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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선비 Apr 08. 2023

생애 처음으로 대리가 되었습니다.

메이플 월드에선 레벨 264의 용사인 내가 현실세계에선 대리님??



1. 승진

2023년 3월 1일,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했다.

사실 아직도 떨떠름하다. 실감이 안 난다는 표현도 얼추 들어맞는다.


부제는 한창 인기 있었던 이세계 전이물 소재를 밈(Meme)으로 꼬아 썼다. 실제로 나는 90년대생들의 리니지인 '메이플스토리'라는 MMORPG 게임을 얼마 전까지 매일같이 접속해서 플레이했는데,(최근 논란이 된 문제들로 지금은 더 이상 플레이 하지 않는다.) 264라는 레벨에 제법 중수라 불려도 될 정도의 스펙을 갖췄기 때문에 게임 세계에서 내 위치는 제법 높은 편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나는 이제 갓 대리가 된, 여전한 주니어다. 메이플 월드에서의 이력은 2018년 6월 여름부터 다시 시작했으니 최근 5년의 기록에다가 초등학생 때와 새내기 대학생 때의 플레이타임까지 합치면 8년이 훌쩍 넘지만, 사회에서의 이력은 이제 고작 4년일 뿐이다. 쌓아가야 할 커리어는 아직 아득하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는 과거의 보수적인 문화가 다소 남아 있어서 승격대상자를 모아 별도의 승격식 행사를 한다.(원래 하는데 COVID-19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안했다.) 처음엔 그저 실속 없는 허례허식으로만 여겼고, '행사'라는 말만 들으면 발동하는 특유의 귀찮음으로 인해 떨떠름한 감정이 주를 이루었지만 그래도 '축하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 주고 기념해 주는 것도 어찌 보면 참 감사할 일이다' 싶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3월 2일 사옥 1층 강당에서 따로 승격식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 자체는 3월 2일에 진행했지만 인사발령일은 3월 1일이다. 입사 인사발령도 1월 1일이었지만 첫 출근은 1월 2일이었다.)


일반적인 기업들이 으레 그러하듯 4년 차이고 평가사항 누락 없이 햇수와 인사규정 조건을 모두 달성했으니까… 진급시켜 줬겠지?라고 행사가 끝난 시점에 스스로 자문자답했다. 승격 발표가 났던 당일에도 승격 사실이 너무 어색해 어안이 벙벙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날 겨를이 없었다. 2년차 즈음에 정량적으로 수립한 MBO의 목표치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어서 그게 혹시 결격사유가 될까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는데 다행히 진급 때 특별하게 문제 되지 않았다. 2022년 하반기 고생한 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왔기에 그 덕으로 평가를 잘 받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회사는 대리와 사원의 중간 직급 격인 주임급(만 1~2년)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 사원에서 바로 대리가 된다. 입사해서 사원다운 일을 별로 한 기억이 없어서 관계사 분들은 예전부터 대리로 부른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막상 진짜 대리가 되어서 "대리님"이라고 불리니 마냥 어색하다. 승격식 사담 중에 사회생활 중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대리 승진을 뽑는 이도 있었다. 조직의 막내인 사원의 위치에서 벗어나 드디어 진정한 의미에서 1인분의 제 몫을 한다고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은 것이기에 사회생활 중 대리 진급이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나는 막내라는 팀 내 입지가 바뀐 것도 아니고, 업무 Scope이 크게 확대되거나 기존에 맡았던 Role이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특별히 변하는 건 없다. 그냥 내 직급이 변경되었을 뿐이다. (바뀐 거라곤 승진과 더불어 아주 쪼끔 오른 연봉이 전부다.)


아 명함도 새로 팠으니 명함도 바뀌었네!






2. 이름

이미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누군가 나를 대리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여전히 움찔움찔한다.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서 비롯된 낯선 감정도 한몫을 하지만, 가장 큰 포션을 차지하는 건 사실 다른 이유에서다. 이름 대신 직위로 불리는 순간, 내 이름을 대체해 버린 회사의 직위가 곧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글을 퇴고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기분이 드는 게 아니라 팩트가 아닌가. 엄연히 따지고 보면 사내에선 그 직위가 나의 정체성이 맞다. 단연코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역시 내가 이 회사에서 주어진 Role을 수행하는, 나의 사회적 페르소나 중 하나인 건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니까. 다만 회사 내에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대리님"이라는 호칭과 직위명이 나를 이 조직의 작은 톱니바퀴 중 하나로, 대체가능한 부속품 중 하나로 만들어버려서 나라는 존재의 고유 가치를 박탈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난 참 신기하게도 "대리님"으로 처음 불리는 찰나의 순간부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생각났다.


자기 브랜딩의 시대에, 개개인의 생존을 위해 각 개인의 차별화된 역량개발이 요구되는 시대에, "대리"라는 호칭 변화 하나로 산업혁명 시기에나 있었던 반(反)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으로 과민반응 하는 내 모양새가 참으로 우스울 일이지만, 나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리가 되었기에 과거의 인류가 답습했던 사고의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거시적 차원에서 큰 흐름의 역사도 반복되지만, 미시적 차원에서 각 개인에게 진행되는 서사도 반복되는 거 아닐까. 물론 이런 사고의 흐름도 일련의 사회화 과정과 교육 과정을 통해 학습된 배경지식이 있었기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님", "○○씨", "○○야"처럼 직위 대신 이전처럼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게 사실 더 좋다. 그렇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을 불러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다닌다. (회사에서 부여된 직급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회사에선 회사의 규칙을 따르는 게 맞다.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회사가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성원들 간의 합의된 규칙이니까. 대신 허용된 범위 안에서 사이가 가까운 관계라면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다고 말씀드린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친근함의 표현이든 익숙함의 표현이든. 나는 그렇게 이 공간 안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김춘수, '꽃' 中


존재의 본질과 관련한 고찰로,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아주 유명하고 또 널리 알려진 시다. 이 시가 이렇게 많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분명 내 이유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나도 나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비로소 나의 독립적이고 존속적인 본질이자 존재성, 나의 아이덴티티가 생명을 갖게 되는 것 같으니까. 덧붙여 나는 이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직무가 *브랜드 마케팅이고(*넓은 의미에서 브랜드와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총체적 마케팅 활동이며 이를 위해 브랜드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입사 시험 중 PT과제에서 내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어 발표까지 했으니 대리에서 시작해서 이름과 본질, 정체성까지 오는 사고의 과정이 가히 과하다고 할 수 없고 꼭 무관계하다고 할 수 없다.(*좀 과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은 접어두시라~!) 그래서 어떻게 보면 회사 안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 자체가 (MSG 좀 잔뜩 뿌려서) 나에겐 정체성의 회복이나 다름없다.






3. 낯섦

대리(代理)는 과장대리의 준말로, (일반적인 기업에서) 과장 바로 아래, 주임과 사원 바로 위에 위치하는 고정된 직급의 의미로 통하며 직무를 대신하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위의 직급을 어느 정도 대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이 조직 내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이제 내가 나의 위치에서 사원의 시기보다 더 주도적으로 나의 Role을 수행하도록 주문할 테고, 업무를 수행하는 나에 대한 평가를 본격화하기 시작할 테다. 30년 살면서 수많은 테스트(외고입시, 대학입시, 수능, 군대, 취업)를 요구받는 대로 수행했는데 어떻게 인생에 레벨업은 없고 난이도만 점점 상승하는 중이다. (메이플 월드와 달리) 심지어 이전의 경험치가 다음에 꼭 유효하리란 법이 없다.(심하면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와 테스트도 있다.) 재직 중인 회사에서 이제 내가 '대리'로 밟아가는 것들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래서 나에겐 삶의 자취가 낯섦의 연속이다. 이전 경험치가 다음 스텝에 크게 도움이 된 적이 없었던 거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로 이전에 끄적였던 '서른 비망록'이라는 글에서도 남겼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어른 같지 않다. 경험치로 레벨업이라는 성장을 겪은 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어른이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에게 대리는 멀고 머나먼 존재였는데…. 딱히 상상해보지 않았던 시점에 덜컥, 그것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도착해 버린 것 같아 나는 마냥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쭈뼛쭈뼛 거리는 어린이 같을 뿐이다. 현시점에서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인생의 다음 파도들이 물 흐르듯 나에게 몰려온다면, 나는 여전히 어색함으로 무장한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한 스탭 한 스탭 어렵사리 발자국을 떼어 흐름을 따라 걸어가겠지. 그 걸음걸음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는 덤이겠지만.


생애 처음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생애(生涯)는 '살아 있는 한평생의 기간'이라는 뜻인데, 나는 예전부터 물가(涯)라는 단어보다 벼랑, 낭떠러지(崖)라는 단어가 더 와닿았다. 유독 「생애」가 '살아 있는 한평생'보다 '삶의 경계', '삶의 모서리', '삶의 끝자락'이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모서리, 삶의 끝자락 같은 순간에 낯선 대리가 되어버렸다.


인생에 아직 넘어야 할 낯섦이 여전히 많은데,

나는 언제 즈음 그런 낯섦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노련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래 지금이라도 많이 웃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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