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로 Jul 08. 2024

즐거움 뒤에는

즐거움은 판타지

나의 십대 중반은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 및 영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도 자연스레 관련 콘텐츠로 옮겨가곤 했다.


"이번에 나온 새로 나온 해리포터 책 재미있대."

"반지의 제왕은 어때? 그것도 원작 있다며."

"그건 좀 읽기 힘들대. 만연체에 대화가 길대. 거의 한 페이지 전체가 대화인 경우도 있다는데?"


만나기만 하면 그런 이야기들이 자주 오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풍요롭고 즐거운 학생시절이었다. 청년 시기를 지나 이제 장년에 접어드는 나이, 직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하나도 없다시피하니 말이다.


힘든 일들도 있긴 했지만,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중학교 시절은 즐거웠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기억을 꼽으라면 친구들과 함께 기말고사 후에 반지의 제왕 마지막 편인 <왕의 귀환>을 보러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리포터보다는 재미없다고 했으면서도 나는 어찌어찌 반지의 제왕2편을 보았고, 헬름협곡 전투 장면과 엔트라는 종족을 보면서는 살짝 마음이 바뀌었다. 1편과 달리 영화에 대한 기대가 생겼달까? 악당인 사우론과 반지원정대의 결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여 3편을 봐도 괜찮겠다 싶었다. 물론, 사심도 약간 있었다. 엘프 왕자 캐릭터인 레골라스가 너무 멋져서 그냥 캐릭터의 활약만 보러 가도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들 없이 친구들끼리 간 영화관람은 그 자체로도 즐거웠지만, 영화 내용 덕에 더 값진 추억이 되었다. 세상에 토록 장엄하고 멋진 이야기가 있다니. 영화를 볼 때만큼은 나는 해리포터에 대한 팬심을 잊고, 반지의 제왕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J.R.R 톨킨의 이름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대체 작가가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세계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어 입을 떡 벌렸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큰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그냥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같은 결말이 아닌, 떠나야 할 이는 떠나고 남아야 할 이는 남아서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아름다운 미장셴 덕에 시각적인 황홀함을 느끼면서도 마음은 뭉클하고 코는 시큰했다. 그 후로도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아직까지 내 안에서 반지의 제왕처럼 기억에 오래 남는 마지막 장면은 없었다.  


그 정도 경험을 했으면 영화를 보고 나자마자 원작을 읽는 것이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십대의 나는 힘든 것과 어려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회피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원작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이야기에 지레 겁을 먹고 책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은 지나갔고,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생각의 양이 기록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고교시절의 기록은 내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 많아 과부하가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나의 정신세계는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깊어진 반면, 마음은 인생에서 가장 심하게 망가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기치 못한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