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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Apr 23. 2023

이별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수확

사랑에 빠진 계기.

2011년 나는 혼자 파리와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랜 연애를 끝내고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던 여행을 나 혼자 했다. 나 혼자만의 이별여행이었다. 여행을 통해 내 세상은 좀 넓어지고 달라졌다.


박물관의 기원부터 따지자면 그리스의 뮤제이 옹, 이태리 메디치가의 컬렉션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내 관심은 근대 이후 '교육과 공공'의 목적이 미술관에 부여된 이후로 치우쳐있다. 그렇다면 왕가의 컬렉션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던 프랑스의 루브르를  놓을 수 없다. 그래서 내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파리였다.


12년전 여행사진, 루브르와 오르세

근대 뮤지엄의 가장 큰 특징은 대중인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파리를 여행하며 박물관이 대중에게 매우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너무 기대했나. 루브르는 너무 컸고, 큰 공간에 비해 자세한 안내나 휴식공간이 부족하다 느껴졌다. 지하에 있는 리셉션에서 전시장으로 찾아가는 동선도 어려웠다.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들만 찍어서 보고 나왔는데도 시간이 부족했다. 오르세는 반대로 전시공간에 비해 작품이 많았고 사람도 많았다. 가족단위 관람객을 위한 활동지는 마련되어 었지만 왠지 모를 피로가 느껴졌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로저쓰 아저씨가 디자인해서 그랬나. 그때부터 좋았다. 취향 하나는 대쪽 같다.

그중 퐁피두 미술관 좋았다.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휴식공간도 넉넉했고 알록달록하고 널찍널찍 공간, 특히 과감하게 쓴 색감이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색을 이렇게 쓰는구나 하며 감탄하기도 했다.(사실, 이탈리아와 영국 건축가가 디자인함.) 신기하게 밤늦게까지 문을 열었다. 그래서 여행 일정 내내 저녁시간에는 퐁피두에 가서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정리했다.


일단 프랑스는 관람료가 비쌌다. 뮤지엄패스도 일주일자리가 10만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이 돈 내고 박물관을 관람할 사람이(여행객을 제외하고) 전체 인구 중 몇 프로나 될까?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리고 런던으로 향했다. 일단은 우리가 아는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이 모두 무료였다. 그냥 문이 열려 있어서 언제든 내가 가고 싶을 때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나 공짜 좋아하네, 하지만 문턱이 낮아지는 효과는 분명 있지 않을까?)  물론 일부 기획전은 관람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무료로 둘러볼 수 있는 컬렉션 전시가 풍부해서 컬렉션을 집중해서 봤다. 이렇다 보니 기본적으로 관람객이 복작복작 많았고 시끄러웠다. 렇지만 뭔가 정돈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나 너무 큰 거 안 좋아하나?)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등의 교육동선에 관심이 있던 터라 교육공간으로 연결되는 별도의 입구를 찾아다녔다. 교육을 위해 널찍하게 마련된 공간이 그저 부러웠다. 


그리고 현대미술관인 TATE Modern을 방문했다. 터바인홀로 통하는 메인 입구로 들어서는데 뻥 뚫려있는 홀에 아이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먹기도 했다. 가족 관람객을 위한 작은 브로셔에는 ‘Welcome to TATE! Make noise in our galleries.’라고 전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전시장 분위기는 상당히 정숙했다. 아이들이 뛰어놀기라도 하면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오는 직원들이 있었다. 사실 나도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흘겨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Make Noise라니!!! 실제로 아이들은 터바인 홀이 동네 놀이터나 운동장 되는 것 마냥 뛰어놀고 있었다. 전시장과 전시장을 잇는 복도 사이사이에는 사용감이 좋은 소파들이 마련되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도 충분했다. 복도 사이사이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며 쉬고 있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다시 에너지를 채워 전시를 볼 수 있었다. 도에서 잠시 졸며 시차를 이겨내고 커피를 마시고 다시 전시를 보길 반복하며 하루종일 머물렀다.


전시장 곳곳에는 아이들이 닥에 쭈그려 앉아 작품을 따라 그리고 있었다. 관람 연령대도 너무나 다양했다. 지팡이를 짚고 선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제 각각 나름의 방식과 취향으로 공간 전체를 즐기고 있었다. 슨 얘기를 하나... 귀를 쫑긋하고 듣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꿈 꾸는 미술관 박물관 여기 있었네?(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으나 성공하진 못했다.)


이별여행에서 밖의 보석을 발견했다. 틈틈이 슬펐지만, 촘촘히 행복했다. 유레카!


12년 전, TATE Modern. 지금봐도 세련되다.

그래서 구 남자 친구, 현 남편이 유학을 가자했을 때, 입김을 아주 세게 불어넣었고 남편은 팔자에 없던 학교를 선택했으며 런던에 살게 되었다. 나름 팍팍하고 고단한 유학생활, 해외살이에 미술관박물관은 내게 에너지 드링크 같은 존재다. 아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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