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어떤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애 키워요.'라고 말한다.
그럼 그다음질문은
'그럼 전에는 무슨 일 하셨어요?'이다.
'큐레이터였어요.'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큐레이터가 아니었던 건 아니다.
큰 기관에서 일하며 큰 전시에도 참여하고,
작은 기관에서는 내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큐레이터라고 칭하는 건 뭔가 좀 부끄러운 느낌?
그럼에도 사람들이 직업에 대해 물으면
그냥 큐레이터였다고 말한다.
미술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하는데
'글도 읽고, 쓰고, 전시도 보고
교육프로그램도 만들고, 도록도 만들고, 전시 설치도 관리하고, 작가 인터뷰도 리서치도 해요. 그런 일들을 했어요.'라고 하기엔 너무 길다.
내 전공은 한국화다.
그런데 졸업장에는 미술학부라고 적혀있다.
대학 입학부터 뭔가 두루뭉술수리했구나.
미술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주변인들의 영향,
그리고 편한 길을 선호했던 내 성격의 결과로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공부하고 교사 자격증을 땄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학교 현장은
나와 맞지 않았다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다.
정말 기도 안 차는 인생수업을 호되게 치르고
절대로 이 바닥에 들어서지 않겠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좋은 선생님들도 많겠지만,
어디에나 다양한 사람들은 존재하니까.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미술관 인턴이었다.
너무 힘들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밤을 새워 교정을 보고,
에스프레소 쓰리샷을 들이부으며 시작하는 아침도
좋았다.
전시가 열리고 도록이 출판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걸 읽는 걸 볼 때.
작품이 크레이트에서 나오는 걸 보고 있을 때.
작품 뒤에 남겨진 비밀스러운 기록들을 볼 때.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기분이었다.
커피를 들이붓고 들이부어도 좋았다.
틈만 나면 사무실에서 나와 전시장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의 움직임 눈빛 대화를 관찰하고 들었다.
사람들이 공간을 작품을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
그때부터
내 짝사랑이 시작된 것 같다.
내 입장에서
미술관은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그림 속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림을 읽지 않아도,
거창한 소감을 내뱉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냥 제멋대로 즐기면 좋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즐길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감사하게도
운이 좋게도
미술관 건립팀에서 일을 하며
전 세계의 미술관에 대해 자료를 조사했다.
혼자 여행을 가도,
출장차 방문을 해도,
심지어 신혼여행에서도.
도시의 미술관 박물관을 방문하고 즐겼다.
자유롭게 관람하는 사람들,
남녀노소 그야말로 미술관을 즐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을 동경했다.
동화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런던에 살고 있다.
런던에서도 박물관 교육에 대해 공부했다.
아무리 많은 곳을 여행하고 방문했다고 해도
실제로 살면서 보고 즐기는 것과는 달랐다.
오늘보고 내일보고
보고 또 봐도 항상 새롭고 즐겁고 편안하다.
아이 키우며
우울이 나를 덮쳤던 시기.
전시가 보기 싫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내 직업에서 점점 멀어지는 나를 보며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쳇 그깟 전시가 뭐라고
다 말장난일 뿐이지'하는 미운 마음이 들었다.
'놀면 뭐 하니'에서
가수들이 모여
새로운 무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보면.
그 노래만 들으면.
수도꼭지를 튼 것 마냥 눈물이 쏟아졌다.
다 같이 모여 만들어내는 결과물,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 소속감, 존재감.
그런 게 그리웠나 보다.
결국, 내 마음의 치유를 위해 찾은 곳은
미술관이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차츰 위로를 받고 미운 마음을 회복해 갔다.
결국 돌고 돌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우울하게 하고,
나를 위로했던 곳.
이 공간에 대한 내 경험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자.
그러다 보면
나 뭐 하는 사람인지 다시 알 수 있지 않을까?
뭐 잘 모르겠어도 하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