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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 Jul 02. 2024

예기치 못한 만남

즐거움은 판타지

어렸을적 서울에 사는 부잣집 이모가 한 분 계셨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그 이모 집에만 가면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널찍한 공간과 깔끔한 인테리어, 대형 TV와 최신식 컴퓨터와 게임기까지. 그 집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적으니 무슨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 같기도 한데 어쨌거나 그 집에 방문 하는 것은 신세계에 가는 것과 똑같았다.


어느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모는 다른 친척들에게 캐리비안 베이에 갈 것을 제안하셨다. 여름에 가는 것과는 다르게 겨울에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면서. 당시 한 번도 그곳에 가본 적 없던 나는 캐리비안 베이가 어떤 곳일까 상상하며 그곳에 가게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어떠한 사정으로 그곳에 가는 것은 취소가 되고 말았다.


실망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이모가 모두에게 캐리비안 베이에 못 갔으니 영화를 한편 보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제목은 '반지의 제왕'이었다. 반지의 제왕이라니, 제목만 들어서는 도무지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사촌언니에게 '해리포터와 비슷한데 더 유명한 작품이다'라는 말을 듣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극장에 갔을 뿐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호빗이라는 독특한 종족에 관한 소개와 함께 약간 평화로운 장면이 나오는 듯싶더니 영화는 이내 몰아치기 시작했다. '절대반지'니, 세상에 크나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느니, 주인공 프로도 뿐아니라 보는 나도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당혹스러울지언정, 프로도는 마법사 간달프의 말에 따라 절대반지를 운반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가문의 충직한 정원사인 샘과 함께. 두 호빗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을 무수하게 겪으며 엘프들의 땅, '로스로리엔'에 도착한다. 거기까지 가면 끝일 줄 알았건만, 단순히 동그란 금덩어리인줄 알았던 반지는 엘론드가 주최한 회의에서 여러 종족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며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놀란 프로도는 그럼 반지는 자신이 운반하겠노라 이야기하며 소란을 일단락한다.


그 시절 프로도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그에게 어떤 고난이 닥쳐올 것인지, 얼마나 많은 상실감을 느낄 것인지, 또 얼마나 괴로울 것인지. 물론 나도 몰랐다. 프로도의 결심 이후로 펼쳐진 고난 같은건 모른 채 이 특이하고 신비로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민만 할 뿐이었다.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릴 새도 없이, 주인공 일행의 고난은 계속되기만 했다. 소중한 멘토인 간달프를 잃고, 반지에 사로잡혀 정신을 놓아버린 보로미르도 잃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프로도와 샘 겨우 단 둘이서 배를 타고 다름 여정을 향해 떠난다.


"아, 뭐야. 해리포터보다 비슷한데 더 유명한 작품이라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사촌언니에게 푸념하듯 투정을 늘어놓았다. 해리포터와 비슷하면서 더 재밌는 영화인줄 알고 기대했는데 이게 뭐냐는 소리였다. 처음 보는 종족들만 잔뜩 나오고, 주요 캐릭터도 몇이나 죽고, 주인공은 다른 일행과 헤어지고. 배경은 어두운 데다 분위기는 너두 어둡고 무섭기만 하고. 다음 편이 있다면 절대 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온 나는 친척 남동생이 집에서 해리포터 게임 하는 것을 보며 실망을 달랬던 같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만남은 아무래도 그곳에서 끝나지 않을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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