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of daiv. 스무 번째 이야기: 이어진
삶을 두 배로 살아간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그 열의를 쉽게 잃지 않는다. 보고 있기만 해도 많은 동기부여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따뜻함과 애정을 놓치지 않는 사람.
대학생의 열정으로 가득찬 신촌에서 이어진을 만났다. 그는 심리학을 본전공으로 하며 2개의 연계전공을 추가로 하고, 창업까지 준비하고 있다. 남들이 쉽게 걷지 못하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위에서 뛰어다니는 이어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함께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이화여자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주전공으로 심리학과를, 연계전공으로 ‘멀티미디어학’과 ‘기업가정신’을 이수 중이다. 여기에 ‘AI융합창업트랙’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 융합소프트웨어 트랙’도 이수 중이다.
연계전공을 2개를 포함해 3개 과목을 전공하고 있다. 거기에 2개의 트랙까지 이수하기에 매우 바쁠 것 같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은 보통 대학원을 가거나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문과 계열의 직무로 취업한다. 그런데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길로 빠지게 됐다.
이수하는 과목은 많지만 연계전공이라 걱정하는 것만큼 부담은 없다. 사실 이 분야를 수강하는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해서 수강 신청 경쟁률도 심하지 않다.
창업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언제부터 관심이 많았나.
멀티미디어학 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원래도 미디어 분야와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다이브에서 에디터 활동의 일환으로 매거진 디자인을 맡게 됐다. 이때의 경험을 시작으로 대내외 활동에서 콘텐츠 디자인을 도맡아 했다. 웹앱 서비스를 개발할 때 UX, UI 디자인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림을 잘 그릴 필요도 없었고, 엄청난 창의성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멋진 결과물이 나오니 이런 분야가 굉장히 재밌다고 느꼈다.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기획, 개발, 디자인 중 디자인이 적성에 맞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점점 창업 동아리에 녹아들면서 스타트업과 창업 전반에 관심이 생겼다. 동아리 활동으로는 맛만 본 느낌이라 아쉬웠다. 결국은 창업으로 좀 더 승부를 봐야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면서 지금은 창업을 1순위에 두고 있다.
그래서 이수할 과목들도 창업 수업으로 채웠고, 소규모 프로젝트도 모두 창업과 관련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물론 아직 이렇다할 결과물은 없다 (웃음).
본인이 창업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는가.
심리학 전공을 선택할 때는 보통 대학원 생각하며 입학한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심리학자가 될 거야. 하지만 대학원은 절대 안 갈 거야.’라는 상황이 말이 안 되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다. 스스로 어느 한 가지를 진득하게 깊이 파고 들어가는 성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런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여러 분야를 넓게 체험해보는 게 재밌었다. 계속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지내다 보면 그중 어느 것 하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여러 분야에 발을 들였는데, 지금은 그냥 성향 자체가 ‘제너럴리스트’라고 생각한다. 여러 일을 함께 할 때 효능감을 느끼는 체질이다.
스타트업 창업가가 되려면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맡은 분야만 하는 게 아니라 안 해봤어도 배워서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모든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어야 되는 성향이 나와 맞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것을 한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했던 것 같다. 비주류에 끌리나보다. 다른 학생들은 창업을 진로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창업을 진로 선택지에 두고 보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느낌이었다.
심리학자가 되려고 했던 마음이 어떻게 창업까지 이어졌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게 본질적인 욕구인데, 그때와 지금은 접근이 달라졌다. 대입 수시를 준비할 때는 ‘사회의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보겠다’고 말했다. 사회의 어떤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진단하며, 해결 방안은 이것이라고 던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실제로 수립해서 적용하는 것이 심리학적 연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것이 창업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당시에 하필 ‘심리학’인 이유가 있었는지.
중학교 2학년 때인 2015년 일이다. 그해 1월에 <킬미힐미>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킬미힐미>는 DID(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가져 1인 7역을 하는 남자 캐릭터가 여자 캐릭터인 정신과 의사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그때 다중 인격 장애를 처음 알았는데, 또 그것을 관찰하고 치료할 수 있는 ‘정신의학과’라는 것도 처음 인지했다. 그 관심은 뇌과학, 심리학까지 이어졌다.
또 마침 그 당시에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개봉했다. 너무나 감명 깊게 봤다. 그런 나머지 고등학교 때 인문학을 탐구하는 동아리에서 주제를 심리학을 택했다. <인사이드 아웃>의 이 장면에 반영된 심리학적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것을 과제로 발표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분석하는 과제를 너무 재밌게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심리학이 아니라 그 콘텐츠 자체가 조금 더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웃음). 어쨌든 계속 심리학과 관련된 미디어를 접하면서 매력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특출난 것 같다. 대학 친구들이 아닌 친구들은 본인을 어떻게 보나.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랑 교류를 잘하지 않고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 서울 친구들과는 거의 다 연이 끊겼는데, 딱 한 친구 남았다. 그 친구와는 ‘덕질’을 같이 했다. 그래서 이제 그 친구한테 덕질 메이트로 기억될 것 같다. 다른 친구들도 아마 나를 그렇게 기억할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번아웃이 오거나 지치기도 할 것 같다.
항상 번아웃이 온다고 느낀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 굉장히 심했다. 시간이 비면 거기에 일거리를 만들어서 채워넣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졌다. 말 그대로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었다. 하루 24시간을 다 투자하고 밤을 새도 안 될 정도로 일이 겹치는 시점이 있었다. 학기를 병행하면서 동아리 회장도 하고, 창업 팀 활동까지 같이 하려다 보니까 무엇 하나 우선순위에서 미룰 수 없었다.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쪽에 민폐를 끼치기 시작하고 일의 공백을 만들면서 힘들다고 느꼈다.
올해 초까지도 복구가 안 되고 오히려 정점을 찍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고 끌고 가야 하는데, 다 해낼 수 있는 체력이나 정신이 안 되니 심적 압박감이 컸다. 그냥 버텼지만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감정이 올라와 확 울어버리기도 했다.
사실 그 직전 학기에는 너무 여유로웠다. 인턴을 하면서 휴학을 했는데, 인턴이 끝나니 2개월 정도 아무 일정 없이 동아리 운영만 했다. 자유롭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카페에 가거나 놀러다녔다. 그때는 반대로 고립된 기분이었고, 효능감이 떨어졌다.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느낌에 우울했던 것 같다.
두 가지 상반된 경험을 하니까 적당히 방향성을 잡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지금은 자기만의 극복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나.
방법은 두 가지다.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새로운 환경에 놓이려는 것이 첫 번째고, 잘 안 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나 해왔던 것을 글로 쓰며 회고하는 것이 두 번째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그들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람과 관련된 이슈가 가장 힘들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많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인 사정이 결부되어 있는 일들이니 너무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회장을 맡았던 동아리 안에서 문제가 있던 적이 있다.
회장으로서 팀 빌딩을 해줘야 했다. 처음에 팀원을 꾸릴 때는 창업 아이디어를 발표해서 관심 있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모이게끔 했다. 그렇게 모인 팀이 6개월 동안 아이디어를 개선하며 창업 활동을 하도록 이끌어줘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팀 빌딩을 마치고 나니 다른 팀원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이 일이 진짜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다. 사람간의 일이니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는데 거의 담임 선생님이 된 것처럼 일일이 전화해서 생각을 물었다. 모든 팀장들에게 전수조사하듯 물어보고, 또 이슈가 있던 팀원에게 다시 전해줬다. 그렇게 상담하는 과정에 시간을 많이 들였다.
그런데 여기에 정답은 없다.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텍스트마이닝 해서 분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는 운영진이자 동료로서 계속 논의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이게 최선일까 의심도 계속했다. 왜 직장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이 관리자를 하는지 알 것 같다.
본인이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다이브 매거진’을 만들 때다. 경력도, 경험도 없는데 사수 없이 디자인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다 (웃음).
굉장히 스트레스가 컸다. 인원도 부족했고, 나도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문제는 투입한 시간 대비 성과가 잘 나오지도 않았다. 마감을 계속 미루게 되는데 ‘너 왜 안 하냐’는 말도 없어서 더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욕심도 강했다. 스스로 내던져져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이게 끝이 나긴 나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끝냈다. 그 경험 이후로 앞으로 어떤 것들에 내던져지더라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법인을 하나의 인격체라고 말한다. 법인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자식을 낳는 과정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본인이 법인을 만든다면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나.
최근에 교내 창업가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대부분 과정의 롤 모델이 deep daiv.(딥 다이브)가 될 것 같다.
다이브 팀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복기해보면, 일단 콘텐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초기 운영 팀과 핵심 멤버들이 있었다.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유입되는 인원이 누적되고, 양적-질적으로 계속 충성도 있는 사용자가 쌓이면서 더 큰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창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인들 중에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점처럼 놓인 사람들을 끌어 모아줄 수 있을 만한 커뮤니티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의적으로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힘을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성격을 사람으로 치자면, ‘너 요새 고민이 뭐야? 그런 고민이라면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어’라고 조언해주는 사람. 오지랖도 넓고 주변인들에게 연결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이 인터뷰는 2024년 3월에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