할 수준보다 컸고, 해소하지 못한 채 계속 안고 가는 것에서 누적되는 피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해 숨이 턱턱 막혀가는 상황이었다.


절대적으로 쉼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2. 미봉책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찾은 것 중 하나가 당시 늦은 퇴근 후 무작정 한강에 가는 것이었다.

친구와 함께 우연히 갔던 광진교에서 바라본 잠실·삼성동 방면의 서울 야경과 암사·구리 방면의 검고 깊어 보이는 한강 물은 뜻하지 않은 리프레쉬를 선사했던 기억이 남아서다.


천호동에서 아차산 방향으로 교각을 건너면

왼쪽에는 화려한 야경이 번쩍이는 올림픽대교와 잠실이,

오른쪽에는 심도가 깊은 강과 두물머리로 향하는 소실점의 구리가,

그리고 그 경계를 다리가 나누고 있다.


광진교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좌측 잠실방향, 우측 구리암사방향)


그 장소에 유독 집착했던 까닭은, 그렇게 잠실 방향과 구리 방향처럼 이분법으로 양분된 세상의 경계선에 서서 헤매는 나그네, 방랑자 같은 나 자신에 몰두해버린 중2병스러운 감상에 쉬이 젖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감상에 빠지는 것이 적잖이 힐링이 되었다.) 두 번째는 해가 진 후의 강변이라 내 외연을 반사해서 보여주지 않지만 깊은 심도의 불투명한, 검푸른 강이 내 내연을 투영한 것 같은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어서 그랬던 거 같다. 그래서 퇴근 후 따릉이를 타고 광진교에 가서 중간에 있는 전망 데크에 앉아 멍하니 한강을 40~60분 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게 평일 퇴근 후의 루틴이었다.


임시방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나름 건전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어차피 겁쟁이 쫄보라 건전한 방법 외 다른 방법은 시도할 염두조차 내지 못했다.) 두물머리, 팔당댐, 하남미사 방면에서 불어오는 한강 바람이 시원하기도 했고, 멍 때리면서 힐링하는 건 또 요즘 트렌드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까.






3. 원인

나는 어릴 때부터 인내하는 법만을 미덕으로 배우며 자라와서 그냥 참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참고 감내하며 버티면 ’운동’이라는 자극과 스트레스를 통해 ‘근육’ 섬유가 찢어지고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더 강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나 또한 더 단단한 사람으로 완성되어 갈 것만 같았다.


니체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상의 황혼' 中, 1888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실제로 그게 유효하게 작용했던 경험이 스스로 향상심을 갖도록 만들기도 했고. 그러나 자극이 있으면 이완이 뒤따라야 하는데 바보 멍청이처럼 자극-자극-자극으로 이어지는 루틴을 스스로 강요하고 말았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감히 전부를 버텨낼 재간이 있겠는가. 그러면 기계도 고장 나는 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래도 몸은 정신을 차렸는지 나에게 쉼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왔고, 나는 다행스럽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별 탈이 나기 전에 신호를 캐치하여 스스로에게 쉼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4. PDCA

무엇을 할까 정말 많은 고민이 들었다. 오랜만에 맞이할 수 있게 된 휴식이기도 하고. 그래서 휴식을 고민하던 시점에 나의 입장에서 ‘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조건들을 추려보았다.

(ISTJ인 나에게 무지성 휴식이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뭘 하든 간에 아다리가 잘 맞아야 해….)


     ① 산 또는 바다와 같이 자연에 밀접한 장소일 것.(*사람이 도심보단 상대적으로 적어야 함!)

     ② 가급적 유무선으로 연락이 닿기 어렵거나 핸드폰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여건일 것.

     ③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완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


공교롭게도 마침 딱 그 교집합 안에 들어가는 것이 템플스테이였다. (인지하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히 본 SNS 피드 게시물이었다.) 사찰은 보통 도심보다는 산 또는 해안에 있고, 템플스테이라는 명목으로 핸드폰을 꺼놓고 연락을 못(사실은 안)받아도 정상참작이 되며, 나는 불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찰에서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은 전부 새로운 것들 이겠거니 라는 미지의 기대감이 충만했다.


그렇다.


여러모로 아다리가 잘 맞았다.


2021년 5월

특히 팬데믹 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 오신 날(5/19)이 수요일이어서 연차를 2일 쓰면 주말 포함 5일간의 연휴가 가능했기 때문에 바로 예약했다. (사실 예약을 못할 뻔했다.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해서 그때 템플스테이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게다가 코로나 이슈로 아주 제한된 인원만 템플 스테이를 받았다. 심지어 부처님 오신 날 이라는 불교계 최대 이벤트… 근데 나는 빠르게 한 덕에 무사히 예약할 수 있었다.) 만약 예약에 실패했다면 여지없이 집에서 어처구니없는 연휴를 소진하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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